주눅 들기
말 줄임
유학 초기에는 일상에서도 학업에서도 계속 반복되는 문제가 있었다. 학생으로서, 선생으로서, 그리고 누군가의 연인이었을 때도, 내가 '말'하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하루 종일 '시달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거였다. 외국어로 다양한 범주의 대화를, 유려하게 이끌어 나가진 못해도 적당히 참여할 수라도 있어야 한단 게 곤욕이었다. 내 속도로 가도록 날 기다려줄 수는 없는 걸까, 하고 투덜대고 싶었지만 나는 한국이 아니라 외국에 있었다. 금발머리 파란 눈의 외국인이 안녕하세요 한 마디만 해도 머리 모아 박수 쳐주는 한국하고는 천지 차이이다. 할 말을 못 하면 받을 것을 못 챙기니 이건 비단 언어 실력뿐만 아니라 태도에 달린 문제였다. 언어에 자신감이 없으면 하고 싶은 말을 미리 생각해오고 연습하는 적극성과 능동성이 필요했던 게다.
한마디로 말해 '성의'의 영역이다. 그때의 나는 그러니 뭐랄까, 오만했다. 어쩐지 '샤이 아시안'으로는 보이기 싫으니 내가 연출한 나의 이미지는 무엇에든 '무심한 사색가' 같은 거였다. 중년의 백인 남자가 그렇게 팔짱 끼고 앉아 있다면야 눈치를 보면서 '당신 생각은 어때요?'하고 물어줄 사람이 몇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젊은 동양인 여자가 말없이 뭔가 끄적이면서 앉아 있다? 그냥 병풍 되는 거다. 게다가 내가 생각하는 나의 논의 참여도와 남이 생각하는 그것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뭐라도 내뱉어야 한다.
케어 받고 싶은 게 아니라 대우받고 싶어져야 했다. 우리는 약자로서 말하는 법이 아니라 강자 지망생으로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물론 약자임을 잊은 것처럼 굴기란, 약자로서 내재화한 모든 것들을 다시 unlearn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약자라는 인식이 나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게 두어선 안 된다. 사실 해외생활을 하면서 주눅 드는 지점은 그것이다 - 나 한국에서는 이런 취급까지 받아본 적 없는데. 해외 생활을 하겠다는 배짱, 그리고 무엇보다 비빌 언덕이 있었기에 비행기 타고 캐리어 끌고 용감하게 도착한 낯선 나라, 그러나 글쎄... 당연히 그 아무도 당신의 배경과 자원에 별 관심을 주지 않는다. 겸손할 생각 없이 왔더라도 쭈그러들고 말 수밖에.
왜 왔어?
나는 배움이 좋았다. 그래서 더 배울 것이 천지일 외국에 왔다. 그런데 어쩐지 날 조바심 나게 하는 건, 배울 게 너무도 많다는 것이었다. 사람 사는 곳 다 비슷하겠지 싶다가도 어느 날 한 순간이 나를 외계인ailen으로 만든다. 이를 테면 모두가 알고 따라 부르는 노래에 나 혼자서만 어리둥절할 때, 무턱대고 따라 웅얼대 볼 만큼의 넉살도 없어서 어색한 미소를 띠며 그 삼분이 끝나기만 바라는 심정, 하지만 누군가 틀어놓은 플레이리스트에는 들어본 적 없는 뮤지션들이 끝도 없더라.
사실 내가 살고 일할 곳을 두루 겪어보고서 선택하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외국에 발 들이면서 그런 자유에도 한 걸음 다가섰으리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따금은, 내 이상이 너무 커서 초라한 현실에 또 주눅이 들고 만다. 단언컨대 자유는 불안을 준다. 다들 묶여 사는데 나 혼자 갈 곳이 없는 거라면 그걸 낙오가 아니라 자유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내게도 길이 있어서 앞으로 걷다 보면 뭔가 나올 거라고 믿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저 수풀만 헤매고 있는 것 같아 어지럽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할까, 대체 발을 어디에 붙여야 할까,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걱정과 고민이 나를 뒤적인다.
