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으로 이사한 지 2년 만인 작년 여름, 또 이사를 했다. 그 집에 그리 오래 살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짧게 살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떠남은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이루어졌다. 신랑이 결혼 전부터 살던 퀸즈 집을 떠나 브루클린으로 이사하자고 한 건 나였다. 아이들의 학군을 고려한 장기적인 생각에서였지만 나는 퀸즈 집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결정적인 계기는 쥐의 출몰이었지만 나는 어차피 떠날 집이라는 생각을 늘 마음 한편에 간직하고 있었다.
둘째가 3개월 정도 되었을 무렵 도착한 새로운 동네는 파크 슬로프라는 지역이었다. 아는 선배 커플이 먼저 와서 정착하고 있던 이 동네는 예전에 살던 곳과는 달리 지배적인 분위기가 꽤나 안정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연의 《카운터 일기》에서는 이 동네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거주민의 상당수가 전문직에 종사하는 30~40대로, 가족 단위의 안정된 삶을 사는 이들이다. 들고 나는 사람이 많은 맨해튼에 비해 조용하고 안정적인 환경 탓에 치안이 좋고 커뮤니티 문화가 발달해 있다. 사방에 어린이집과 놀이터, 학교가 있으며 아동 친화적인 환경이다.”
처음 이 동네에 놀러 온 날, 영화 <인턴>에서 앤 해서웨이가 자신의 집을 바라보며 했던 대사가 떠올랐다(알고 보니 실제로 영화의 배경이 이 동네였다). “이 집은 참 행복해 보이지 않나요.” 집들은 정말 행복해 보였고 그곳에서 나오는 가족들도 정말이지 다들 행복해 보였다. 나는 그러한 집에서 나와 브루클린의 센트럴 파크라 할 수 있는 프로스펙트 파크로 향하는 우리 가족을 그려보았다.
하지만 어느 동네든 달동네라 부를 만한 지역이 있듯, 평창동에 전부 부자만 사는 것은 아니듯, 이 동네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찾은 집은 파크 슬로프의 거의 끝자락에, 우아한 브라운스톤 건물들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했고 그 덕분에 조금 더 저렴했다. 그래도 좋았다. 공원과 지하철역을 걸어서 갈 수 있고 아이의 Pre-K가 가까웠다. 동네 주민들은 친절했고 치안도 훌륭했다. 뉴욕에 도착한 지 5년 만에 나는 비로소 제대로 된 집을 찾았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여기에서라면 나의 삶을 제대로 펼쳐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코로나라는 복병을 만나기 전이었다.
한국보다 한발 늦게 시작된 뉴욕의 코로나는 한 번 터지자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일상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학교가 문을 닫고 신랑 역시 재택근무를 시작하자 방 한 칸짜리 좁은 집은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첫째 아이를 학교에 보낸 뒤 둘째 아이를 데리고 일하던 나의 조용한 하루는 사라졌고 우리는 새로운 일상에 적응해야 했다. 하지만 코로나의 여파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7월 무렵, 신랑의 회사에서 칼바람이 불어 정리해고가 일었고 신랑의 연봉이 감봉되었다. 집주인은 이 와중에 월세를 올렸고 결국 우리는 조금 더 저렴한 집을 찾아야만 했다. 아이의 학교가 위치한 동네는 파크 슬로프보다 조금 더 아래쪽인 윈저 테라스라는 동네인데 우리는 윈저 테라스의 끝자락으로 그렇게 점점 더 남쪽으로 내려왔다. 말이 윈저 테라스지 사실은 고속도로 건너편에 자리한 켄싱턴이라는 또 다른 동네에 가까운 위치였다. 가까스로 공원을 끼고 있었지만 나는 밀려났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한 동안 차를 타고 예전 동네로 가서 장을 보고 그 주변을 맴돌기도 했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 문제가 하나둘씩 터지면서 이사를 잘못 왔다는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새로 이사한 집은 1층인 데다 주위 건물에 가려서 해가 전혀 들지 않았다. 여름인데도 실내는 깜깜했고 갑자기 시작된 외부 공사 때문에 창문마저 열지 못하자 하루 종일 정체된 공기가 맴돌았다.
이사를 결심하기 전 아이의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본 결과 20분이 걸렸다. 아이가 통학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방음이 형편없는 이 도시의 건물에서 하루 종일 뛰어 다니는 두 아이를 고려해 1층 집을 알아보던 우리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 그렇게 급하게 8월에 이사를 했고 아이는 9월부터 유치원에 입학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을 가야 했던 학교는 곧 문을 닫았지만 12월이 되자 아이는 다시 종일반에 배정받았다. 아침과 오후 두 번을 20분씩 걸어가는 게 힘들었던지 돌아오는 길은 푸념의 연속이었다.
“이 집 싫어, 다시 옛날 집으로 가고 싶어.”
쥐뿐만 아니라 녹물과 난방 문제 때문에 안 그래도 정이 뚝뚝 떨어지고 있던 찰나였다. 아이의 그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별거 아니야. 집 사서 다시 이사 가면 돼. 지금만 잘 이겨내면 돼, 하며 스스로를 잘 붙들고 있었는데 아이의 그 말에 순간 약해지는 내가 보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였다. 놀아달라는 아이를 외면하며 일하고 있었더니 아이가 “엄마는 일만 좋아해!”라고 쏘아붙였다. 예전 같으면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늘어놓았겠지만 며칠 전 아이의 시위가 생각나 이렇게 말했다.
“너 예전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지. 그러려면 엄마가 돈 많이 벌어야 해. 돈 벌려면 일해야 하고. 오케이?”
아이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길래 너무 솔직히 말했나 후회하는 마음이 들려는 찰나 아이가 답했다.
“엄마, 그럼 빨리 일해!”
그러면서 저 혼자 놀기 시작하는 아이. 그 모습이 못내 짠했지만 예전 동네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엄마인 나도 같았기에 또 주섬주섬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우리 다 같이 있잖아, 엄마는 그거면 충분해, 라는 말을 삼킨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