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빵 굽는 타자기 May 18. 2024

냥이 덕분에 새롭게 배우는 육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고양이를 키운 지도 벌써 1년. 그 사이 냥이도 폭풍 성장했고 나 역시도 육아를 새롭게 알아가는 중이다. 여전히 냥이 눈곱 하나에도 혹시 아픈가 해서 가슴이 철렁하는 초보 집사다. 하지만 이젠 냥이가 꼬리로 바닥을 탕탕 치면 언짢으니 곧 물 수도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낄 정도다.


러시안 블루가 아무리 개냥이라고 하지만 부르면 오지 않는다. 가뭄에 콩 나듯 집에 오면 중문에 매달려 반긴다. 모처럼 홈트로 요가를 하고 있으면 이때다 싶어 달려들고 집사를 물기 일쑤다. 자다가 왜 이렇게 불편한가 싶으면 두 다리 사이에 평화롭게 자고 있다. 종합해 보자면 냥이는 자기 꿀리는 대로 산다. 자기가 비비고 싶으면 비비고 집사들이 좋아서 만져도 자기가 싫으면 물어버린다. 못내 서운하다가도 냥이는 원래 그렇다고 그냥 받아들인다.


냥이를 키우면서 아이도, 남편도 내가 무수히 컨트롤하려고 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냥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처럼 내 가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어땠을까.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많이 좌절했었다. 내 좌절이 커질수록 아이와 남편에게 수없이 생채기를 냈다. 어린아이라고 할지라도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본다면 엄마인 내가 먼저 아이를 존중해 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초봄 어느 날, 날이 풀렸으니 숏 패딩을 입으라고 했지만 끝까지 말을 들지 않고 롱패딩을 입는 아이에게 훈계를 하고 화까지 냈다.


냥이가 우리 집에 온 지 몇 개월 되지 않았을 때 강아지처럼 옷을 입혀보고 싶은 마음에 쇼핑몰에서 냉큼 냥이 옷을 사 왔다. 도망가는 냥이를 붙들고 겨우 옷을 입혔는데 아뿔싸. 냥이가 꽃게처럼 옆으로 걷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루밍을 하며 털 관리를 하는 냥이들에게 털이 센서와 같은 역할을 하는데 옷을 입히면 균형 감각을 잃어 옆으로 걷거나 뒷걸음치게 된단다. 만원 넘게 주고 산 옷을 겨우 한 번 입혀보고 포기. 내 눈에는 예뻐 보이는 옷이 냥이에게 불편하기만 하다니 그것 역시 받아들여야 했다.


사춘기가 임박한 아이 역시 내가 골라준 옷을 입지 않게 된 것도 오래되었다. 난 어울릴 것 같아서 내 마음대로 사다준 옷은 아이에게 처참히 외면당했다. 돈이 아까우니 자연히 아이 옷을 사지 않게 되었다. 근데 아이가 먼저 입을 거라고 해서 산 치마들을 입지 않자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아이도 잘못 선택할 때도 있고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것인데 나도 그럴 때가 있으면서도 아이를 호되게 혼낸 적도 많았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이랬다 저랬다 마음이 변하는 아이의 심경을 이해하지 못했다. 냥이도 내 욕심으로 옷을 입히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큰 오산이었다. 내 생각대로 아이도, 냥이도 따라주지 않았고 난 헛물을 캔 꼴이었다.


냥이 알레르기가 있는데 자꾸 만지는 딸을 혼내기도 수백 번. 아이가 무슨 냥이가 관상용이냐며 많이 툴툴거렸다. 아이를 걱정한답시고 하는 잔소리는 무의미했다.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 몰래 만지는 것이 더 좋았을 테니까. 이제는 만지지 말라는 소리보다는 만지고 나면 손을 씻으라고 독려한다. 사실 나도 요동치는 마음을 안정시킬 때 냥이를 쓰다듬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깨달았기에. 아이의 소확행을 내가 무슨 자격으로 빼앗을 수 있겠는가.


아이가 잘 땐 분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줄곧 아이가 잠들면 냥이를 데리고 나오고 아이 방문을 닫았다. 한데 하루 정도는 문을 닫지 말아 달라는 아이의 간곡한 부탁이 떠올라 아이방 문을 열어놓았다. 다음날 아이가 눈을 떴을 때 냥이가 옆에서 자고 있었다며 얼마나 좋아하던지. 알레르기가 무서워 아이의 행복을 빼앗을 순 없겠다 싶었다. 다행히 1년 사이에 알레르기가 점차 좋아지기도 했고.


여전히 냥이조차도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할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냥이는 내게 말한다. 난 원래 그렇다고. 그래, 냥이도, 아이도, 남편도 원래 그런데 내가 바꾸려고 하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리를 하고 나니 성공하려는 힘이 생겼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