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호실보다 필요한 것

by 물고기자리

고요한 아침이다. 주방으로 가 진한 커피를 내리며 창문 너머 맞은편 집 벽돌벽으로 떨어지는 햇살을 바라본다. 봄이 오고 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총총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는 걸 바라보며 나는 서서히 잠에서 깨어난다. 커피 향을 들이키며 모든 동작을 음미하듯 천천히 해나간다. 달그락거리는 커피잔 소리, 내가 끄는 슬리퍼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 나른한 박자와 온도가 평온하다. 이건 전부 거짓말이다. 현실을 소환하자면, 아이들의 괴성과 그에 화답하는 나의 고음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으로 오늘도 아침부터 마룻바닥이 흔들흔들한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그렇다.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에서 주인공 수전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은 후 도피하듯 머문 19호실이 남편에게 알려지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 꼼짝없이 갇혀 있는 동안 나는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품위를 지키고 싶지만 어느새 짜증과 화 두 가지 감정밖에 없는 사람으로 퇴화해 간다. 설마 이게 진짜 나의 모습인가.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보며 악마가 겹쳐 보이지 않나 수시로 확인한다.


아이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 부산스러운 움직임은 그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방해물이다. 귀에 쑤셔 넣은 이어폰 사이를 손쉽게 비집고 들어오는 소음은 물론이거니와 뭐라도 챙겨줘야 한다는 엄마로서의 마음 또한 방해가 된다. 나의 일을 방해하는 아이를 잠시 미워하고 아이에게 소리를 질러도 괜찮다, 내 일을 하는 동안만이라도 아이들 생각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려 보내도 괜찮다, 주문처럼 외워보지만 아이가 배고프다 하면 곧바로 일어나서 또 부엌으로 가고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나면 또다시 거울 앞에 선다.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힘에 부치는 고비의 순간은 매번 나의 위치를 실감하게 한다. 그 작은 몸에서 무한대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의 위력을 몸으로 겪어내며 나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이내 체념하고 만다. 나에게도 19호실이 생기면 한숨 좀 돌릴 수 있을까. 아이들의 호랑이 기운을 감당할 만한 힘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은 날이면 이내 그런 은밀한 공간을 상상해본다.


나에게 19호실이 생기면 무엇을 할까. 수전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섯 시간을 훌쩍 흘려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그 다섯 시간 동안 온전히 관계에서 빠져나오는 일이 가능하긴 할까. 그래 봤자 돌아가면 다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의 반복일 텐데. 19호실은 허황된 꿈, 신기루 같은 것이 아닐까. 누가 거저 준다면 거절은 못하겠지만.


현실에서 요원한 19호실보다 나에게 더 필요한 건 숨을 쉴 만한 구석을 여러 군데 심어놓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시간대에 하늘을 바라보고 멍하니 있는 일, 노래 한 곡이 흘러가는 동안만이라도 눈을 감고 온전히 음악에만 집중하는 일 따위 말이다. 나는 어쩌다 그런 일조차 마음 놓고 할 수 없는 소용돌이의 한 복판에 스스로를 가두게 된 걸까. 나도 나를 참 아끼는 사람이었는데. 내걸 잘 챙기는 사람이었는데.


제주도 무명서점은 운영시간이 오후 1시부터 일몰 무렵까지라고 한다. 주인장이 일몰을 놓치겠다 싶은 날은 서점 문을 열어놓고도 다녀올 정도로 붉게 물드는 태양을 배웅하는 일을 중요한 일과로 생각한단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지키려면 그 정도 배짱은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도 해보고 싶다. 아이들을 집에 두고 잠시 노을을 보고 오는 일(여기서는 그러다 경찰한테 잡혀가는데......). 노을을 보며 하루 내 쌓인 감정을 두 손 사이에 탁탁 털어버리는 건 19호실에 칩거하는 일보다 분명 훨씬 더 저렴하고 현실적인 방안일 텐데.


소용돌이에서 온전히 빠져나오는 일은 당분간 불가능할 거다. 안타깝게도 누군가 내 손을 잡고 그곳에서 나를 꺼내 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공간이든 시간이든 '비어있는 상태'가 주는 숨통 트임을 느끼려면 나 스스로 그곳에서 걸어 나가는 수밖에.


그리하여, 아이들을 욕조에 넣어 두고 재빨리 넷플릭스에 들어가 미드를 튼다. 순식간에 나를 다른 세상으로 옮겨다 심기가 무섭게, 코로나로 아이 학교가 이번 주 내내 닫는다는 청천벽력 같은 메일에 그다음 주는 봄 방학이라는 소식이 1+1으로 나를 강타한다. 아, 아무리 도망가려고 해도 이 놈의 사회가 안 도와준다. 이번에는 뭔가 더 센 처방전이 필요할 것 같다. 한 동안 참고 있던 한국 책을 몇 권 주문하고 금요일쯤엔 혼자 잠깐이라도 커피숍에 다녀와야겠다. 첫째 아이가 따라올 것만 같고 그러면 또 거절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지만 마음을 단단히 먹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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