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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May 09. 2024

200일의 하루

200번의 하루

선우가 5월 8일부로 드디어 출산 후 200일이 되었다. 

그 사이 변화가 좀 있었다.

모유에서 분유로 넘어갔고

이유식을 시작했고

아이가 이제는 집안을 기어 다니고 있다.

그러면서 눈앞에 보이는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 잡고, 빨고 싶어 한다.


분명 똑바로 눕혀 재웠는데 나중에 가 보면 가로로 누워 있거나

벽 쪽에 머리를 박고 있거나 한다.

혼자 데구루루 이리 뒤집었다가 다시 발라당 돌아누우며 머리를 쿵 찧기도 한다.

어지간하면 울지 않고 잉 소리를 내고 만다.


자다 깨면 "앙~" 소리를 내는데

혹시 더 잘 까봐 내버려두면 "으아!!" 하고 날카롭게 소리를 낸다.

나 일어났어~ 하다가 반응이 없으니 나 일어났다고!!! 하는 느낌이다.

후다닥 달려가 문을 열면 인기척을 느끼고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눈이 마주치면 서로 씨익 웃는다.

반사적으로 선우 앞에 엎드려 온갖 재롱을 떤다.

선우는 흐뭇하게 자~ 어디 한 번 떨어보아라~ 하며 쳐다본다.

주인을 만난 강아지... 는 좀 심한가 ㅎㅎ

어쨌든 그렇게 된다.


똥이 슬슬 되직해지고 있다.

기저귀가 거진 흡수해 주던 예전과 달리

이제 엉덩이를 씻겨줄 때면 물에 젖은 부드러운 찰흙을 만지는 느낌이다...

색도 비슷하고 ㅋ

서우 때를 떠올려보면 아이가 크면 클수록 똥도 커지고 덩어리가 생겨 

나중에는 기저귀에 있는 똥덩어리를 변기에 떨어뜨리고 처리했었다.

그래도 커지고 나서는 서서 힘주고 싸느라 엉덩이 닦아줄 건 많이 없긴 했다.

똥기저귀를 갈며 하... 언제 변기에서 싸나 아득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서우는 곤지라는 애착 이불이 있었다. 

지금도 아주 아끼고 잘 때마다 데리고 잔다.

선우는 그런 존재가 무엇이 될까 궁금해하고 있는데

서우가 선물 받았던 춘식이 인형을 무척 좋아한다.

다른 걸 하며 놀다가 춘식이 인형을 보여주면 까르르 파닥파닥 한다.

춘식이 인형이 여럿이라 동생에게 하나 주면 어떠냐 했는데

절대 안 된다고 한다 ㅋ

인연이 될 무엇이 있겠지.


힙시트에 태우고 다니고 있었는데 마주 보기만 하다 이제 앞보기를 하고 다닌다.

미세먼지가 좋은 날 함께 단지 안을 산책하면

고개가 좌우로 휙휙 돌아간다.

나무와 풀, 꽃과 바위, 고양이와 강아지,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호랑나비와 흰나비, 

자전거와 택배 트럭, 뻐꾸기 소리, 이름 모를 새소리, 바람 소리와 소리,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맡고,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맛보는 순간순간

선우의 마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이럴 때면 산을 끼고 있어 공기가 상쾌하고 사계절이 푹 머물다 가는 우리 아파트가 참 좋다.

도시의 편리함을 마음껏 누리면서도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신비를 사랑하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난 200일의 하루하루 순간 떠오른 생각과 감정은 무수히 많았다.

그중에서 글로 남길만 하겠다 싶은 일들이 좀 있었고,

그중에서 실제로 글로 남긴 적은 아주 적었다. 

200일 간 아이를 돌본 증거라 할 게 있다면

8~9kg 아이를 안고 다니며 조금은 근육이 붙은 팔뚝과 시큰거리는 골반과 허리와 어깨와 기타 등등.

저녁에 아이를 재우고 보상 심리로 이것저것 하며 시간을 보내다 

결국 늦게 자고 아침 일찍 아이가 깨서 강제로 기상한 하루하루가 쌓인 피곤한 얼굴.

육아 휴직을 들어갈 때는 겨울이었는데 짧은 봄이 지나고 이제는 초록빛이 무성한 여름이 오고 있는 산.

휴직 기간 1년 중 벌써 절반이 지났다는 걸 떠올릴 때 돋는 소름.

무엇보다 기어 다니고, 어느 정도 앉을 수 있고, 따따다따 뭐라뭐라 말할 수 있게 된 선우가 가장 확실한 증거다.


솔직히 내 모습을 보면 200일이 지났는지, 2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선우를 보면 확실히 알겠는데 말이다.

선우에게 지난날들은 성장과 발달로 꽉꽉 찬 200번의 하루였고

내게는 어쩌다 보니 200일이 된 하루들인 셈이다.

아마 선우에게 앞으로 다가올 날들 중 많은 날들이 성장과 발달로 채워질 것이다.

서우도 그렇고.

그러면 나는?

내게 남은 하루는 몇 번이나 될까?

그 하루들은 무엇으로 채워지게 될까?


육아를 하는 것이 '아이에게 내 시간을 쓴다'라고 정해놓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곰곰이 들여다보니 이상한 생각이었다. 

아이에게는 아이의 시간이 흐른다.

내게는 나의 시간이 흐른다.

시간을 강이라 한다면 아이와 나는 각자의 강으로 흐르다 만난 것이다.

그렇게 어느 정도 함께 흐르다 언젠가는 헤어질 날이 올 것이다.

물론 함께 흐르는 동안 내 강에 살고 있던 물고기며, 수초며, 이끼며 여러 가지 것을 나눌 수 있다.

그러나 그 물고기며 수초며 하는 것들도 내 안에 그대로 있는 게 아니라 

그 역시 내가 만난 것들일 뿐이다.

더 큰 물고기가 사는 곳으로 갈 수도 있고, 작은 물고기도 살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아이'에게' 내 것을 주거나 쓰는 게 아니다.

우리는 서로 만난 것이고 함께 있는 동안 서로 주고받고 행복하게 살면 되는 것이다.

잘 주고 잘 받고 행복하려면 내 강이, 내 시간이 건강하고 조화로워야 한다.


사전에는 육아라는 말이 아이를 기른다는 뜻으로 되어 있다.

아이를 기르는 것의 최종 목적지가 독립할 수 있는 인격체를 만드는 것이라면

나부터 독립적인 인격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라는 강을 만나 아빠라는 강이 된 나를 받아들이고

그런 나를 위해 충실한 시간을 보내려 노력하는 것,

바깥에 있는 아이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아이를 살피고, 

그런 아이를 대하는 아빠로서의 현재 실력을 받아들이며

앞으로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것.

나의 육아를 이렇게 정의해도 되지 않을까?


100일 뒤 선우 300일의 나는 어떤 육아를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100번의 하루를 과연 어떻게 보내왔을지...

100일 뒤 이 글이 이불킥하는 계기가 되지 않도록 ㅋ

잘 지내보자!


선우 200일 축하! 서우 2,728일 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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