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곤란함 앞에서

by 물고기자리

얼마 전 아는 동생이 집에 놀러 왔다. 동생은 아이들과 놀아주겠다고 자신만만하게 우리 집에 와서는 집에서 일하는 엄마로서의 나를 인터뷰하겠다고 야심 차게 아이패드를 꺼냈다. 이모와 금세 친해진 아이들은 이모의 무릎에 냉큼 기어올라가 키보드를 마치 피아노 건반처럼 우당탕탕 두드려댔다. 엄마인 나는 잠시 경악했으나 동생을 그냥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아이가 없는 사람은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나 궁금했던 것이다. 동생은 진심인지 가식인지 알 수 없는 미소로 아이들을 달래며 아이들이 연신 귀엽다고 했다.


하지만 동생은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했다. 역시 그랬다.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과 갖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앞으로도 몇 번은 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것 같았기에 훈수를 둘 생각은 없었다. 글을 써서 어떻게든 생계를 이어보려는 그 친구의 인생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불안정한 커리어에 아이가 떡하니 생기면 어떻게 될지 불 보듯 뻔했다. 동생이 그 지난한 절차를 겪지 않기를 바랐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아이를 권하기가(?) 조심스럽다. 내가 그 친구들의 아이를 봐줄 게 아니라면, 그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해줄 게 아니라면 함부로 애 언제 갖느냐, 왜 안 가지냐 라고 말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내가 해보니 그렇더라.


아이들과 하루를 부대끼고 나서 거울 앞에 서면 그 안에는 아침보다 조금 늙은 내가 있다. 아이들이 어린 지금이 내 청춘이라지만 하루가 저물 무렵의 나는 폭삭 늙은 기분이다. 이렇게 흐르는 하루들이 여러 밤 지나면 아이들은 몰라보게 자라 있겠지만 나는 저버릴 테고 나의 엄마 아빠는 더 쪼그라들어 있을 것만 같아 무섭다.



둘째 아이를 낳을 때 마취제 부작용으로 한 동안 허리가 말을 듣지 않았었다. 그때 처음 찾은 한국 물리치료 병원을 요새는 격주로 토요일마다 방문한다. 이제는 주로 어깨와 목이 문제다. 하루만 지나도, 아니 몇 시간만 지나도 도로 뻣뻣해지는 근육이지만 그렇게라도 풀어놓으면 그날 밤은 푹 잘 수 있다.


며칠 전, 그러니까 마흔을 맞이하는 생일 전날 병원을 방문했다가 근육이 죽어 있다는 처참한 진단을 받았다. 선생님은 뭉친 부위를 찾기 전에 일단 근육을 살려야 한다고 하셨다. 그 말투에서 전에 없는 다급함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선생님의 말에 무슨 일이 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 일도 없는 게 문제였다. 화낼 힘이 달려서 화를 못 낸 어제가 생각났다. 화를 내려고 숨을 들이쉬었다가 소리가 턱 하고 막혀서 피식 바람 빠진 소리만 내고 말았다고. 선생님의 처방은 간단했다.


“빨리 마음에도 심폐소생술을 해주세요. 그러다 우울증 걸립니다.”


근육 마사지를 받으러 갔는데 왜 마음을 만져주시고 그런다지.


어쨌든 선생님의 처방대로 다음 날 점심을 먹고 커피숍으로 갔다. 뉴욕은 코로나 때문에 실내에 앉아서 커피를 홀짝일 수가 없다. 그래서 거의 몇 달째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갔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나의 노력을 가상히 여겼는지 동네 커피숍 아주머니는 실내에 앉도록 허락해 주었고 덕분에 나는 얼어 죽지 않고 1시간 반을 보낼 수 있었다.


삶을 잘 살아내는 사람들의 비결이란 게 별 거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과 마음이 딱딱해질 때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나를 살리면 되는 거였다. 나를 살살 달래 가며 함께 데리고 가는 일. 혼자 부지런 떨다가 나는 그 단순한 진리를 놓쳐버린 거였다.


돌아보니 요 며칠 돈 안 되는 번역을 때려치우고 다른 일을 찾아 나서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잔뜩 긴장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내 뒤를 바짝 쫓아 오는 돈의 노예가 되어 살 수는 없다며 신세 한탄도 했던 것 같다. 물가 비싼 뉴욕에서 먹고 살기 더럽게 힘들다며 두 아이를 낳은 우리 부부의 대책 없음에 한숨이 나오기도 했고.


앞으로도 고민은 무한 반복될 거다. 내 마음은 또 딱딱해지고 심폐소생술을 요하는 날이 또 찾아올 거다. 하지만 어떤 인생인들 안 그럴까. 돈이 많으면 많아서 걱정 없으면 없어서 걱정. 자식이 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 결혼을 해도 걱정 안 해도 걱정. 세상엔 이렇게 우리의 걱정을, 관심을 갈구하는 거리들이 많은데. 내 마음이 돌덩이가 되기 전에 수시로 조물조물 만지작거리다 보면 말랑말랑한 상태는 유지하지 못 할지라도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막을 수는 있겠지.


그런데 죽어 있는 근육을 깨우느라 정작 아픈 부위는 마사지하지 못한 결과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어깨가 너무 아프다. 아이들과 놀아주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지하철에서 뻗었다던 동생의 어깨도 지금쯤 조금 아플 것 같아 괜히 미안하다. 동생아, 그래도 우리 집에 또 놀러 와 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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