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일 다 했어?

by 물고기자리

첫째 아이는 늘 묻는다.


“엄마, 이제 놀아줄 수 있어?”


이 버전은 상황에 따라 종종 다른 말로 둔갑하는데, 금요일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 내일 일 해야 돼, 안 해도 돼? (생략된 말: 내일 나랑 놀 수 있어?”)


유치원에 다녀온 뒤에 집에 와서는 이렇게 묻는다.


“엄마, 나 없는 동안 일 많이 했어? (생략된 말: 이제 나랑 놀 수 있어?)”


아이는 줄기차게 나랑 놀고 싶어 하고 나는 줄기차게 내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따로 없다. 나는 늘 아이와 충분히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고 자책하고, 죄책감을 뒤로한 채 또 책상 앞에 앉는다. 아이의 따가운 눈빛이 뒤통수에 와 닿는 걸 느끼며.


아이가 자라고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면 상황이 좀 나아질 줄 알았다. 내 시간을 조금 더 확보할 수 있을 거라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말을 자유자재로 할 줄 알게 된 아이는 이제 놀아 달라, 같이 뭐 해 달라 하며 요구 사항이 점차 늘고 있다.


내가 아예 밖에 나가 일한다면 아이는 그런 말을 할 수조차 없을 텐데 내가 집에 있어서 괜히 그러는 건가, 아이가 그냥 하는 말에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엄마인 나에게는 아이가 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 크게 다가온다. 내 일도 하고 아이도 돌본다는 욕심 때문에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결핍을 경험하고 있지는 않은지 못내 불안할 때도 있다.


집에서 아이를 보면서 일하는 생활은 모든 일이 그렇듯 겪어보기 전에는 그 힘듦의 강도를 예측할 수 없다. 그러니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엄마에게 ‘애 키우기 좋은 여자 직업’이라는 프레임을 씌우지 말았으면 한다. 두 아이를 낳고 키우고 있는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애 키우기 좋은 여자 직업이란 돈은 많이 벌고 일하는 시간은 적은 직업이라고. 아이와 놀아주는 가운데 돈 걱정 안 해도 되는 그런 직업이라고.《나의 10년 후 밥벌이》라는 독립출판물에서 저자 이보람은 “곁에서 보기에도 육아는 휴일 없이 치르는 전쟁에 가까운데 그 와중에 일까지 하는 프리랜서가 어째서 좋은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엄마 자신조차도 막상 상황이 닥치기 전까지는 지레짐작만 할 뿐 어떠한 경험을 하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이들을 보면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자부하던 10년 전의 나는 '당연히'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보지 못했다. 임신과 출산 자체를 나의 삶에 대입하지 못하던 때였다. 내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내 일도 할 수 있는 삶은 겉보기에는 천국 같다. 물론 아이들을 돌보며 내 일도 할 수 있는 삶은 그렇지 못한 삶보다는 누릴 수 있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자칫하다가는 둘 다 제대로 해내지 못해 스스로를 구렁텅이에 빠뜨릴 수 있다. 아이는 아이대로 힘들어하고 엄마는 엄마대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이다.


고백하자면 지금의 내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나의 예상과는 늘 조금은 다르게 행동하고 내가 아무리 계획을 세운다 한들, 그대로 지켜질 리 만무하다. 조금 익숙해질라 치면 또다시 새로운 루틴에 적응해야 하고. 게다가 일과 육아의 경계가 없다 보니 번역을 하면서도 나는 내일 아이 간식거리를 생각하고 아이의 하루에서 놓치고 있는 건 없는지 자꾸 점검한다(그래도 나는 늘 뭔가를 놓치고 있다). 아이들이 내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일에만 온전히 집중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아이들이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아도 눈앞에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마인 나는 허둥댈 때가 있다.


한 번은 아이가 “엄마는 일만 좋아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의 당황스러움이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고 엄마가 일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니 조금이나마 이해한 듯했지만 앙금처럼 마음 한 구석에 남은 감정은 어찌할 수 없었다. “엄마는 OO(동생)만 좋아해!”와 비슷한 차원으로 한 말이 아닐까, 하며 스스로를 위로해 보았지만 아이가 보는 앞에서 일을 해야 하는 엄마는 늘 죄인일 뿐이다.


엄마 일 할 동안 혼자서, 혹은 동생이랑 놀고 있으라는 말에 일단 수긍하고 돌아서는 아이의 뒷모습이 못내 짠할 때도 있다. 막상 아이는 한 번 놀이에 빠지면 또 금세 잊고 말지만 아이가 내뱉은 말은 엄마의 마음에 짙은 잔상을 남긴다. 혼자 놀 줄 알아야 한다고 엄마가 뭐든 다 들어줄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도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생각할 때면 자책할 수밖에 없는지라 “엄마, 일 다 했어?”라고 묻는 아이의 말에 엄마인 나는 오늘도 마음이 찌르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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