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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 Oct 10. 2019

부지런 떨었는데 하는 게 없어!

나만의 댄스 개척자

두둠칫 두둠칫

피트니스 댄스로 유명한 유튜버 Marshall의 영상을 보며 “얼추 동작이 완성되었어…”라고 생각했다

마스터된 ‘춤 선’을 보기 위해 전신 거울로 가 셀프 초연을 펼쳤는데 ‘쉰 섞어찌개’ 맛이 난다.


그 맛은

#’ 병맛’ 보다 더 구린 맛

#돈 주고도 못 먹을 맛


순도 100% ‘꼴불견’이었고  내 팔다리의 각개 독립 선언이었다


나의 백수로의 삶은 이 춤사위와 비슷하다


전날 밤 머리로 그리는 나의 하루는 위대하다

가장 위대했던 날의 계획은

-새벽 4시 기상

-아침 명상 + 영어공부(혹은 독서, 글쓰기)  

-아침운동

-8시 온 가족 아침식사

-오전 영어공부

-예쁜 상차림의 점심

-오후 독서

.

.

.

.

자기 계발서에 등장하는 수많은 스킬들이 촘촘하게 이어지는 하루다



그런데 실천으로 보자면

8시에 겨~우 눈을 뜬다. 벌써 글러먹었다


명상, 아침운동, 공부…

모두 스킵하고 구운 베이글을 딸아이 손에 쥐어주고 부랴부랴 준비하고 헐레벌떡 나선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집에 와서 청소를 하지만 전날 아이의 에너지가 좋았던 아침은 온 집이 장난감 폭탄이기 때문에 '조바심'을 느끼며 나중으로 미룬다

(조바심이 나는 이유는 '이걸 다 치우다가는 내 시간이 없을거야~' 하는 불안함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만의 시간을 즐기는 차원에서 티브이를 켜고 이것저것 본다


하지만 요즘은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제일 많다



그림이 아니었다면 나는 나에게 ‘놈팽이’라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집안일을 시작한다


콧노래와 함께 설거지를 시작하고, 문득 창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pause~

“음~~ 날씨 참 좋네”


그리고 기분 좋게 행주까지 탈탈 털어놓고는 베란다에서 커피 한 잔 마시기


이런~~~~~ 여유와 살림 솜씨로 집안을 포근하고 깔끔하게 가꾸는 게 '로망'이다


하지만 현실은 아이를 픽업하는 시간에 쫓겨 무조건 빨리 해치운다

여유로움은 수박씨만큼도 없다

후다닥후다닥 후루룩후루룩


시간이 부족하다 -> 느낌 있게 살림할 여유가 없다 -> 자투리 시간을 쪼개 보자 -> 일찍 일어나자 -> 의미 없는 습관성 행동을 줄이자


돌고도는 각오와 채찍질에 갇혀 미로 속을 헤매다가 밤 11시를 맞이한다


왜 머릿속 계획은 두둠칫 두둠칫인데

다음날 하루살이는 왜 이렇게 구린 것인가…


하루 종일 바빠봤자 멋진 일, 근사한 수확이 손에 없다


남편이 퇴근을 하면 같이 요즘 그의 핫한 회사 에피소드를 나눈다

우리의 미래이기도 한 중요한 이야기다


나는 하루 중 잊을 수 없는 딸아이의 귀여웠던 순간을 남편에게 얘기해준다

그렇게 하고 나면 내 ‘것’으로 할 이야기가 없다


내가 일을 할 때에는 배틀이라도 되는 냥 남편의 얘기를 들은 후에는   

“나는 근데 오늘 무슨 일이 있었냐면~” 하며 내 이야기를 나누고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했는데 요즘  나는 나만의 이야기가 없다


지난밤에는 치미는 한심함 답답함에 남편에게 이런 심정을 풀어냈다


“엄마들이 말하는 하는 일 없이 바쁘다는 게 뭔지 알겠어”


“다 내 의지력의 문제지”


“새로운 삶과 자유롭게 주어진 시간을 멋지게 요리 못해서 한심해”


“집중할 수 있는 내 걸 찾는 게 어려워”


남편은 평소에 굉장히 다정한데 졸리는지


내가 “엄마들이 말하는 하는 일 없이 바쁘다는 게 뭔지 알겠어”라고 말하면


“아.. 알지…”


또 “근데 의지의 문제 같기도 해”라고 하면


“음.. 의지…”


또 “새로운 삶과 자유롭게 주어진 시간을 멋지게 요리 못해서 한심해”라고 하면


“에이.. 아니야~”


또 “집중할 수 있는 내 걸 찾는 게 어려워”라고 하면


“어렵지….”


영혼 없는 앵무새 화법으로 말꼬리만 따라 하는 게 화가 나서 버럭버럭 해주었다

그제야 아냐 아냐~ 자기는 뭐든 할 수 있고~~ 주절주절


사실 버럭은 나한테 해야 하는 건데.. 엄한 화풀이 었다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걸 찾는 것, 내 시간을 요리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건 나뿐이란 걸 알기 때문에 남편의 위로를 듣는 척하면서 토닥토닥 재워주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4시?

100년도 못 사는 인간이 1000년을 걱정하는 꼴과 엇비슷할 수 있을까

8시도 못 일어나는 인간이 ㅋㅋㅋ 4시? 개뿔이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 없다 ㅋㅋ (리얼 현웃)

그래서 이거 하겠다~ 저거 하겠다는 욕심을 좀 버려 보기로 했다


"오케이 인정! 넌 잠꾸러기니까 푹 자고 8시에나 잘 일어나라"


쫓기듯 일어나는 대신

“어머~ 잘 잤어~ 8시간 넘게 누워있었더니 주름이 다 펴진 기분이네~” 하기로 했다  


그리고 뭘 하든 조금이라도 '뭘 하려는' 나를 기특해하기로 했다


“살림도 하면서 자투리 시간 내서 뭐라도 해보려고 하다니 그 결심!? 알라뷰~”


살림왕 & 멋진 엄마 & 나만의 어떤 것

“두세 마리 토끼 모두 잡고 싶으면 하나 잡고~ 또 하나 잡고~ 또 하나 잡고~”하면 되니까

주어진 첫 번째 토끼에 집중하자!!  


이렇게 생각하니 내일부터 대단히 달라질 건 없겠지만 마음은 좀 편해졌다


이상도 좀 줄이고, 현실은 반 발자국만 대신에 '또박또박' 가리라~~~~





오늘 하루가 조용히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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