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이 고픈 딸과 칭찬하지 못하는 엄마
어제 학원을 다녀온 딸과 언짢은 일이 있었다.
딸은 개학 후 계속 피로가 누적돼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어제 우리 집에 몰아닥친 파도의 근본적인 원인은 나에게 있었다.
평소 딸이 나에게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불만은 칭찬과 인정을 잘 해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딸은 충분히 엄마에게 칭찬받을 만한 행동을 했는데도 엄마인 내가 칭찬을 해주지 않아 섭섭하다는 말을 전부터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
'나는 왜 칭찬이 그렇게 어려울까?'
아마 가장 큰 이유는 딸에 대한 기대감이 크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닌가?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한 것 아냐?'
라고 자주 말해왔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는데.어른의 눈높이에서 기준점을 찍고, 부족한 점은 열심히 잔소리를 하되 잘 한 것에 대해서는 당연하다 여기며 칭찬할 필요를 못 느꼈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좀 다른 성격의 예일 수 있으나 내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몇 시간 공들여 열심히 만들었는데 먹는 사람이 맛있다는 말도 없이 그냥 몇 숟가락을 뜬다. 그리고 음식 맛을 물으니
"십 년이 넘게 부엌일했는데
이 정도 음식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하고 말을 한다. 그럼 난 기분이 어떨까?
이렇게 생각해 보니 엄청 속상하고,
힘이 빠졌을 것 같다.
칭찬은 관심이고, 사랑인데 아이는 나의 관심과 사랑에 여전히 목이 마른 듯하다.
내가 칭찬을 잘 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과거 나의 어린 시절의 영향도 있다. 쌍둥이였던 나는 언니보다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라면 어떤 노력이든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 어른스럽고, 바르게만 행동했던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의 기대감에 못 미치면 어쩌나 생각하느라 정작 내 마음을 살피지 않았다. 그런 탓에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를 때가 부지기수이고, 이게 잘 하는 건가 싶은 일들이 아직도 넘쳐난다. 그렇기에 내 삶의 기준은 내가 되어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나를 자랑스러워하고 스스로 뿌듯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그래야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걸 아이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아직 나의 그런 마음이 가닿지는 않는 듯하다.어쩌면 나처럼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섭섭하고, 속상해 눈물을 흘리는 아이를 안고, 너의 마음을 몰라줘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리고, 이렇게 뭐가 불만인지 말해줘서 고맙다고도 했다. 여러 번에 걸쳐 나의 문제점을 이야기해준다는 건 나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춘기 시절, 부모와의 벽을 쌓고, 더 이상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 아이들도 많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고, 여전히 답답한 엄마임에도 꾸준히 솔직하게 문제점을 이야기해주는 딸아이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딸에게 잔소리를 하듯이 계속해서 엄마에게도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아이는 그런 내 진심을 받아줬다.
큰 아이와의 긴 대화를 끝내고, 둘째와 잠자기 전 인사를 나누는데 둘째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엄마란 직업은 정말 힘든 것 같아."
그 말을 듣는데 웃음이 났다. 그리고
"엄마도 직업인가?"
라고 물으니
"그건 아니지만 아무튼 힘들 것 같다고."
라고 했다. 오늘은 내 마음을 아주 잘 이해해 주는 둘째이지만 이 아이도 언제 또 다른 파도를 이끌고 올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두렵지 않다. 무섭게 몰아치던 파도도 바람이 잦아들면 곧 잠잠해지기 마련이니까.
큰 딸의 눈이 어젯밤 펑펑 운 탓에 아침에는 퉁퉁 부어 무거워 보였다. 하지만 오후가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아이의 얼굴에서 윤슬이 반짝인다.
'딸아! 오늘따라 너의 웃는 모습이 참 예쁘다.
농담이 아니고 진심이야.
엄마 마음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