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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J크로닌워너비 Jun 01. 2023

바보새의 비상

보들레르의 <알바트로스> 변주

신천옹信天翁(*)이란 거대한 바닷새가 있소

한 번의 비행으로 쉼 없이 이천리를 날고

두 달이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이 하늘의 전령은

거대하고 길쭉한 날개로 창공을 가르매

거친 태풍조차 그를 막을 순 없소


창공을 호령하는 신천옹도

뭍에 올라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소

구름을 희롱하는 거대한 날개는

지상에선 박제되어 퍼덕일 수조차 없고

연약한 두 다리로 뒤뚱거릴 뿐이오


사람들은 이 모습을 ‘바보새’라 부르며

발로 걷어차고 돌을 던지며 야유하오

하늘을 믿는 이의 올곧은 신념은 어느새

뭍의 광기에 휩쓸려 잘 보이지 않소


언젠가 찾아올 천시天時를 알기에

믿음은 얼룩이 묻을지언정 바래지 않기에

신천옹은 태풍을 묵묵히 기다릴 뿐이오


찾아온 태풍에 지상이 공포로 떨 때

믿음에 묻은 흙먼지가 태풍에 씻겨 나갈 때

되찾은 자태를 뽐내며 신천옹이 부양할 때


사람들은 자신들의 무지를 깨닫소

하나 신천옹은 지상 따위는 상관 않고

고고히 자신의 하늘을 개척해나갈 뿐이오


바보새는 그저 비상할 뿐이오


* 신천옹信天翁 = 알바트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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