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뭔 말이야
서우가 똥을 싸러 간다고 한다.
어제 똥을 싸러 갔다가 똥꼬가 따가워서 못 쌌다고 하더니
이제는 싸야만 할 때가 왔나 보다.
그렇게 화장실에 들어간 서우가 잉잉 우는 소리를 내더니
갑자기 "너무 아파서 똥을 못 싸겠어~" 소리를 질렀다.
급히 문을 열어보니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다리를 주무르고 있다.
- 아빠, 다리가 이상해.
- 다리가 이상하다고? 아픈 게 아니고?
- 몰라. 아픈 건 아닌데 이상해
하면서 변기에 앉아 엉엉 운다.
- 아니 서우야. 그러면 쥐가 난 것처럼 그런 거야? 따가워? 저려?
- 쥐 난 건 아니야. 따가운 것도 아니야. 저린 게 뭐야?
- 저린 거? 음.... 저린 건... 저릿저릿한 건데.
- 으아~~ 너무 이상해.
똥꼬가 아파서 똥을 못 싸겠다고 하더니
갑자기 다리가 이상하다고 주무르고 있는 아들을 보며
잠시 뇌정지가 왔다.
어쨌든 똥을 싸는 게 먼저란 생각이 들어 서우에게 아파도 참고 싸라고 했다.
- 너무 아파. 싫어. 엉엉
- 지금 안 싸면 내일 더 심각해진다. 똥이 못 나오면 더 딱딱해지고 세균도 가스도 더 많아져서 큰일 나. 그러면 병원 가야 해. 일이 커진다고 서우야.
진짜 심하면 의사 선생님이 손가락을 똥꼬에 넣어서 파내야 한다고.
열도 나고 온몸이 아플 수도 있어.
약간(?)의 과장을 섞어서 적나라하고 매몰차게 얘기했지만
전혀 먹히지가 않았다.
둘째를 재우고 있는 아내에게 상황을 보고하니
약을 발라주고 싸게 하라고 한다.
- 서우야, 이리 와봐. 약 발라줄게. 그러면 좀 덜 아프게 쌀 수 있을 거야.
- 싫어 엉엉 아플 거 같아 엉엉
뭘 얘기해도 아플 거 같아서 싫다는 대답에 답답함이 뻗쳐 올라 화장실 문을 꽝 치며 말했다.
- 그러면 계속 이렇게 아플 거야? 안 아프려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봐야지. 계속 그렇게 지금 아프다고 아무것도 안 하면 뭐가 바뀌어?
움찔하던 서우가 엉거주춤 일어나는데 다시 다리가 저린지 으엉~ 하고 운다.
아이고 진짜 이게 뭔 일이야.
겨우겨우 달래서 똥꼬에 약을 발라주고 다시 앉아보라 하는데
너무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다고 한다.
그 와중에 오줌이 마렵다 해서 쉬를 하라고 했는데
오줌이 나오지를 않는단다.
분명 마려워하긴 하는데 나오지를 않는다니...
일단 옷을 입히고 나왔다.
그러더니 거실에 가서 읽던 책을 마저 읽는다.
너 아프다며...?
그러다 갑자기 얼굴을 찡그리더니 으앙~ 하면서
- 다리가 이상해~~ 아빠 어떻게 좀 해줘~~
하다가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더 크게 끄앙 하면서
- 똥꼬가 너무 아파~~~
눈물을 뚝뚝 흘린다.
그런 서우가 안타까우면서도 웃기기도 해서
나도 모르게 끕끕 웃음이 삐져나왔다.
그런 나를 보며 서우가 울다 웃으며 "웃지 마!" 한다.
일단 진정시키며 서우 방으로 데리고 가서 침대에 눕혔다.
다리를 주물러주며 여긴 어때, 지금은 어때하며 달랬다.
조금씩 괜찮아지는 것 같더니 갑자기 다시 다리가 이상하다며 괴로워한다.
눈물을 흘리며 서우가 말했다.
- 아빠. 어떻게든 좀 해줘. 제발
순간 가슴이 미어지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리고 겁이 덜컥 났다.
평소에 비뚤어진 자세로 있다가 허리 신경이 눌려서 다리가 저린 건가?
요즘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건가?
혹시 원인 미상의 불치병 같은 거면 어쩌지?
우리 가족의 일상이 이렇게 바뀌는 건가?
불안을 먹고 자라난 상상이 끝없이 비약하는 도중에도 정신을 차리고
'다리에 이상한 감각 어린이'로 검색을 했다.
검색하다 보니 하지불안증후군이 떴다.
기사를 읽어보니 아래 내용이 눈에 확 들어온다.
