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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 굽는 타자기 Dec 13. 2022

아이 혼자 등교하는 모습을 지켜보기 힘든 이유

얼마 전, 초3 꾸마가 4살 때부터 단짝B와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는 걸 엿듣게 되었다.


"지난주에 꾸마 네가 학교 이틀 안 왔을 때 J랑 등교했는데 사실 J가 전부터 나랑 학교 가고 싶다고 졸라서 꾸마 너랑은 화, 목에만 같이 등교해야겠어. 괜찮지?"

"어... 어..."


분명히 속상했음에도 별말 없이 전화를 끊은 꾸마에게 내가 닦달하듯 물어봤다.


"3년 내내 등하교 같이 했던 B가 화, 목에만 같이 등교하자는데 속상하지 않아? 싫다고 말하지 그랬어?"

"어떻게 싫다고 말해... 그냥 그렇게 하자고 했어."

"J는 너도 친하잖아. J랑 셋이 같이 등교하는 건 어때?"

"J랑 B는 지금 같이 반이고 나는 아니잖아. 원래 같은 반끼리 친하게 어울려 다니는 거야."


답답했다. 아이가 느꼈을 서운함도 컸겠지만 나도 만만치 않았기에 내가 먼저 지난 일까지 끄집어냈다.


"전에 같은 동 다른 친구가 셋이서 같이 등교하고 싶다고 했을 때, B는 딱 잘라서 그러면 자기는 혼자 가겠다고 말했었잖아. 너도 지금이라도 B한테 전화해서 싫다고 말해. 왜 싫으면 싫다고 말을 못 해?"


내가 점점 더 발끈할수록 오히려 아이는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속상하긴 한데, 아예 같이 가기 싫다고는 말 못 하겠어. 화, 목에는 B랑 학교 가고, 상황 봐서 다른 날은  친구랑 가지 뭐..."


혼자 등교하는 아이를 보니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이가 등교하자마자 남편을 붙잡고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어떻게 매일 같이 등교했던 단짝 친구가 꾸마를 배신할 수 있는 거야? 꾸마가 속상할 텐데 싫다고 말도 못 하고... 그 모습 보니까 내가 짠하고 안 좋아."


남편도 속상해하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이들 문제에 어른들이 나설 수도 없고.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꾸마에게 물었다.


"화, 목에만 B랑 가고 다른 날은 혼자 학교 가는데 괜찮아?"

"좀 쓸쓸하긴 한데 괜찮아. 4학년 되기 전에 B는 이사 가잖아. 그때는 다른 친구랑 등교하면 돼. 지금은 화, 목에는 B랑 등교하는데 월, 수, 금에만 같이 등교하자고 못해서 그런 거야." 


아무렇지도 않게 씩씩하게 말하는 아이를 보면서 엄마인 나는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부끄러워졌다. 꾸마는 B와도 사이가 틀어지지 않으면서 어느 정도의 쓸쓸함을 감당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런데 나는 B 때문에 우리 아이가 조금이라도 상처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친구 관계를 깨면서까지 상처받은 마음을 보란 듯이 보여주길 바랐던 내가 참 한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 역시 고교 시절 단짝 친구였던 내 친구가 다른 반이 되고, 조금씩 멀어지게 되면서 많이 속상했었다. 당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외감이 컸다. 하지만 지금의 꾸마처럼 그때 나도 어쩔 수 없다는 걸 깨달았던 것 같다. 내 마음속의 1순위 단짝 친구에게도 나보다 더 가까운 친구가 생길 수 있다는 걸, 아프지만 인정했다. 내가 고등학생 때 겨우 힘들게 깨달았던 걸, 그때의 나보다 한참 어린 내 딸이 깨닫고 있는 것 같아서 대견하면서도 어린 시절 나처럼 크게 소외감을 느끼면 어쩌나 싶어 걱정이 앞선다.


이런 엄마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따님은 요즘 주말마다 이번 주는 누구랑 파자마 할 거야, 다음 주는 누구랑 놀러 갈 거라고 들떠있다. B가 알면 서운해할 정도로 꾸마는 다른 친구들과도 정말 잘 지낸다. 월, 수, 금 혼자 등교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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