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111_응팔정팔

굿바이 첫사랑?

by 개미

지난 금요일에 집과 관련한 일이 있어 미처 글을 쓰지 못했다. 금요일에 이어 토요일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차차 풀어나가기로 한다. 그 와중에도 응팔은 챙겨봤다. 아내와 나는 가족과 이웃 사이에 일어나는 따뜻한 이야기도 좋지만 덕선이의 연애라인을 가장 흥미진진하게 본다. 그리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정환이를 덕선의 짝으로 밀고 있다. 아니, 밀고 자시고 그래야만 한다. 나는 어남류다.


페북에 장난처럼 쓰긴 했지만 정환이가 덕선의 남편이 되어야만 한다. 드라마 상 설정이나 대사에서 힌트를 얻어 사실을 맞추려는 것이 아니다. 정환이와 덕선이가 그 나이 때 가졌을 정서를 헤아려 볼 때 그렇다. 정환이는 까칠하고 틱틱거린다. 까칠하고 틱틱거리는 꺼풀을 벗기면 부드러운 속살이 드러난다. 좋으면서 괜히 그러는 타입이다. 그렇지만 괜히 그러는 것이 실은 괜히가 아니다.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은 솔직하고 꾸밈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에게 끌린다.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매력이 있다는 것은 흔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리고 흔하지 않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좋은 것을 좋다고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라며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나 형제, 선생과 친구로부터 나의 행동과 생각, 감정에 대해 수없이 많은 피드백을 받는다. 거기에서 예의를 배우고 우정을 배운다. 사랑을 배우고 정의를 배운다. 각자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감정, 생각, 행동을 예의, 우정, 사랑, 정의 등의 이름으로 모양을 다듬는다. 이 모양들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살기 위해 만들어놓은 일종의 교복, 제복, 지침서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속을 비슷한 겉으로 꾸미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사람은 어느 시점에 이르러 자신만의 견해, 이를테면 한 소년이 첫사랑을 하기 시작할 때 자기만의 감정을 갖게 된다. 난생처음으로 자기만의 감정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게 너무나 좋고 계속 빠져있고 싶지만, 어려서부터 세상이 만들어놓은 모양에 충실하게 살아온 사람일수록 죄의식을 느낀다. 그런 자기 자신을 미워한다. 고3이 이럴 때가 아닌데, 한 동네 살며 불알친구처럼 지내온 선머슴 같은 여자애를 좋아하는 걸 딴 사람이 알면 안 되는데, 좋아하는 티를 내면 안 되는데. 자꾸 삐져나오는 감정을 억누르려 아닌 척하다가 삐끗한다. 타이밍이 어긋나는 건 딴 게 아니다. 아닌 척하다가, 자기의 감정을 덮다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그렇게 프로그램이 되어 있는 것이다.


18회가 끝날 즈음에야 정환이는 비로소 자기의 감정을 인정한다. 콘서트 장 앞에서 한 발 늦었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미 판이 끝났다고 나름 인정한 뒤에도 자기의 감정을 존중해서 실천에 옮겼다. 때문에 진실했고,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심지어 도롱뇽은 정팔이에게 자기와 사귀자고 했다. 극 중 도롱뇽이 일종의 마음선생 같은 포지션임을 생각하면 장난이지만 장난이 아닌 대목이다. 나는 자꾸 문을 돌아보는 덕선이의 시선을 보는 게 괴로웠다. 이제야 비로소 정환이의 프로그램이 바뀌고 있는데 덕선이 너는 왜 자꾸 돌아보는 거야. 안타까움에 속이 쓰렸다. 기분이 참 별로였다.


사실 프로그램이 바뀐 뒤의 정환이는 알아서 다른 사람도 잘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한 번 자기의 감정을 받아들였기에, 이제부터의 인생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길이 이어질 것이다. 말하지 않는 선택뿐이었던 인생에 말하는 선택이 하나 늘어났다. 정환이의 연애 인생은 비로소 싹이 돋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판 역전 업어치기 같은 결과가 나왔으면 바라는 것은, 정환이가 나의 모습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솔직하지 못했던, 다른 사람의 기준에 나를 맞춰왔던, 용기 내지 못했던 무수한 순간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소심한 나, 사춘기의 나, 첫사랑의 아픔에 가슴 아파했던 나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정환이의 실연이 곧 나의 실연이고, 정환이의 사귐이 곧 나의 사귐이다.


반면 택이는 너무 잘한다. 일상은 어리숙해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프로다. 그래서 질투 난다. 어리숙한 일상 덕에 주위 보살핌도 받고, 착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솔직하고, 돈도 잘 벌고, 잘 생기고, 연예인이 사귀자고 하고. 택이의 순수한 마음도 소중하고 귀한 마음이다. 그렇지만, 그래서 정환이에게 한 표를 던지고 싶다. 답답하고 찌질한 정환이가 순수하고 담백한 택이보다 좋다. 아닌 척하면서, 웃으면서 속으로 울고 있을 정환이의 마음이 타는 듯 쓰리다. 택이에게 미안하지만 정환이가 더 안타깝고 불쌍하다. 그리고 현실에선 택이 같은 타입이 어차피 잘 사귈 테니 드라마에서는 정환이가 좀 잘 돼보자. 으악 이제 며칠 안 남았다. 제발... 젭알 작가님 우리 정팔이 좀 잘 해주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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