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가슴이 저릴 정도로 무고한 얼굴로 잤다. 신기한 건 그렇게 짧은 잠을 청하고도 눈뜨면 그 사이 살이 오르고 인상이 변해 있다는 거였다. 아이들은 정말 크는 게 아까울 정도로 빨리 자랐다. 그리고 그건 걸 마주한 때라야 비로소 난 계절이 하는 일과 시간이 맡은 몫을 알 수 있었다. 3월이 하는 일과 7월이 해낸 일을 알 수 있었다. 5월 또는 9월이라도 마찬가지였다.
김애란,《바깥은 여름》
일을 하다가 잠든 아이의 말간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신기했다. 내 품에서 나올 때만 해도 정말 조막 만했는데 언제 저렇게 컸담. 눈썹은 더 진해졌네. 얼굴도 커진 것 같고. 마감에 치여 계절의 흐름을 놓치고 있을라치면 커가는 아이들이 말해주었다. 벌써 여름이 다 지나갔다고. 곧 겨울이 온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은 낭비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서둘렀나 보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정말 크는 게 아까울 정도로 빨리 자라고” 있었고 나는 어느새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아이가 부쩍 “엄마 싫어!”라는 말을 협박조로 내뱉기 시작한 게. 아이는 자신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을 때면 집을 나가겠다는 말, 동생이랑 둘이 나가서 살 거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저 그 나이 때의 투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말하면 엄마가 반응한다는 사실을 아는 아이의 영악한 수법 정도로 치부했다. 하지만 내 아이를 그렇게 바라보고 나니 마음이 아픈 건 정작 나였다. 내 아이가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아이라는 게 마음 아팠다. 나의 최선이 아이의 최선은 아니었을 거다. 내가 효율적으로 쓰려고 한 시간 속에 아이는 늘 2순위였고 그게 아이에게도 상처가 되었을 거라는 생각은 늘 뒤늦게 찾아왔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영화에는 아이가 뒤바뀌는 경험을 통해 그렇게 아버지가 되는 주인공이 나온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보다는 상대방, 그러니까 주인공의 진짜 아이를 6년 동안 기른 다른 아버지에게 눈이 갔다. “아이들에겐 결국 시간”이라며 아이와 온몸으로 놀아주는 그 아버지는 어쩐지 아이들을 닮아 있었다. 망가짐에 주저함이 없고 맛있는 음식 앞에서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모습이. 처음에는 다소 밉상처럼 보였던 이 캐릭터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아이들과 눈을 마주칠 줄 아는 다정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내 마음에 남았다.
영화를 보고 생각했다. 나는 어떤 엄마였나. 지금은 어떤 엄마인가. 내가 정한 규율을 강요하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하지는 않았나. 그랬다. 하다못해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공원이 있는데도 나의 일정을 늘 우선으로 삼느라 아이와 자주 공원에 나가지도 못했다. 내 시간을 잃은 것에 대한 억울한 마음으로 나는 줄곧 멍들어 있었고 나의 멍든 부위만 살피느라 아이의 아픈 마음은 쓸어주지 못했다.
한정원의 <시와 산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겨울을 겨울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당연한 듯해도, 돌이켜보면 그런 시선을 갖지 못한 적이 더 많다. 봄의 마음으로 겨울을 보면, 겨울은 춥고 비참하고 공허하며 어서 사라져야 할 계절이다. 그러나 조급해한들, 겨울은 겨울의 시간을 다 채우고서야 한동안 떠날 것이다." 조급한 마음이 들 때마다 이 글을 읽고 또 읽었다. 이 문장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시간들에 대한 위로였다.
겨울이 아름답지 않은 계절은 아니었다. 봄의 마음으로 바라볼 때에만 겨울은 춥고 비참하고 공허한 계절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자랄 봄날만 기다리느라 겨울의 한가운데 있는 나를 춥고 비참하고 공허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봄이 오면 내 옆에 작은 인간들이 없을지도 모르는데도 그랬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되는 건 아닐 테다. 고단함과 수고스러움, 일렁임과 울렁거림이 추억처럼 차곡차곡 쌓여 어느 날 돌아보며 내가 엄마가 되었구나 싶은 걸 거다. 내가 빚어낸 시간들이 결코 하찮지 않았음을 그제야 알게 되겠지. 일상은 거대하고 소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가 소소한 것이라 생각한 것들이 실은 거대한 것이었음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될지도.
그러니 잊지 않으려 한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나의 밋밋한 하루가 잠시 반짝인다면 그건 일하는 나의 손을 펼쳐 제 간식을 들려주는 자그마한 손 때문일 거라는 걸. 그 손이 언제까지나 조막만 하지는 않을 것이며 돌아 누운 등은 지금도 자라고 있다는 걸. 그리고 또한 잊지 않으려 한다. 겨울에 태어나 늘 어두운 기운을 걸치고 살았던 내가 여름의 아이와 가을의 아이를 하나씩 나아 마음의 온도가 조금은 높아졌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