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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Oct 07. 2021

낳으면 끝인줄 알았는데

출산의 각인

안녕? 우리 잘해보자. 라고 말하기로 했다.     


출산을 한 달쯤 앞두니 출산에 대한 상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수술방 침대에 누워 부분마취를 한다. 내 배를 서걱서걱 가르고 두 명의 아이를 순서대로 꺼낸다. 의사가 아기를 데려와 벌거벗고 누워있는 나에게 데려온다. 드라마에서처럼 눈물은 나올 것 같지 않고, 그래도 어색하니 할 말을 미리 정해두었다. 안녕? 우리 잘해보자. 라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게 인생이라지만 출산이 그러할 경우에는 난감하다. 출산 일주일 전, 갑자기 솟은 혈압 때문에 급하게 병원을 찾았고 임신중독 판정과 함께 긴급 제왕절개 수술이 결정됐다. 한 명의 간호사가 내 몸에 주삿바늘을 꽂고 두 명의 간호사가 동시에 내 옷을 갈아입혔다. 밖에서 남편은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서명을 했다. 무서워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는데 다른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산모복을 휙 들추고 면도기로 아랫도리 털을 깎기 시작했다. 털 때문에 감염이 되면 안 되니까. 아, 출산 전에 왁싱을 하면 굴욕을 견딜 수 있다는 말에 고민하고 있었는데. 나오려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털이 깎이자마자 전공의와 간호사가 수술복을 입은 채로 내 침대에 붙었고 수술방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가는 와중에 의사가 아침을 먹었는지, 얼마나 먹었는지 몇 번이나 물어봤다.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배고파서 바나나랑 토마토를 갈아서 먹었는데, 진짜 조금 먹었는데, 어쨌든 먹긴 먹어서 전신마취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아. 내 인사말.     


수술방은 추웠다. 산모복을 입은 채로 아래쪽이 훤히 들춰지니 몸이 덜덜덜 떨렸다. 추워요. 라고 말하니 따뜻한 핫팩을 가슴에 대어주었다. 숨 쉬세요, 라는 말과 함께 깊게 숨을 쉬었다.     


간호사가 깨워서 눈을 떴다. 좀 더 자고 싶었는데 자면 안 된다고, 자꾸 나를 깨웠다. 자고 싶다고 열 번쯤은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고 싶다고 했는데 그것도 안 된다고 했다. 정신이 들기 시작하니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오마이갓. 당장 페인부스터(진통제)를 가동하라고 남편에게 시켰다. 아픈 것은 그나마 견딜 만 했다. 제일 고통스러운 것은 소변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나처럼 임신중독으로 출산을 한 경우에는 소변량을 체크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을 마시고 소변을 많이 보기 위해 노력했다. 소변줄을 빼고 나서부터가 시작이었다. 제대로 걷기는커녕 앉아있는 것조차 힘든데 하루에도 몇 번씩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소변을 볼 때마다 핏덩이가 웅큼웅큼 나왔다. 오로였다. 소변을 소변계량통에 넣을 수조차 없어서 싸는 것만 빼고 남편이 모든 과정을 도맡아 했다. 내 소변을 받고 소변계량통에 넣은 후 소변량 체크. 그리고 소변 비우는 곳에 가서 소변을 비우고 소변통 세척에 소독까지. 비위가 강해서 다행이었다.          


몸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페인부스터가 없어도 견딜만한 통증이었다. 소변량도 좋은데 혈압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기침하다가 코피가 터졌다. 혈압이 갑자기 180까지 치솟았다. 한 시간마다 간호사가 혈압 체크를 하느라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온몸에 기계와 링거를 주렁주렁 달았다. 결국 퇴원하기로 한 날 퇴원하지 못했다. 퇴원시켜달라고 담당 교수님께 말하니 돌아오는 답.     


혈압이 안 떨어진 사람을 퇴원시켰다가 다음 날 실려왔는데요. 지금 사지가 마비된 채로 요양병원에 누워있어요.     


주섬주섬 환자복으로 다시 갈아입었다. 교수님이 다량의 주사약을 처방했고 마침내 혈압이 떨어졌다. 다음 날 퇴원했다. 한 움큼의 약과 이 주간 매일 아침저녁으로 혈압 체크를 해야 한다는 숙제와 함께.     


퇴원하면 끝인 줄 알았다. 산후조리원에서 삼시세끼 차려주는 영양가 있는 밥을 먹고 마사지도 받고 스트레칭 좀 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면 출산은 그걸로 끝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혈압이 떨어지긴 했지만 원인불명의 임신중독이었기 때문에 계속 병원에 다녀야했다. 심장혈관센터를 다니면서 경과 관찰을 했고 마지막으로 몸에 기계를 달고 하루를 생활한 후 나온 혈압을 보고 진료가 종료되었다. 5월에 출산했는데 10월에 출산이 끝난 기분이었다. 임신중독의 원인은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순간의 고통이면 끝인 줄 알았다. 임신한 여자라면 누구나 하는게 출산이라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사실은 많은 산모가 위험한 상황을 겪는다. 산후조리원에서 만난 산모들도 그랬다. 양수 부족으로 출산한 산모, 그 산모의 아기는 이른둥이로 태어났다. 몇 개월 동안 늘지 않는 몸무게 때문에 분유를 몇 번이나 바꾸고 아기 영양상담에, 발달이 느려 재활치료까지 받았다고 한다. 아기가 내려오지 않아 간호사가 위에 올라타 배를 눌렀다는 산모, 그녀의 배는 온통 멍투성이였다. 회음부 통증 때문에 제대로 의자에 앉아 밥조차 먹을 수 없었던 산모는 미역국 한 숟가락 겨우 떠먹고는 식사를 멈추었다. 눈에 늘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쌍둥이를 낳은 지 15개월. 여전히 손마디가 시린다. 자주 어지럽다. 오래 걸을 수 없다. 눈이 침침하다. 기타 등등. 아기를 낳으면 끝인 줄 알았는데 내 몸 곳곳에 ‘출산’이 각인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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