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윤리적 서비스를 제공하라
로마에 도착한 첫날. 비행기 시간 때문에 한밤중에 로마 시내에 당도했다. 끼니를 때우기 위해 로마 시내를 돌아다녀도 도통 문 연 가게를 찾을 수 없었다. 한 시간쯤 헤매고 나서야 패스트푸드 음식점을 찾았고 겨우 아랍식 햄버거와 콜라를 입에 넣을 수 있었다. 배를 채우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그제야 거리의 풍경이 들어왔다. 가게는 거의 문을 닫았고 오가는 사람도 드물었다. 바람에 날리는 쓰레기 때문일까, 도시의 풍경이 을씨년스러웠다. 영화에나 나옴직한 마약거래의 현장 같았다. 무서워서 발걸음을 재촉해 숙소로 들어왔다.
해가 뜬 로마는 활기차다 못해 시끄러울 지경이었다. 오래된 도시라 손볼 곳도 많아서인지 공사장 소리에 청소차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그 어수선한 풍경 속에 나와 같은 여행자와 노동자와 시민이 섞여 로마의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깨달았다.
사람은 낮에 일해야 한다.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밥상을 마주해야 하고 밤에는 자야 한다.
벌써 7년 전의 일이다.
내가 로켓배송 멤버십이 된 것은 두 달 전이다. 아기용품은 사도사도 끝이 없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엄마에게 산후관리사 선생님들은 매일같이 필요한 것들을 말했다. 나는 뭐에 홀린 듯 네네, 하면서 주문했다. 그중에는 당장 내일 써야 하는 급한 물건도 있었다. 그러다 알게 된 로켓배송. 한 쇼핑몰에서 한 달간 무료체험으로 로켓배송을 이용할 수 있다는 마케팅에 혹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니 매월 2,900원만 내면 된다고 했다. 배송비 한번 낼 가격에 한 달 동안 무제한으로 무료배송에 거기다가 로켓배송이라니. 이렇게 싸도 되는 걸까? 고민하면서도 나는 2,900원을 결제했다. 뭐든지 밤 11시 이전에만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에 내 집 문 앞에 필요한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미리미리 필요한 것들을 사놓는 부지런을 떨지 않아도 됐다. 쇼핑이 쉬워졌다. 간헐적으로 이용하는 택배서비스를 정기적인 것으로 나의 일상에 들여놓았다.
그 뉴스가 티브이에 나올 때 뜨끔했다. 택배기사가 과로로 숨졌다는 이야기. 일 년에도 몇 명이 숨진다는 이야기. 밤늦게까지 일하고 쪽잠 잔 후 새벽에 출근하는 고단한 일상. 열악한 처우를 강요하는 사용자. 넘치는 택배량. 봇물처럼 택배노동자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가 멤버십으로 가입한 쇼핑몰에서도 1명의 택배기사와 3명의 물류센터 직원이 올해 목숨을 잃었다.
나의 편리가 누군가의 일상을 갉아먹은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어쩌다 약간의 불편마저 감수하기를 포기하고 ‘로켓’처럼 빠른 배송을 내 일상에 들여놓았을까. 내가 주문한 물건 중 어떤 것도 ‘로켓’처럼 빨리 나에게 당도해야 할 것은 없었다. 로켓이나 총알처럼 무시무시한 단어가 자연스레 자리 잡은 일상이라니.
기업은 왜 소비자의 편리를 가장하여 택배노동자를 피로로 몰아넣는 것일까. 기업이 소비자의 마음을 얻고 더 큰 이익을 내는데 왜 더 많은 택배노동자가 죽어야 하나. 그 착취의 구조에 나는 어느 만큼 편승하고 있는 것일까. 고작 2,900원을 내고 말이다. 부당한 시스템을 운영한 것은 내가 아니라 기업인데 왜 미안한 마음은 나의 몫이 되어버린 걸까. 누군가를 착취하는 것으로 이익을 얻는 것이 가능한 사회. 부당한 문제들이 제도적으로 용인되니 결국 개개인의 마음에 기대게 되는 사회에 사는 것은 얼마나 암울한가.
쇼핑몰 앱으로 들어가 로켓배송 멤버십을 해지했다. 어플은 한 달 2,900원으로 이용 가능한 서비스를 다시 상기시켜주었다.
단 한 번의 배송비로 한 달 내내 하나만 사도 무료배송, 무료반품.
낮에 주문하면 새벽에 도착, 아침에 주문하면 저녁에 도착.
이 모든 것을 포기할 건가요?
그래도 해지 버튼을 누르자 특별히 환불해준다면 2,900원을 돌려주었다. 맙소사. 그마저도 공짜였다니.
누군가를 갉아먹는 서비스를 거부한다. 누군가의 노동에 무감각했던 나의 일상이 조금 불편해지겠지만 분명하다.
사람은 낮에 일해야 한다.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밥상을 마주해야 한다.
밤에는 잠을 자야 한다.
내가 그러하듯이 다른 누군가도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