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다 Oct 22. 2021

모유수유라는 지옥

천국은 없다

거울을 보니 부푼 가슴이 보였다. A컵 속옷도 남아돌던 작은 가슴이었는데 이제는 가슴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아마 내 인생에서 이 정도 크기의 가슴은 절대 다시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쌍둥이는 4시간 마다 수유를 했다. 하루 6번. 두명이니까 12번. 아무리 젖양이 많아도 체력적으로 감당이 안되었다. 특히 밤중수유는 더 그랬다. 선둥이를 먹이고 재우고 나면 후둥이가 깨고. 후둥이를 먹이고 재우고 나도 잠을 잘까 싶으면 또 선둥이가 깨서 밥달라고 짹짹. 나는 집에서 거의 벗고 다녔다. 언제든 짹짹거리면 젖을 꺼내 물릴 수 있도록 어깨끈을 쉽게 내릴 수 있는 민소매티만 입고 있었고 그마저도 수유 중에는 번거로워 벗어던져버렸다. 누군가를 먹이고 살리는 일이 이토록 원초적인 일인걸 몰랐다. 배우자에 대한 원망도 생겼다. 어째서 진화란 이런 것일까. 아니, 내가 낳았으면 먹이는 건 또 다른 양육자가 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아기가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에 부스스 일어나 젖을 꺼내며 배우자를 바라봤다. 그는 너무 태평하게 코골며 자고 있었다. 아, 젠장. 너무 지친 나머지 한 명씩 먹이는 걸 중단하고 한 쪽에 한명씩, 두 명을 양 팔에 끼고 동시에 먹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감당할 수 없어 분유를 샀고 혼합수유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고달팠다. 잠을 제대로 자기는커녕 쌍둥이를 돌보다보니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 간식을 잔뜩 사다가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앉아서 밥 먹을 시간이 없으니 오며가며 간식을 집어 먹었다. 나도 살려고 먹은 간식이 화근이 될 줄은 몰랐다.     


초코과자를 10개정도 까서 먹은 날. 가슴이 단단하게 뭉쳤다. 뭐지? 또 인터넷 항해. 유선이 막혀 젖이 나오지 못하고 가슴 안에서 차올라 뭉친 것이라고 했다. 거울을 보니 가슴에서부터 목까지 파란 혈관이 거미줄처럼 얽혀진게 보였다. 내 젖이 혈관마다 가득찼다고 생각하니 조금 징그러웠다. 분유 대신 다시 직수를 시작했다. 직수를 하니 유선은 뚫렸지만 막혔다가 뚫렸다가를 반복하고 급기야 직수로도 뚫리지 않게 되었다. 젖이 나오지 않자 아이는 수유를 거부했다. 가슴이 아팠다. 뜨거웠고 무언가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아팠다. 제왕절개 수술보다도 훨씬 고통스러웠고 아파서 울었다. 지옥이었다.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한시간동안 마사지사는 내 가슴을 쥐어짰고 눈물이 흐를 정도로 아팠다. 가슴을 쥐어짤 때마다 젖이 허공으로 뿜어져 나왔다. 젖은 차가웠는데 만들어진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따뜻한 젖을 먹여야한다고, 꼬박꼬박 직수하기를 권장했다. 마사지사는 아기를 위해서라도 단유는 권하지 않았다. 마사지비용으로 8만원을 결제하고 나왔다.     


쌍둥이를 매번 직접수유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아기가 깨어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수유텀에 맞춰 젖을 짜지 않으면 바로 젖이 뭉쳤다. 화장실에 앉아 거울을 보며 마사지사가 했던 것처럼 가슴을 마사지했고 유튜브에서 본대로 바늘로 막힌 유두를 찾아 뚫었다. 하루에도 두세시간씩 화장실에 앉아 막힌 가슴을 뚫으며 단유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했다. 아이에게 그 좋다는 모유를 먹이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이 고통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혼란스럽게 교차했다. 젖양도 젖질도 좋은데 고통을 감내하지 못해 분유를 먹여야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껄끄러웠다. 젖이 뭉치는 주기가 짧아지고 고통이 커지자 결국 결심했다.     


물을 마시지 않았다. 수분은 그대로 젖이 되니까. 양배추를 대면 젖양이 줄어든다고 해서 브래지어 안에 양배추를 넣었다. 양배추는 금방 흐물흐물해지면서 괴상한 냄새를 풍겼다. 매시간 냉찜질을 했고 잘 때에도 얼음팩을 브래지어 안에 넣고 잤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면 젖이 한두방울 나오길래 찬물로 샤워를 했다. 단유에 좋다는 차를 비싼 가격에 주문해서 마셨다. 그러자 젖양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아기가 먹을 시간만 되면 옷을 적실 정도로 알아서 뚝뚝 나오던 젖이 차츰 양이 줄더니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끝났다. 샤워를 하면서 가슴을 쭉 눌러 남은 젖을 짰다. 뽀얀 방울이 뚝뚝 떨어지다가 멈췄다.     


더 이상 젖이 나오지 않자 맥주를 마셨다. 떡볶이도 먹었다. 이제 술과 매운 음식, 향신료가 잔뜩 들어간 음식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유축기를 들고 잠을 쫓아가며 젖을 짰던 시간에 단잠을 잔다. 컸던 가슴은 갑작스런 단유에 완전히 쪼그라들었다. 임신하기 전보다 더 작아졌고 목욕탕에서 봤던 할머니 가슴처럼 흐물흐물해졌다. 볼품없었지만 괜찮았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고 제 역할을 다했기 때문에 이제 어떻게 생겨먹든 상관없었다.     


참새처럼 입을 쭉쭉 내밀며 젖을 찾는 아이의 모습을 더 이상 못보는 것은 조금 슬펐지만 배우자가 남겨둔 몇 장의 사진으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백일간의 짧은 천국과 긴 지옥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직업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