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오늘은 어디가 아파?"
꾸마가 그렇게 물어보니 뜨끔했다. 아이의 눈에 내가 계속 아픈 사람이었던가... 괜한 자책감도 밀려왔다.
"엄마는 맨날 아픈 사람 같아 보여?"
"응. 엄마는 항상 아픈 데가 많잖아."
"그럼 꾸마는 엄마가 아픈 게 싫은 거야? 아픈 엄마가 싫은 거야?"
난데없는 내 질문에, 아이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답했다.
"당연히 엄마가 아픈 게 싫은 거지."
당연한 걸 물어보고 당연한 답변을 들었는데, 가슴을 쓸어내렸다. 최근에 코로나 확진, 몸살, 어깨 석회와 염증으로 아픈 곳이 많아서 누워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기 싫었던 건 아니었을까? 아픈 엄마가 혹여 싫으면 어쩌나... 아이에게 확인하고 싶었다. 엄마를 걱정하는 순수한 아이의 마음을 행여 나를 귀찮아하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내 기억에 친정 엄마도 늘 아픈 사람이었다. 엄마는 허리, 다리 통증을 호소했던 것 같다. 엄마가 매일같이 아프다고 하니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나이가 들면 엄마처럼 아픈 데가 많은 거라고 생각했다.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 당시 어린 마음에, 점점 아픈 엄마를 걱정하는 마음보다는 아픈 엄마가 싫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내가 보기 싫었던 친정 엄마의 모습 그대로, 나도 어떤 날은 몸이 아파서, 또 어떤 날은 마음이 아파서 무기력하게 누워있었다. 내가 아프니까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이 대신 아이를 살뜰히 챙겼다. 다행히 엄마의 빈자리를 남편이 잘 채워줬다. 하지만 고마운 마음보다 서운한 마음이 커지는 날도 있었다.
몸도, 마음도 아팠던 그날, 내가 아픈 몸을 이끌고 저녁을 준비하려고 나와있었는데 남편도 함께 도우려고 나왔다. 순간 아내가 아픈데 먼저 저녁도 알아서 챙기지 않는 남편이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변명하자면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파서였을까... 그날 자꾸 삐뚤어진 생각을 한 것 같다. 원망스러운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침실로 들어갔다. 설마 자기 자식을 굶기지는 않겠지, 알아서 저녁을 먹겠지 싶었다.
영문을 알지 못했던 남편은 여러 번 침실로 들어와서 저녁을 먹으라고 했지만 나는 매섭게 나가라고 했다. 남편도 지쳤는지 포기하고 나갔지만 아이가 구원투수처럼 등장했다.
"엄마, 갑자기 왜 그러는지 나한테 말해줘."
꾸마는 엄마의 마음을 알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지만 정작 나는 내 마음을 제대로 몰랐다. 돌이켜보니 저녁 준비를 하려고 나온 남편 뒷모습에 아내가 이제껏 아파서 아이를 챙기느라 피곤하고 짜증 났던 마음이 보였다. 하지만 냉정하게 봤을 땐 그건 내가 지레 짐작했던 거였지, 실제로 남편이 나한테 피곤하고 짜증 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그렇게 챙기면서 아내는 아프다고 해도 어디가 아프냐, 많이 아프냐 묻지도 않는 남편에게 몹시 서운했다. 그깟 자존심 때문에 시시콜콜 얘기하지 못하고 다시 무기력한 내 모습으로 돌아가기라도 하듯이 침대에 누웠던 거였다.
내 얘기를 듣고자 하는 딸의 정성 덕분이었을까... 자리에서 일어나서 식탁으로 향했다. 남편이 애써 차린 밥상을 보니까 마음이 누그러졌다. 이런 걸 꼭 말해야 아나 싶었지만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아플 때 자기도 힘들면 배달시켜도 돼. 저녁은 안 해줘도 되니까 제발 아플 때, 어디 아프냐, 많이 아프냐 걱정하면서 물어봐줘. 나는 자기가 안 물어봐줘서 서운했어."
울먹이며 솔직하게 말하고 나니 별 거 아니었다. 남편은 마지못해 영혼 없이 앞으로 그러겠노라고 했다. 하지만 내 말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한 마디 더 쏘아붙일까 싶었다. 그 순간에 아이가 절묘하게 나섰다.
"나는 엄마가 얼마나 서운했는지... 그 마음 충분히 알겠어. 나도 어디 다쳐서 아픈데 엄마, 아빠가 걱정 안 해주면 엄청 서운했거든."
보통 엄마가 우는 아이를 달래려고 우쭈쭈 하기 마련인데 우리 집은 반대다. 오히려 아이가 엄마한테 이렇게 우쭈쭈를 한다. 자주 아프고 못난 엄마이지만 아이는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나를 걱정하고 공감해 준다. 오늘도 아이가 해준 우쭈쭈를 생각하며 자꾸 몸이든 마음이든 아파서 무기력해지고 눕고 싶은 마음을 이겨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