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일 년 만에 혼인신고를 했다. 법적으로 예속된 관계가 되고 싶지 않아서 일 년간 미루었지만 미룰 수 없는 이유들이 생겨났다. 신혼부부 대출이나 은행 우대를 받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부부’ 여야 했다. 그밖에 필요했던 다른 행정적인 이유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기로 결정했다. 고작 서류 한 장으로 법적인 지위와 더불어 행정편의까지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영 마뜩잖았지만 혼인신고를 하기로 했다.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 서대문구청을 찾았다. 서류를 쓰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서류의 4번 질문에도 막힘없이 ‘예’를 선택했다. 자녀가 태어나면 모계의 성과 본을 따르는 것에 합의했는지에 대한 여부였다. 아직 아이 계획이 없었지만 모계성 역시 선택지로 두고 싶었다. 당당하게 서류를 내밀었는데 구청 직원이 서류를 보더니 다시 슬쩍 우리 쪽으로 밀어 넣는다.
“모계성 따르실 거예요? 한번 정하면 다시 못 바꿔요.”
협의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구청 직원이 귀찮은 행정절차를 밟는 대신 관행대로 하라고 은근슬쩍 눈치를 주고 있었고 배우자는 우물쭈물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화가 와락 났다.
“다음에 와서 다시 할까?”
배우자가 물었다.
“뭘 다시 해! 뭐 이딴게 다 있어. 그냥 아니오로 해. 애는 안 낳으면 그만이지!”
구청 직원이 아니오에 체크된 서류를 가져갔고 혼인신고는 오분도 안 걸려 끝났다. 혼인신고로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면 모계성을 따르지 않겠다고 공인한 셈이 되었다. 성 따위가 뭐길래 강력한 법적 구속력을 갖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는 안 낳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낳지 않을 생각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쌍둥이를 임신했다. 쌍둥이가 태어나기 전 우리는 아이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을지 밤마다 이야기했다. 부르기에 좋은 이름들을 메모해두고는 밤마다 되뇌어보고 또 새로운 이름들을 생각해냈다. 우리가 처음 지은 이름들은 부계성 뒤에 모계성을 붙인 이름들이었다. 부계성이 오, 모계성이 신,이었기 때문에 붙여 쓰면 오신-이 되었다. 오신으로 시작하는 이름들 수십 개를 열거해도 영 마음에 드는 이름이 없었다. 며칠 동안 수백 개의 이름을 생각했지만 어떤 이름이 들어와도 별로였다. 최악의 성 조합이라고 생각하며 우리는 웃었다. 마음에 드는 이름을 찾았을 때에는 부계성이나 모계성 둘 중 하나만을 써야 어울렸다. 그러나 우리는 ‘법적’으로 부계성만을 따르겠다고 합의를 했기 때문에 모계성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늘’과 ‘하나’라는 이름이 나오자 결국 내가 마음을 접었다. 하늘과 하나에게는 모계성보다 부계성인 ‘오’가 더 잘 어울렸다. 그래, 부르기에 좋고 예쁜 이름이다. 부계성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름과 어울리는 성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의 두 딸은 오하늘과 오하나가 되었다.
다만 나의 성이기 때문에 모계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부계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왜 가족을 구성하는 중심에서 모계의 위치는 기울어져 있는 것일까. 부계중심으로 만들어진 가족구조에 균열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 왔기 때문에 의심 없이 당연하게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철옹성 같은 단단한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부계성을 따르는 데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지만 모계성을 따르는 데에는 무수한 협의와 절차가 필요하다. 이건 당연한 일이 아니라 이상한 일이다.
지금, 나의 두 아이는 부계성을 따르기로 했다. 부계성이지만 아빠의 성이라서가 아니라 단지 부르기 좋아서다. 그리고 나중에 아이들이 자라면 성도 이름도 스스로 선택하게 하자고 합의했다. 복잡한 절차 없이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하늘아, 하나야. 네 마음에 드는 이름을 짓고 쓰렴. 이름은 네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