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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과 이유 Oct 07. 2021

노년의 절망은 없다

일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는 엄마

오후 세 시 엄마는 우체국으로 출근을 하신다. 매일 갈 수 있는 곳이 있는 게 기쁜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일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희망이라고 하신다. 70세 중반에 엄마는 혼자가 되셨다. 혼자 계시는 부모님을 바라보는 마음이 먹먹하다. 작년에 아버지가 먼저 하늘나라로 가시고 난 뒤, 엄마는 홀로 삶의 여행을 하고 계신다. 엄마의 슬픔과 어려움을 모두 알기는 어렵다. 


“oo야, 이번 추석에는 다른 거 말고, 영양제 하나 사와라!”

“어떤 영양제요?”

“비싼 거 필요 없다. 요즘 포스트 바이오틱스 유산균인가 그게 유명하다더라. ”


엄마는 그동안 제대로 된 영양제도 못 드셨다. 하루하루 살아내기 바쁘셨기 때문이다. 작년 1월 아버지께서 갑자기 쓰러지셨다. 2020년 봄. 아버지는 주무시는 상태에서 먼 길을 가셨다.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시기는커녕 아무 준비도 안 되신 상태에서였다. 삶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몫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가족들은 슬픔은 뒤로 한 채 엄마께서 어떻게 사셔야 할지 대책을 마련하는 걸 우선으로 하였다. 아버지께서는 흔한 국민연금도, 연금저축도 보험도 남기지 않으셨고, 통장의 잔액도 없으셨다. 엄마께서는 남은 인생의 여정을 홀로 준비해 가셔야 했다.  



공무원 생활을 하시다가 사업을 하신 아버지. 엄마는 그런 아버지와 자녀인 나와 내 동생을 돌보시느라 바쁘셨다. 엄마께서는 평생 동안 경제활동을 거의 하지 않으셨다. 재작년 우연한 기회에 요양보호사 자격증 시험을 치르시고, 작년 봄 처음으로 요양보호사 급여를 받기로 하셨다. 급여를 받기로 한 날을 하루 남기고 아버지는 먼 길을 떠나셨다. 엄마의 자격증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엄마가 경제활동을 할 시간이라도 주시지, 아버지는 왜 그렇게 급하게 가셨는지 모르겠다.   


노인 일자리 지원이라는 게 있다. 엄마께서 지원을 하셨는데 다행스럽게도 합격을 하셨다. 

“아무나 뽑는 자리가 아니야.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어서 된 것 같아.” 


얼마 전부터 엄마께서는 우체국에서 일을 하시게 되었다. 그나마 자격증이 있어서 합격이 되셨다고 좋아하셨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무용지물은 아니었던가 보다. 하지만 자녀 입장에서는 엄마가 일을 하시는 게 좋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무릎과 허리가 좋지 않으신데 하루에 세 시간씩 서 계시면서 우체국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체온과 출입관리를 하신다. 

“이거라도 하는 게 어디야? 운동도 되고 좋다!” 

엄마께서 애써 좋아하시는 척 말씀하시는 건지, 실제로 좋아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다. 


집에 혼자 계시면 오히려 우울하고 힘드실 것 같아서 엄마께서 일 하시는 것에 찬성을 하였었지만, 막상 하루에 세 시간씩 서 계신다는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무너진다. 40대인 나도 하루에 세 시간 서 있기는 힘든데, 건강 좋지 않으신 엄마께서 하시기에 쉬운 일은 아닐 듯싶다. 자녀들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도 그냥 일 하지 말고 집에 계시라고 말이 안 떨어진다.  


2021년 엄마께서는 일을 시작하시고, 일하는 노인의 세계로 진입하셨다. 오랫동안 서 계셔서 다리가 매일 퉁퉁 붓는다고 하신다. 그럼에도 엄마께서는 일 하는 게 좋다 하시며 웃으셨다. 진정한 웃음인지는 의문이다. 엄마는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셨다. 결코 절망하지는 않으셨다. 절망 가까이에 계실 것 같지만 그렇지 않으셨다.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살아가기를 멈추지 않으면서 의미를 찾으시고, 방법을 찾으셨다. 세상은 흘러가고, 우리는 희망으로 살아야 한다. 


이번 추석 엄마께서는 상다리가 휘도록 음식을 차리셨다. 식구도 별로 없는데, 조금만 하시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무 말하지 않고 엄마를 도왔다. 그리고 영양제를 드렸다. 엄마의 남은 삶. 휘청거리는 노년이지만 절망하지는 않는 삶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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