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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강D Oct 15. 2024

우실장과 웃기는 외야석

2막. 제주의 그라운드, 1루. ep6.

차례.     


프롤로그.

서울의 외야석

   원아웃

   투아웃

제주의 그라운드

   - 1

   - 2

   - 3

다시웃기는 외야석

에필로그.


우 실장은 다시 그라운드 쪽을 쳐다봤다.

미선은 밝은 얼굴로 여기저기 인사를 하고 다녔다. 젊은 시절 미선의 모습이 떠올랐다. 맞다. 저 여자의 단점이 저거였다. 여기저기 놈팡이들에게 샐샐 거리면서 말을 붙인다. 웃음도 헤프다. 잊고 있던 모습이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홀몸 아닌가.

그때 누군가 등을 툭하고 쳤다.

“어라, 야구하러 오셨어요?”

깜짝 놀라서 돌아봤다. 삼십 대를 갓 넘긴 듯한 남자가 생글거리면서 서 있었다. 머리는 곱슬이었는데, 여기에 갈색으로 염색을 했다. 염색을 한 지 오래됐는지 색이 바래있었다. 그마저도 손보지 않아 부스스했다. 한마디로 촌티가 흐르는 외모였다.

“아니, 난 그냥…”

우 실장은 대충 얼버무리며 몸을 틀었다. 그대로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녀석은 우 실장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손을 잡아끌었다.

“에이, 여기까지 오셔서 뭐 하세요. 얼른 가요.”

얼떨결에 끌려왔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여기 신입 오셨어요!”

이, 이놈이.

“승필이가 신입 모셔왔나 보네.”

“아니에요. 저기 오토바이 뒤에 숨어서 훔쳐보고 계시던데요.”

입이 싼 놈의 이름은 양승필이라고 했다. 우 실장은 얼굴이 빨개져서 미선의 눈치를 봤다. 괜히 오해를 할까 싶어 신경 쓰였다. 미선은 우 실장을 보고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 밝게 웃었다.

“손님, 야구 좋아하시는 줄은 몰랐네요.”

“아니, 그게 아니라…”

양승필이 손을 잡아끌었다.

“뭐야, 누나랑은 아는 사이?”

누라, 라니… 우 실장은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다. 첫사랑에 성공했으면 너만한 아들이 있을 텐데. 모럴해저드의 현장이었다.

“아니, 우리 집 손님이신데… 야구 좋아하는 줄은 몰랐네. 호호.”

미선이 양승필 쪽을 보더니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런가, 어린놈과의 로맨스인가. 양승필을 째려봤다.

“그럼 형이라고 부르면 되겠네. 그래도 되죠, 형? 좀 편해지면 말 놓을게요.”

양승필이 버릇없이 껄껄거리며 우 실장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몸을 비틀어 팔을 뺐다. 하지만 양승필은 상관없다는 듯 다시 어깨동무를 했다.

“그럼 제가 팀원들 인사시켜 드릴게요. 우선 여기 이 친구는 양승필이고요 -”

“거꾸로 하면 필승! 필승으로 기억해 주세요.”

양승필이 미선의 말을 끊으며 경례하는 흉내를 했다. 쓸데없는 오버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우 실장이 가장 싫어하는 타입이었다.

미선이 다른 멤버들을 계속 소개해줬다. 다들 오버의 연속이었다. 전국 노래자랑 시골장터 편을 보는 기분이었다. 김신영 씨만 없을 뿐이었다. 이런 경박스러움은 질색이다. 미선이 이런 한심한 무리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저쪽에 앉아 계신 분이 우리 감독님. 감독님! 여기 신입이래요.”

미선이 벤치에 앉아있는 노인네를 가리켰다. 쭈그렁덩이 영감이었다. 덩치만 곰같이 컸다. 영감은 한 손으로 위태롭게 야구 방망이를 받치고 있었는데 균형을 잃으면 쓰러질 것 같았다. 저런 노인네가 감독이라니… 안 어울리는 방망이를 쥐고 있으니 어디서 봤던 방망이 깎는 노인 같아 보였다.

영감은 우 실장의 기분과는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호호호 웃었다. 입엔 침이 말라붙어 있었다. 우 실장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럼 우선 캐치볼부터 해볼까요? 필, 부탁해.”

미선이 양승필에게 눈을 찡긋했다. 

“헤헤, 걱정 마, 누나. 내가 원래 신입 담당이잖아.”

양승필이 다시 우 실장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그래, 이놈이구나. 우 실장은 확신했다.     

대체 얼마 만에 껴보는 글러브인지 모르겠다. 야구단을 나온 후론 글러브와 멀리했다. 덕분에 한철의 캐치볼 상대는 미선이었다.

W 글자가 새겨진 글러브를 내려 봤다. 글러브를 끼고 있는 손의 감촉이 어색했다. 손을 쥐락펴락했다. 손가락 마디를 따라 글러브 가죽이 움직였다.

그때 양승필이 공을 던졌다. 깜짝 놀라 글러브를 끼고 있던 왼손을 내밀었다. 촥 하는 소리와 함께 공이 손에 감겼다.

“나이스 캐치, 형 잘하네. 원래 운동 좀 했어?”

어느새 말을 놓아버린 양승필이 방긋 웃으며 말을 걸었다. 흠, 나쁘지 않은 감촉이군. 글러브에 잡힌 공을 보며 생각했다.

일단은 잠복근무다. 야구를 하는 척 신분을 숨기고 미선을 관찰한다. 그리고 물러설 수 없는 증거를 잡아 들이민다. 은밀한 계획을 세웠다.

미선은 여기 야구단에서 매니저 역할을 한다고 했다. 우선은 가까이에서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따위 동네 야구. 우선 여길 씹어 먹겠다고 생각했다. 봐주지 말아야지. 어떤 분야에서든 최고가 되겠다는 게 우 실장의 철학이었다.

뭐, 일단은. 우 실장은 공을 양승필에게 던졌다. 안 쓰던 근육을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시 손을 뻗어 공을 촥 하고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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