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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 굽는 타자기 Dec 07. 2021

남들에게 더 좋은 사람, 아이에게 더 나쁜 엄마

초2 아이가 학교에 있을 시간에 아이 친구 B로부터 카톡이 왔다. 크리스마스 때 우리 집에서 아이 친구 C도 함께 파자마를 할 수 있겠냐고 내게 물어보는 거였다. 순간 왜 이런 카톡을 우리 아이가 아니라 아이 친구 B가 물어보는 거지? 그리고 아이 친구 C가 자는 걸 왜 나한테 허락해달라고 부탁하는 거지? 아이 절친이 자기 엄마한테 하듯이 조르는 거라고 그냥 넘어가기엔 스멀스멀 불편한 마음이 올라왔다.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몇 달 전 담임 선생님의 2학기 상담 통화했던 기억이 소환되었다.


"어머니, 꾸마가 B가 없었으면 학교 생활을 잘 적응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에요. 꾸마가 시키는 것 같아 보이지 않지만 꾸마가 저한테 직접 할 얘기도 B가 와서 대신 얘기해요. 제가 보기엔 꾸마가 B한테 많이 의지해요. "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소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꾸마가 사실 B 덕분에 활달해지고 적극적으로 변하게 된 부분도 분명 있지만 그걸 다르게 보면 너무 의지하고 홀로서기를 못하는 거였나 싶었다. 선생님 말씀을 부인하고 싶었지만 아이가 B에게 치이거나 B보다 작아져 보였던 일련의 사건들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차례차례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이가 하교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속사포처럼 아이를 몰아세웠다. B가 엄마한테 이런 카톡을 보낸다고 너한테 얘기를 대체 얘기를 한 거냐, 너는 그냥 보고만 있었던 거냐... 아이는 그 순간 나의 짜증과 분노의 총알받이가 됐다. 무방비 상태로. 아이의 말로는 B와 C가 크리스마스 얘기를 하다가 꾸마 엄마한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나한테 카톡을 보낸 거란다. 그것 역시 화가 났다. 왜 우리 딸과 상의도 하지 않은 채, 자기 마음대로 친구 엄마한테 카톡을 보낸 건지 아이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나는 자존심이 구겨졌다. 안 되겠다 싶어서 나도 B에게 카톡을 보냈다.


"앞으로는 이런 얘기를 꾸마를 통해서 들었으면 좋겠어."

"네??"

"꾸마가 엄마한테 물어봐주면 좋겠다고."

"넹!!"


소심한 복수를 했다고 좋아하기엔 뒤끝이 씁쓸했다. 9살 딸 친구와 무슨 기싸움을 할 거라고 이러고 있나... 현타가 왔다. 그러고 있으니 이제 B 친구의 엄마로부터 카톡이 왔다. B가 꾸마가 한 염색 머리를 따라 하고 싶어 하는데 머리를 어떻게 한 건지 궁금하다는 거였다. 일이 있어 나갔는데 B로부터 자기도 꾸마처럼 염색을 하겠다고 10통 넘게 카톡이 와있어서 염색을 해줘야겠다고.


괜스레 B한테 소심한 복수를 한 것이 미안했던 터라 꾸마 때문에 또 염색을 하겠다고 B가 엄마를 내내 조르는 모습이 그려졌다. 또 마음이 불편해졌다. 또 죄 없는 꾸마를 붙들고 짜증을 냈다.  


"지금 B 엄마한테 카톡이 왔는데 B가 너 따라 염색할 거라고 엄마 조르고 있나 보네. 내 이럴 줄 알았어. 네가 염색하면 B도 하고 싶어 할 거라고 했잖아."


1년에 한 번 이벤트성으로 거금을 투자해 열펌을 해주다가 올해는 염색을 해준 거라 아이도,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그걸 누군가는 따라 하고 싶고 그걸 못하면 속상해할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그 심란한 걸 또 아이한테 또 풀었구나 싶은 내게, 아이는 여지없이 일격을 가했다.


"엄마, B가 염색을 따라 하든 말든 그건 B와 B엄마 사정이잖아. 엄마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와. 딸이 너무 맞는 말을 해서 반박 불가. 딸이 해준 말 덕분에 불편한 마음이 한순간 정리가 됐다. 그래, B는 나한테 물어봐야지 친구 셋의 파자마가 성사될 것 같아서 B의 캐릭터답게 직접 물어봤던 거였고, B가 우리 아이를 따라서 염색을 할지, 안 할지는 내 소관이 분명 아니었다. 내가 과거의 몹쓸 감정끌어와서 '네가 전에도 그랬으니까 이번에도 그러는 거지.' 혼자 단정 짓고 속상해했던 거였다. 아이 친구든, 아이 친구의 엄마의 말이든, 그전에 있었던 일들을 소환해 엮지 말고, 그때 물어보는 답변에 내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해주면 되겠다 싶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가족 아닌 다른 사람이 내가 한 말에 혹시라도 상처 받지 않았을까... 전전긍긍만 했지, 정작 내 아이는 엄마의 짜증과 분노를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는 걸 외면했다. 내가 남들에게 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아이에게 더 나쁜 엄마였음을 인정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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