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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Feb 27. 2020

알뜨르

알뜨르의 운명은 어디로

 

초등학교 6학년 때, 1학년 아이들의 손을 잡고 도보 소풍을 떠났다. 3km쯤 되는 거리라 초등학교 6학년에게도 벅찬 길이었지만 1학년 꼬마의 손을 잡고 있으니 얼마나 어깨가 무겁던지. 작은 걸음으로 도착한 곳은 알뜨르 비행장. 사방이 트여있어서 맘껏 뛰어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알뜨르 전경 ⓒ 제주의 소리


소풍 소식을 들은 장사꾼도 몰려들었다. 아이스크림, 솜사탕, 달고나, 번데기와 핫도그 노점이 여기저기 들어섰고 뛰어놀다 지치면 단것들을 입에 물었다. 싸구려 장난감 노점과 뽑기 노점도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사탕 하나 받고 돌아서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100원짜리 동전 하나에 모든 운을 걸고 뽑기에 도전하는 아이들 틈 사이에 나도 있었다. 어쨌든 그날의 소풍은 딱히 볼거리 없는 시골의 아이들에겐 놀이공원이나 다름없었다.     


나와 몇몇 아이들은 탄피를 주우면서 놀았다. 운 좋은 아이들은 여러 개 주웠지만 나는 고작 하나를 주웠다. 그 하나의 탄피를 마치 오래된 유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방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 그 탄피의 의미를 그때는 몰랐다.     


비행기가 한 대도 없는 이곳을 여전히 비행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일제강점기, 이곳이 겪었던 역사 때문이다. 중국과의 전쟁에 대비해 조성된 이곳은 중일전쟁시기 중국으로 향하는 폭격의 중심기지였다. 2차대전시기에는 미군에 의한 일본본토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기지로 확장되었다. 수십 년에 이르는 이 과정에서 이 지역 주민들은 땅을 빼앗기고 쫓겨나야만 했다.     


일본 패망 후 알뜨르 비행장의 모습



한국전쟁 시기에는 해병대와 육군의 훈련장으로 쓰였다. 1950년, 제주4.3의 광풍이 불던 시절, 예비검속으로 잡혀온 백여 명이 사람들이 학살당한 현장이기도 하다. 그중에 내 할머니의 동생도 있었다. 1980년대에는 공군기지를 건설하려고 했지만 지역주민들의 치열한 싸움으로 백지화되기도 했다. 그 이후로도 종종 군사기지나 관광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위기의 순간이 있었지만 역시 주민들의 힘으로 좌초되었다. 여전히 이 일대는 국방부 소유의 토지이다. 이 땅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국방부에게 땅을 빌려서 계속 농사를 짓고 있다. 그리고 때때로 예비군 훈련장으로 쓰인다. 내가 주웠던 탄피들은 예비군 훈련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 서귀포신문


알뜨르. 나의 할머니에게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학살의 기억이, 나의 부모에게는 군사기지를 미래세대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싸움의 기억이 있는 곳이다. 나는 탄피를 주우며 남아있는 군사화의 잔재를 목격했지만 커 가면서 달라져가는 이곳의 모습을 보았다.      


지금 이곳은 일제강점기와 4.3을 배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종종 모여드는 곳이 되었다. 감자와 비료를 쌓아두던 격납고에는 사람들의 평화의 바람이 담긴 메시지가 대신 자리를 차지했고 흔적마저 사라져질뻔한 학살의 현장은 다시 복원되어 국가폭력의 기억을 묻는다. 탄피를 주우며 유물처럼 간직하던 어린아이들은 이제 없다. 100원짜리 뽑기에 운명을 거는 아이들 대신 평화를 묻는 아이들이 찾아온다.      


ⓒ 서귀포신문


그런데 평화는 싸움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것일까. 얼마 전부터 다시 이곳에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 일대에 ‘뉴오션타운’이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의 대규모 숙박시설 개발계획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제주의 땅들을 얼마간 갉아먹은 중국자본에 의해서. 이 숙박시설이 들어선다면 알뜨르 비행장과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알뜨르의 이웃이 투기자본이라니.


괌으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바다와 산이 내 고향 제주와 닮아 보였다.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관광객들은 넓은 백사장을 주변으로 한 호텔과 쇼핑몰에서 시간을 보냈다. 면세구역으로 지정된 쇼핑몰에서 명품쇼핑을 즐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인과 중국인, 그리고 일본인이었다. 이미 유명해진 맛집에서는 몰려든 관광객으로 인해 모처럼 기분 내기 위해 찾아온 현지인들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침략과 전쟁을 겪으며 새겨진 생채기를 기억하며 유적지나 박물관을 찾는 사람은 드물었다. 기어코 찾아낸 박물관에서는 평화를 묻는 대신 승리를 기억하는 전시만이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원주민들의 삶이나 전쟁이 무엇인지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쇼핑을 즐기고 한가로이 휴양만 하다 가기에는 얼룩진 괌의 역사가 서글펐다. 이런 곳에서 배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디에서?


알뜨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아이들이 이곳에서 평화를 묻지 않는다면 무엇을 묻게될까? 다만 제주가 괌처럼 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송악산지키기 #뉴오션타운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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