새로운 것을 찾아왔지만서도 해외 생활을 하다 보면 정작 기본적인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되새기게 된다. 돈, 건강, 친구 같은 것들. 나부끼다 보면 어느새 쏠랑 없어지는 것들 말이다. 그래서 한동안은 한국 사람들을 부러 찾아 마음을 나눈 시간도 있었다. 그렇지만 단순히 같은 국적이라고 해서 잘 맞으리라, 이야기가 통하리라, 어울릴 수 있으리라 짐작하는 것은 또 큰 오산이다. 선의의 마음이겠지만, 옛 시절 기준의 살아남는 방법이라던가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정도를 제시하는 둥의 충고들이 언제나 달갑지만은 않다. 그때 맞았던 게 지금 틀리기도, 그때 틀렸던 게 지금 맞기도 한 법 아닌가. 어렵사리 털어놓은 고민이 햇병아리의 투정 취급을 받을 때면 가슴이 아리기도 하다. 약간의 서글픔, 그리고 앞으로는 처신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깨달음과 다짐으로 또 새로운 사회화가 시작된다.
왜 그래?
물론 국적을 떠나서 내 진짜 생각들, 속내 이야기도 서로 존중 못할 관계라면 정을 깊이 주지 않는 게 맞다. 하우스메이트들이 모두 다양한 대륙에서 온 사람들이었는데, 우리를 돕겠다고 팔 걷어붙이고 매번 나서는 중년의 백인 이웃이 한 명 있었다. 처음에야 친구들이 다들 고마워했지만 어째 쎄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몇 달 지나서였다. 그는 말하자면, 트로피처럼 인터내셔널 친구들을 모으는 사람이었다. 그의 업적은 페이스북에 부지런히 그리고 차례대로, 어디에서 온 나의 블랙/아시안/라틴/유럽 친구 어쩌고 하는 해시태그와 함께 게시되었다. 실제로 도움의 손길을 정말 많이 베푸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외국인 유학생들의 양육자 노릇을 자처하느라 '고맙지만 괜찮아요'라는 말을 무척 기분 나빠했다. 그의 생일파티에 일정 상 갈 수 없어 초대를 거부했던 한 친구는 약간의 시달림을 겪었다. "왜 못 오는데?" "볼 일이 있어서요..." "그게 뭔데? 언제 끝나는데? 그럼 그거 끝나고 오면 되겠네. 내가 차로 데리러 갈게." "아, 그럴 필요는 없는데..." 하는 식으로 실랑이를 벌이느라 친구가 한참 진땀을 뺐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나의 '낯가림'은 굳이 필요하지 않은 곳에서도 수시로 발동되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부끄러움' 또는 '경계'로 비쳐 오해를 살 게 뻔한 상황에서도 말이다. 예를 들면 가르치던 학생을 온라인 대학원생 세미나에서 (스크린 상으로) 마주치게 되었을 때, 반가움보다 어쩐지 모를 겸연쩍음이 그렇게 나를 싸악 감싸는 것이었다. 선생과 학생의 관계로 보다가 같은 수업을 듣는 원어민 학생과 외국인 학생으로 마주치게 되자, 이제 꼼짝없이 저 친구가 내 치부(?)를 보게 될 테고 나의 전문성도 의심하게 되겠지 하는 류의 무의식적 사고로 이어진 걸지도 모르겠다.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할 때에 딱히 아는 척을 하지 않고서 평범하게 내 차례를 마쳤는데, 그 학생이 자신의 순서에 본인이 나의 수업을 듣고 있노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왜 xx씨(내 이름)가 그걸 말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이라는 서두로 시작하면서 말이다. 아니, 그걸 숨기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그런 식의 인상을 주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또 미안한 노릇이다. 원체 '아는 척' '친한 척' 나서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성격이- 어쩌면 문화 차이가- 작용했을 수도 있다.
결국 적응하는 데 한참 걸린 것은 내가 어떤 면에서는 취약하고 부족한 사람일 수 있다는 인식 자체였을 것이다. 자존감, 자기 효능감 같은 개념들을 생각해보면 별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인식인 게 당연하다. 한동안은 교수님들과 일대일 상담을 할 때 말보다 눈물이 울컥거리며 먼저 나와서 혼나기도 했다(실제로 혼났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곤혹스러웠다는 표현이다). "좀 더 클리어하게 표현해주겠니?" 하는 피드백만 들으면 이해받지 못하는 것에 먼저 속상했다. 나는 정말 그렇게나 하찮고 보잘것없고 한심한(... 이하 생략) 사람인 걸까 싶은 자괴감에 미래도 불투명하게만 느껴지는 나날들이 있었다. 그러나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니, 원어민도 교수들도 실수를 하고 단어를 까먹고, 되물으며 자신의 이해를 확인하고, 스펠링을 틀리고 헛소리를 하더라. 모두가 인간이니까. 인간은 나약하고 불완전하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너도 나도 결코 아주 다를 수는 없다. 이 깨달음까지 오는 게 바로 더 큰 배움에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