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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 굽는 타자기 Dec 27. 2022

나도 아이처럼 좋아하는 걸 찾아가는 중이다

요즘 패딩, 트레이닝복, 부츠, 마스크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라색으로 치장하는 10살 딸에게 물었다.


"꾸마야, 너는 왜 그렇게 보라색을 좋아해?"

"보라색은 나를 빛나게 하잖아. 그래서 보라색이 좋아."

"와~ 벌써 좋아하는 게 뭐고, 그 이유를 깨닫았다니 꾸마는 정말 지혜롭네."

"내가 하나님한테 솔로몬과 같은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서 그런 거야."


나를 빛나게 하는 색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좋아하는 색이 무엇인지를 몇 년 전, 미니멀 라이프 실천을 위해 1톤가량의 짐을 비우면서 알았다. 미니멀 라이프가 무조건 비우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비우고 좋아하는 걸 남기는 거기에. 옷부터 주방용품, 생활용품, 가구에 이르기까지 많이 비우는 과정 속에서 내가 카키색을 정말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전에는 몰랐는데 카키색을 보면 설렌다는 사실까지도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를 나이 마흔이 돼서야 조금씩 깨닫는 중인데 10살 딸은 색깔뿐만이 아니라 평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엄마, 나는 노래 부를 때가 행복해! 하루 종일 노래 부를 수 있어."

"자기 전에 오디오북 들으면서 자는 게 좋아."

"일주일 기다려서 <런닝맨>을 보는 시간이 행복해!"

"내가 나한테 주는 선물을 받을 때가 좋아."

(딸이 자신에게 주려고 정성스레 포장한 선물들)


딸이 좋아하는 걸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찾아가는 중이다. 최근에 찾은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단골 카페에 가서 커피와 함께 앙버터를 먹는다, 부부싸움을 하면 목욕탕에 간다, 생각이 복잡할 때는 피아노를 친다, 정신 건강을 위해 요가와 명상을 한다 등이다.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나열해보면서 느낀 건데 온전히 좋아하고 즐기는 게 아닐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아이는 순수하게 좋아하는 걸 아는 반면에 나는 뭔가를 성취할 목적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에. 아무렴 어떤가... 이제부터 내 인생에 조금씩 좋아하는 걸로 채워가고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조금씩 행복해질 수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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