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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노아 Dec 25. 2023

새벽 캐롤송을 부르던 날

화이트 크리스마스

아침에 눈을 뜨니 창 밖이 하얀 느낌이 들었다. 핸드폰으로 인스타그램의 스토리를 무심코 봤는데 “화이트 크리스마스” 라는 글귀가 보였다. 헉! 나는 당장 베란다로 뛰쳐 나갔다. 설국이었다. 온 마을이 하얗게 눈으로 덮여 어제 본 곳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직 조금씩 눈이 내리고 있었고, ‘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니! ’ 행복한 마음이 점점 번져왔다. 눈이 당장 녹기라도 할 듯이 서둘러 핸드폰을 가져와 사진을 찍었다. 오전 무렵까지 눈은 더 내렸다. 풍경은 더 하얘졌고 어떻게 크리스마스에 딱 맞게 눈이 내릴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동네 언니 오빠들, 동생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새벽이면 이웃집들을 다니며 캐롤송을 불렀었다. “ 저 들 밖에, 한 밤 중에~ ” 그러면 잠에서 깬 이웃 분들은 밖으로 나와 같이 캐롤을 불러 주시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손에 쥐어주시기도 했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눈 내린 창 밖을 보다 보니, 잊고 있던 오래된 기억이 생각났다. 그때 참 순수하고 소중했구나



오늘은 약속도 없고, 멀리 가족들과는 안부를 나눴으니, 집에 편안히 쉬려고 했다. 집 밖에는 나가지 않겠다고. 하지만 나는 흰 눈을 보고 마음이 설레져 버렸고, 눈 오리틀을 쥐고 집 밖을 나섰다. 첫 눈오리를 만들기 위해서. 눈을 가득 모아 잡고 틀을 쥐락펴락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남들은 분명히 뚝딱뚝딱 오리들을 탄생시켰던 것 같은데 왜 잘 안 되지? 유투브에 눈오리 경력자의 영상을 보며 아! 이거다 하고 다시 만들었다. 역시 잘하는 사람들 말은 들어야 해. 유투버가 알려주는 대로 했더니 나도 이내 귀여운 오리를 만들었다. 콕, 콕 눈밭에 올려두고 뿌듯해했다.



다시 들어온 집에선 캐롤을 들으면서 장칼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배도 부르고 포근포근해진 마음에 다시 나가야겠다 싶었다. 롱패딩과 장갑까지 끼고 도로 건너편의 베이커리로 향했다. 이런 날에 빵이 빠지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니 초코 케잌이 눈 앞에 어른거려서. 뽀득뽀득 눈이 밟히는 느낌에 발걸음이 가볍다. 자꾸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 거리가 있어 꽤 걷다가 도롯가 가로수에서 멈춰 섰다. 주위에는 사람들이 없었고 나는 충동적으로 눈을 뭉쳐 조그만 눈 사람을 만들었다. 햇빛을 받으면 빨리 녹을까 싶어 나무 뒤쪽 귀퉁이에 조심스레 내려두고 나뭇가지를 주워 와 팔을 만들어 주었다.


 베이커리에서 따끈한 빵과 카페라떼를 샀다. 돌아오는 길에 여전히 거기 작은 눈사람이 있는 걸 확인하고 좀 더 오래 거기이 있길 바라며 돌아왔다.




어릴 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고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 날에는 썰매를 타고 놀았다. 가장 좋은 썰매를 아시나요, 그건 바로 비닐 포대다. 시골에는 그런 포대들이 참 많은데 경사가 있는 언덕에 올라가 그 비닐포대를 타고 내려오면 그렇게 빠르고 신날 수 없다. 쾌감 수치 최고! 정주행을 하기에어렵지는 않지만 한 번씩 경로를 벗어나 옆 귀퉁이에 불시착하기도 했다. 거기도 눈밭, 여기도 눈밭이어서 넘어져도 포근했던 기억이 난다.




집에 다다를 때쯤, 내년에는 이렇게, 더 건강한 행복을 추구하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닐포대 썰매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작은 행복들을 많이 쌓아야겠다고.

 사회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고, 나와 맞는 사람, 맞지 않는 사람, 원하는 일과 원치 않는 일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색들이 섞여 있지만 흰 눈에 덮이면 모두 같은 흰색이다. 오늘은 화이트 크리스마스, 모두에게 하얀 눈처럼 포근한 날이면 좋겠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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