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가 되지 말았어야 했을까

by 물고기자리

꿈속에서 한 바탕 눈물을 흘렸다. 배겟잇을 적실만큼 흐느껴 울다가 꿈에서 깼다. 우습게도 그건 지금보다 조금 젊었던 시절의 연애감정에 기인한 눈물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의 꿈에는 아직까지 아이들이 나온 적이 없다. 나의 무의식은 나의 엄마됨을 인정하지 않는 걸까.


어제는 간밤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삶에서 아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러니까 내 마음속에서 아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분명 크겠지만 나는 나의 하루에 아이들이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기를 바란다고. 아이들을 위해 죽을 수도 있지만 그와는 별개로 나의 하루는 아이들이 있기 전의 나로 최대한 돌아가려고 발버둥 아닌 발버둥을 치는 시간들의 연속이라고. 인생 자체가 큰 모순덩어리이지만 이보다 더한 모순이 있나 싶다.


누구에게나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일이 있다. 엄마가 된다고 그게 사라지는 게 아니다. 엄마라는 새로운 역할과는 별개로 나는 내가 되고 싶은 어떠한 이상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기는 말의 중간지대에 서 있는 동안에는 내가 쓸모 있는 존재라는 생각에 마음이 한없이 부풀어 오른다. 아이들의 밥을 챙겨주고 놀아주고 책을 읽어줄 때와는 달리, 나라는 인간의 잠재력이 무한대로 팽창하는 그 시간 동안 나의 얼굴은 빛이 난다. 나는 이기적인 엄마인가. 내 경력의 잔고를 채우기 위한 선택에 아이가 뒷전으로 밀릴 때면 어김없이 마주하는 질문이다.


아이와의 대치는 늘 예상 밖의 변수들로 채워지지만 일정한 궤도에 오른 내 일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선에서 이루어진다. 목욕 한 번 시키는 데 밥 한 번 먹이는 데 늘 예상치를 웃도는 품이 드는 아이 돌보기와는 달리 내 일은 내가 시간을 들인 만큼 정직한 성과를 내 손에 쥐어준다. 정량적인 결과물로 나에게 보상을 제공한다. 그 때문일 거다. 효율성을 따지는 내가 자꾸 내 일로 파고드는 건.


나의 모순은 접근해야 하는 방향의 결 자체가 다른 두 가지 일을 같은 공간에서 하루 내에 시간을 쪼개 수행해야 한다는 데서 온다. 나는 곧잘 쉬운 쪽으로 편한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고 마는데, 아이와 하루 안 놀아준다고 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나 일을 하루 건너뛸 경우 다음 날 해야 할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지금 내 나이에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아이가 없는 사람들 가운데 경력이 절정에 달한 것을 보면 부러울 때가 있다. 번역이란 걸 10년 하다 보니 내 경력 역시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기는 했지만 만약에, 라는 변수를 대입해 보면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이에게 투입되는 시간과 에너지를 고스란히 나의 일에 썼다면 지금 나의 자리는 지금과는 조금 달랐을 거라는 희미한 기대. 착각일 수도 있을 그 기대는 늘 나의 마음을 조금씩 흔들어댄다.


둘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게 나의 이상이라 말하지만 가끔은 그게 정말 진심인지 내가 대외용으로 걸치고 있는 가면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아이를 낳으면 알아서 클 거라는 착각 아닌 착각 속에 일을 저지른 뒤 뒷감당이 안 돼 그냥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쪽에 시간을 더 내어주고 있는 건 아닐까. 최대한 효율적으로 흘려보내려 애쓰는 나의 하루에 아이들이 희생양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가 커갈수록 눈치도 보인다. 엄마가 일만 한다고 자기랑 놀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두려울 때도 있다. 조금 섭섭한 기억은 자라느라 바쁜 아이들이 잊어주기를 바란다면 그것 또한 나의 욕심일 터.


두 아이를 돌보며 집에서 일한다고 하면 늘 같은 질문을 받는다. 그게 가능하냐고. 너무 바쁜 거 아니냐고. 솔직히 바쁜 건 아이가 없는 사람들이 더 바쁠 거다. 아이들이 있으면, 그러니까 내가 100퍼센트 제어할 수 없는 대상이 주위에 있을 경우 일정에 여유를 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로만 하루를 빼곡히 채워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도 해서는 안 되는 일로 계산해 적당히 쳐내게 된다. 나 혼자였다면 워커홀릭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 덕분에 나는 내 역량의 4, 50퍼센트 정도만 일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마음이 뾰족한 날에는 이 '덕분에'가 '때문에'로 바뀌면서 수시로 아이들을, 혹은 나를 찌르기도 하지만 6년 정도 이렇게 일하다 보니 대체로 적응이 된 기분이다. 채워지지 못한 나머지 역량이 자꾸 부유하는 기분까지는 어찌할 수 없지만.


나는 엄마가 되지 말았어야 했을까. 내가 6년 전 던질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질문이 나를 따라다닌다. 하지만 나는 6년 전으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건 아이 없는 삶이 아니라 지원일뿐이다. 아이가 없었던 삶의 일부를 내가 온전히 이어갈 수 있도록 삶의 한가운데로 나를 쏘아 올릴 수 있도록 아이를 돌보는 일과 내 일을 둘 다 붙들고 갈 수 있도록 자그마한 도움의 손길을 바랄 뿐이다.


놀아달라는 아이를 외면하고 일을 할 때면 누구 좋자고 이 일을 하는 건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이가 나를 원할 때, 아직 어릴 때 함께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갖는 게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다. 아이의 지금은 딱 한 번뿐인데 그 시간에 함께 해주는 게 진짜 엄마가 아닐까 하는 마음이 수시로 나를 찌른다. 하지만 나에게도 지금은 딱 한 번뿐이다. 영영 오지 않을 언젠가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내가 원할 때 나에게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마음 앞에 이기적이라는 수식어를 갖다 붙이는 건 아무래도 너무 억울하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계속 힘들 것이다. 자주 지치고 주저앉고 싶고 우울하기도 하겠지만 아이들의 발그랗게 상기된 볼과 장난기 가득한 눈에 속아 또 하루를 넘길 것이다. 나를 얼러가며 답 없는 일상을 어떻게든 밟고 가다 보면 아이들은 어느샌가 훌쩍 자라 있을 테고 내 기량의 7, 80 퍼센트를 발휘할 만큼 시간이 남아도는 날도 찾아올 거다. 아직은 요원하지만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한 법이니까. 그때가 되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엄마가 되길 잘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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