어린이의 경우 성장통이나 주의력결핍장애와 혼동하기 쉬워
하지불안증후군은 소아에게도 나타나는데, 성장통이나 주의력결핍장애로 오인당하기 쉽다. 실제로 예전에 성장통이라고 간단히 넘겼던 아이들의 상당수가 소아 하지불안증후군으로 진단받은 사례도 있다.
오 마이 갓.
얼른 아내에게 카톡을 보내놓고 안방 문을 빼꼼 열었다.
- 서우가 다리가 이상하대. 아무래도 병원 가봐야 하는 게 아닐까?
- 병원? 글쎄. 일단 내가 한 번 볼게. 선우 좀 봐줘.
그렇게 아내와 교대하고 선우를 보고 있었다.
밖에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고성이 오갔다.
아내는 나보다 훨씬 더 냉철했다.
먼저 확인한 것은 다리가 이상한 게 언제부터였는지였다.
똥을 싸려고 변기에 앉고 나서부터였다.
아내의 진단과 솔루션은 간단했다.
치질이다. 일단 똥을 먼저 싸라.
하지만 나와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서우는 아파~ 싫어~ 뭐라도 좀 해줘~ 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러자 찰싹~ 소리가 나더니 아내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 너 아프다고 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거 얼마나 화나는 일인지 알아?
뭐라도 해보면서 그래도 힘들면 안쓰럽기나 하지. 지금 너 완전 진상이야.
그리고 엄마 애 낳을 때는 아기 머리가 나왔는데 그때 아파도 울지 않았어.
운다고 뭐가 달라져?
아파도 하는 거야. 니 똥이 아기 머리만큼 굵어? 아니잖아!
서우는 엄마가 만만치 않음을 겪고는 나를 찾았다.
- 아빠 불러줘~! 엉엉
- 안돼! 너 할 거 안 하면 절대 안 불러!
아내는 다행히 채찍만 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 엄마 뭐라도 먹을 걸 좀 줘.
- 이러랑 저거랑 이거 먹어. 순환 도와주는 거랑 마그네슘이야.
그리고 좌욕을 해봐. 그러면 좀 나을 거야.
엄마 선우 낳고 좌욕 계속했던 거 기억나지?
엄마도 엄청 아팠는데 좌욕이 도움이 많이 됐어.
물 받는 소리가 이어지고 잠시 조용하더니 서우가 다시 징징거린다.
- 엄마~ 다리가 너무 이상해.
- 너 일단 다시 나와. 앞으로 걸어 다닐 때 서서 다니지 말고 기어 다녀. 치질은 피가 밑으로 쏠려야 해.
호보법이라고 알아? 호랑이처럼 걷는다는 거야.
그러다 다시 시도해 보겠다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선우와 놀고 있는데 서우가 소리친다.
- 나 똥 쌌어!!
이렇게 반가운 똥 싼 소리는 처음이었다.
얼른 달려가보니 아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턱을 살짝 치켜들고 있었다.
- 생각보다 안 아팠어.
나온 똥을 보니 어마어마했다...
무슨 구렁이 한 마리가 나온 줄...
그러더니 오줌도 나왔다.
저 거대한 것이 몸 안에 있었으니 이것도 막고 저것도 막았던 모양이다.
- 다리는 어때?
- 다리 괜찮아~!
그렇게 묵은 변을 처리한 서우는
세상 시원한 얼굴로 조잘조잘 재잘재잘 밝은 아이로 돌아왔다.
- 좌욕을 한 게 도움이 됐던 거 같아!
- 그래. 엄마가 말했잖아.
서우가 선우를 안고 있는 내게 오더니 요약을 해주었다.
- 아빠. 내가 처음 1차 시도를 할 때는 응- 했는데 너무 아팠어.
2차 시도도 응- 했는데 아팠고,
3차 시도도 응- 해서 아팠는데
4차 시도할 때 화~ 이랬어.
변비, 치질을 겪은 적이 없던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고통이었지만
서우는 어쨌든 이겨냈다.
쾌변이 얼마나 중요하고 행복한 일인지
나도, 서우도 알게 됐다.
앞으로 물을 자주 마시고, 똥을 쌀 때 5분을 넘지 않기로 약속하며 서우는 방귀를 뿡뿡 뀌었다.
- 서우야, 똥꼬 괜찮아?
- 조금 아프긴 해. 그래도 괜찮아.
다행히 방귀 정도는 견딜 만한 치질인가 보다.
아들의 눈물 콧물에 잠시 움찔한 나의 눈물샘과
다리가 이상하다고 엉엉 울다 똥꼬가 아프다고 끄앙 우는 아들의 괴로움에
웃음을 참느라 아팠던 나의 복근이 기억에 남는다.
무엇보다 상황 진단, 대안 제시, 문제 해결까지 원스톱으로 처리하며
부모로서의 위엄을 지켜준 믿음직한 아내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우리 가족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