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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는 사람 Apr 03. 2024

남편이 무너지던 날

 어제의 일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퇴근한 남편 얼굴이 말도 못 하게 일그러져있었다.


  "왜 그래, 지금 울어?"

 쓸데없는 질문이었다. 남편은 이미 벌벌 떨며 흐느끼고 있었다. 아침에 멀쩡하게 출근한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적어도 나 때문은 아니다. 그사이 내가 변한 건 없으니까.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로 우는 남편을 보며 도대체 왜 이러는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도 저렇게 무너지진 않았는데 얼마나 끔찍한 일이 발생한 걸까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왜, 무슨 일 있어?"

 물어보면서 나는 답을 원했던가? 차라리 이유를 모르고 싶었다. 알게 된다는 게 두려웠다. 그러나 때로는 현실을 마주해야만 할 때가 있다.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남편은 울먹이며 뭐라 그러는데 잘 못 알아듣겠다.


 "응? 회사가 망했다고? 괜찮아..."

 머릿속으로 재빠르게 계산해 본다. 웬만큼 망해서는 이렇게 집에 와서 울지 않을 텐데 아주 쫄딱 망해서 거리에 내앉게 됐나 보. 과연 그러고도 괜찮은 걸까? 내가 참 무책임하게 말하는구나.


 "누나가 죽은 것 같아..."

 이제 남편은 통곡을 한다.

 "어떡하면 좋아... 누나 죽었으면 난 어떡해..."

 "어떤 누나? 어쩌다? 어떻게 알았는데?"




 시부모님이 돌아가시자 형과 누나들은 늦둥이 막냇동생인 남편을 제외하고 유산 빼돌리기에 급급하더니 자연스레 우리와 연락도 끊었다. 남편은 형제들에게 많이 실망하고 서운해했지만 저쪽에서 적극적으로 변명이라도 해주면 못 이기는 척 지내려 했는데, 그들은 오히려 얼씨구나 신이 나서 잠적해 버렸다. 그렇게 15년이 지났고 그나마 간간이 연락 주던 둘째 누나에게 카톡이 왔는데 언뜻 본 첫 문장이 무서워서 클릭을 못하고 있단다. 아무래도 암으로 죽었다는 부고문자 같다고... 그런다고 이미 벌어진 일이 없던 게 되지는 않을 텐데 일단 확인을 하는 게 우선이다.


 "그럴 리 없을 거야. 사고로 즉사한 게 아니라면 죽기 전에 연락 한번 안 했겠어? 당신이라면 그랬겠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둘째 누나가?"

 그제야 남편은 이성을 찾았는지 아니면 그렇게라도 믿고 싶었는지 핸드폰을 꺼냈다. 하지만 차마 누르지는 못했다.


 "내가 할게."

 핸드폰을 조심스레 뺏었지만 남편이 말려주길 바랐다. 혹시 모를 비보를 확인하는 것도 두려웠지만 그것을 남편에게 전해야 하는 것도 끔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주저하면 남편이 더 동요할 것 같아서 숨을 한번 내쉬고 카톡을 찾았다.


 '췌장암으로 오늘 2시...'

 미리 보기에는 여기까지 나와있었고 나는 그다음을 보기 위해 클릭했다.


 '... 오늘 2시 수술받는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오늘 2시 발인이 아니라 수술이라니. 순간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울고 싶어 졌지만 한 번 더 숨을 크게 쉬고 침착하게 말했다.


 "췌장암은 맞아. 그런데 죽은 게 아니라 수술이래. 그러니까 아직 기회는 있어."

 말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기회? 무슨 기회? 관계를 재정립할 기회, 아니면 마지막 인사를 나눌 기회? 남편은 내 말뜻을 제대로 알아들었을까?

 그게 무엇이든 그런 기회가 생겼다는 게 감사한 건 맞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녀의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이미 같은 암으로 어머니를 보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나간 시간을 후회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지만 어쩔 수 없는 회한이 밀려들었다. 결국 인간은 언젠가 죽는데 무엇을 위해 그리 욕심내며 어리석게 살아가는 걸까. 마지막 인사로 회포를 푼다 해도 그건 산사람의 만족이자 위안이지 죽는 자에게는 피할 수 없는 죽음만이 있을 뿐. 오늘 당장은 죽음을 피했다 해도 삶은 얼마 남지 않았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모두가 그러하다. 언젠가는 누군가가 병든 나를 붙잡고 자신의 위안을 채우겠지. 그때의 내가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려면 지금 어떻게 살아야하는걸까.


 하루가 지나 남편은 어느 정도 예전으로 돌아왔다. 수술이 잘 되고 누나가 무사히 깨어나서 연락 주기만을 기다리며 초초한 시간을 보낸다.

 나도 여느 때처럼 나의 일상을 살아내겠지. 이번 일로 우리의 인생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지금은 모르지만 그게 무엇이 되었든 이번에는 좀 더 현명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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