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갈에 있을 때 끔찍한 소식을 접했습니다.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그 이야기. 조금 뒤 탑승자 전원이 구조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잠시 안도하기도 했죠. 그런데, 페이스북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소식은 언론 뉴스와 다른 양상이었습니다.
배 밖에 있던 사람들은 다행히 구조되었지만, 아직 많은 사람 특히, 우리 어린 학생들이 갇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곤 모두가 알다시피 어떤 구조도 이루어지지 못한 채 눈뜬장님처럼 배가 침몰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봤죠.
분통이 터졌습니다. 선장은 자기 살겠다고 혼자 도주하였고, 정부의 늦장 대응과 제대로 된 훈련 매뉴얼이 없던 해경의 오합지졸은 사고 초기 대응을 못 해 안타까운 304명의 희생자를 낳았습니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저는 그날 슬픈 마음에 혼자 검은 양말을 신은 채 세네갈 사무소가 주관한 현지평가회의에 참가했습니다. 그 뒤로 9년이 흘렀고, 어제는 세월호 참사 9주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많이 바뀌었을까요?
문 정부의 5년간 노력에도 유가족들이 납득할 만한 진상 규명은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했고, 책임자 처벌은 사고 당시 현장 지휘관 1명만 유죄, 나머진 2심에서 모두 무죄로 판결 났죠. 그나마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명예 회복을 긍정적인 평가로 뽑을 수 있지만, 여전히 아쉬운 마음은 금치 못하겠습니다.
8주기를 끝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더 이상의 진실 규명과 책임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작년 이태원 참사를 겪으면서 ‘안전’ 이슈도 말짱 도루묵이 되었고 각자도생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게 우리의 현실인 것 같아 참담하네요.
저는 그동안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달거나, SNS에 ‘기억하겠습니다’와 같은 구호를 올리는 일 등을 일제히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정치인들이 실제 관여하지도 않으면서 선거철에만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위선자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용히 그들을 위로하며 응원하는 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여기며.
그러나 저는 지금 아예 방향을 잃었습니다. '기억한다'는 의미가 물론 희생자분들을 기리는 것도 있지만, 앞으로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할지, 진실은 밝혀지지 못했고, 책임자 처벌은 미진하며, 안전 국가 건설은 완전히 실종된 상태입니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은 마치 전래동화에만 나오는 허울뿐인 이야기인 것 같아 속상합니다.
그런데, 당사자도 아닌 저도 이러할 진데, 유가족분들은 얼마나 더 허망하고 힘들까 싶기도 하네요. 벌써 세월호 참사 9주기입니다. 모두가 이젠 그만하자고 떠나는 시기에 오히려 부끄럽지만 9년이 지나서야 공개적으로 304명의 희생자분을 추모하게 되었습니다. 늦게 찾아와 죄송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