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룡이 아저씨
먼지가 잔뜩 들러붙은, 그래서 회색 코트처럼 보이는 검정 코트를 입고 다니는 삼룡이 아저씨는 키가 컸다. 수염도 꽤 났는데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검은색과 회색, 흰색이 마구 섞인 수염이 턱 밑으로 수북했다. 그리고 리어카. 삼룡이 아저씨는 늘 리어카를 끌고 다녔다. 리어카에는 잡동사니가 담겨 있었다. 시골의 2차선 도로 위를 거침없이 누비는 삼룡이 아저씨에 대한 소문은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어린 나를 벌벌 떨게 만든 소문은 이런 것이다.
삼룡이 아저씨는 코트 안에 늘 식칼을 들고 다닌다.
언제 누구를 죽일지 모르니 조심해야 돼.
그는 미친 사람으로 불렸다.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혼잣말을 쉴 새 없이 했다. 아무도 위협하지 않았지만 나 같은 어린아이들은 놀라서 도망갔다. 동네 꼬마들 사이에서 그에 관한 소문은 또 있었다.
농협사거리에서 골목으로 들어가면 낡은 집이 있는데 삼룡이 아저씨 집은 그곳이다.
이불도 세간살이도 없이 짚풀 더미를 깔고 덮고 생활한다.
그에 관한 소문은 그를 두려운 존재로 만들었다. 아빠는 삼룡이 아저씨의 원래 직업은 물장수였다고 했다. 원래는 엄청 똑똑한 사람인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그제야 왜 삼룡이 아저씨가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지 이해가 되었지만 정말 똑똑한 사람이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 또한 아빠 세대의 그에 대한 소문일지도.
그가 갑자기 궁금해진 것은 이십 년도 더 지난 지금, 서울살이가 다섯 해로 접어들면 서다. 바쁜 도시에서 나는 종종 나의 고향과 이 도시의 다른 점을 찾곤 했는데 그중 하나가 삼룡이 아저씨다. 이 도시의 일상에는 삼룡이 아저씨가 없다. 삼룡이 아저씨와 같은 사람이 마음껏 누빌 도로도 없다. 서울에는 삼룡이 아저씨가 없기 때문일까?
삼룡이 아저씨만 없는 것은 아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해 한쪽 다리의 절반을 잃었던 상이군인 아저씨도, 초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특수학급의 자매도, 마음의 나이가 일곱 살에 멈춰버린 아줌마와 말 못 하는 아저씨 남매도 없다. 밤낮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일하는데 이들은 없다. 시골에 살 때는 간혹 동경의 대상이던 이 도시에서는 가난한 나도 없다.
삼룡이 아저씨는 지금쯤 죽었겠지만 외롭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체면 때문일지는 몰라도 이웃들이 그가 외롭게 죽도록 두지는 않았을 테니까.
서울의 삼룡이 아저씨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모든 것이 다 있는데 어떤 사람은 없는, 내가 사는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