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에서 지진을 보고 들으며
깜깜한 어둠이 창 밖에서 스며들어와 온 집안이 짙고 커다란 덩어리가 된 것 같은 밤이었다. 갑자기 몸이 꿀렁꿀렁 움직였고, 낯선 움직임에 눈을 떴다. 남편은 예상했다는 듯, “지진인데 괜찮아.”라고 말했다. 어둠 덩어리로 다시 몸을 집어넣고 싶은데,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위아래로 움직였는지 좌우였는지 모르지만 몸이 출렁거렸던 느낌이 등 뒤에 달라붙었다.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 버릴 수도, 나를 어떻게 해버릴 수도 있다는 감각이었다. “어떻게” 안에는 많은 단어들이 들어갈 수 있었다. 두달 전 처음으로 지진을 느낀 날이었다.
“한반도는 일본과 달리 지진에 안전합니다.”라는 문장을 자랑거리로 여기듯 배우고 듣고 자랐다. 큰 대륙판에 제법 안전하게 올라 선 한국이었다. 지진이 나면 단단한 책상 아래로 가서 머리를 보호하며 숨어야 한다는 교육을 학교에서 받은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았다. 몰라도 되는 안전한 나라에서 살았다.
지금 내가 사는 튀르키예는 지진이 잦은 나라라고 한다. 남편은 아홉 번째 생일을 보내고 더이상 생일을 챙기지 않기로 했다. 그 날 7.2 진도지진이 일어났고 창 밖으로 건물이 출렁거리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나니 생일을 축하 받기 싫어졌다고 했다. 이미 3개월 전에 7.6 진도의 강진으로 사람들이 만 명 넘게 죽었다고 들은 뒤였다. 튀르키예에 와서, 지진이 나면 냉장고처럼 크고 단단한 가전 앞 안전한 삼각지대를 찾아 머리를 보호하는 자세로 웅크려야 한다고 배웠다. 이 도시에서 집을 고를 때는 1999년 이후에 지어진 지진 대비가 된 건물로 가야 한다는 상식도 얻었다.
자고 일어나니 연락이 쏟아졌다. 튀르키예에서 7.4 진도의 지진이 일어나 200명 정도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고 다들 놀라서 연락했다고 했다. 지진이 일어난 지역은 내가 사는 곳에서 1,500 km 정도 떨어진 터키 동남부 지역으로 시리아 접경 지역이었다. 첫 번째 지진이 발생하고 1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비슷한 규모로 지진이 두 차례 더 발생하면서 사상자가 천 명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괜찮으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답하면서도 다행일 수 없었다. 일본에 사는 친구 사키와 씽씽도 기사를 봤다며 무사한지 연락해 왔다. 기사를 보고 마음이 안좋았다며 괜찮냐고 물어왔다. 지진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나라에 산다는 게 어떤 마음인지, 얼마나 불안한지, 또 얼마나 어쩔 수 없는지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나와 내 가족은 지진으로 피해 입지 않았지만 죽어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무력감이 밀려왔다. 내 무사함 마저 자책하지 말자고 생각하며,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으려고 침대 아래 넣어둔 두꺼운 이불들을 꺼냈다. 국가에서 화물차를 마련해서 재해 지역으로 사람들이 물품을 보낼 수 있다고 들었다. 식료품을 사고 두꺼운 옷, 목도리, 담요를 챙겼다. 저마다 이런 저런 물품을 가지고 광장에 모였다. 박스를 포장해서 차에 싣는 봉사활동을 하고 갈까 했지만 이미 봉사자들로 센터가 붐비고 있었다.
남편의 취미 활동 모임에 최연소 회원인 중학생 케디가 입원해 있다가 지진으로 병원에서 나와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진 때문에 집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아 차에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모임에 있는 형과 삼촌들에게 영상 통화로 계란 프라이 만드는 법을 배우던 케디의 모습이 떠올랐다. 케디는 선천적인 질병으로 병원에 자주 입원했고,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디스코드에서 늘 형, 형, 형! 하며 사람들을 귀찮게 하던 케디가 조용해졌다. 케디는 고속도로가 심각하게 붕괴되어 사람들이 구호물자를 보내도 받을 수 없을 거라며 좌절했다.
1,500km 떨어진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마음이 헤맸다. 부서진 건물을 일으켜 세울 수도 없고, 주저앉은 마음을 다독일 수도 없다. 여전히 지진은 끝나지 않았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도시를 흔들고 있다고 한다. 얼마큼 같이 견딜 수 있는지, 같이 버티자고 말해도 되는 건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패딩이 필요 없을 정도로 춥지 않다고 자랑했는데, 갑자기 추워져서 패딩을 입고 난로를 틀어도 손이 차다. 12월부터 보고 싶다고 노래하던 눈이 하필 오늘부터 내린다.
오늘 밤은 짧고 단숨이었으면. 어둡고 추운 밤이 야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