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의 마음은 자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자를 것인가, 아이의 단잠을 방해하지 말 것인가 사이를 시계추마냥 오가고 있다. 좁디 좁아진 나의 세상에서 아이의 낮잠은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기에 감히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쥐 뜯어먹은 것 같은 머리를 하루 종일 바라보고 있는 심정 또한 만만치 않게 나를 괴롭힌다. 이 따위 고민에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일상의 비루함은 또 어떻고.
가끔은 나만 뺀 모두가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인스타에 들어가 봐도 잘난 사람들이 벌이는 축제로 떠들썩하고, 시간이 없어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클럽하우스에서도 무언가 샘날 만한 일들이 잔뜩 벌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 그들만의 축제에 끼지 못하는 바쁜 엄마인 나는 잔뜩 뿔이 나 있다.
나에게는 무언가를 수행하기 전 예열에 쏟을 시간이 없다. 정해진 하루 속에 여러 가지 일을 전부 해내기 위해서는 순식간에 한 모드에서 다른 모드로 전환해야 한다. 결핍은 창조의 가장 큰 원천이자 영감이 되기도 하지만 시간의 결핍은 나를 성마른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나는 결핍 속에 쥐어짜는 창조가 아닌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생각 속에 알을 깨고 나오는 창조를 욕망한다. 그리고 남들이 그걸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내가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이 유난히 확대되어 보인다.
물론 안다. 그렇게 화려해 보이는 이들의 모습이 그들의 전부는 아니란 걸. 누군가는 그런 모습을 보이기 위해 졸린 눈, 부은 얼굴, 굳은 어깨를 끌어안고 지금도 모니터 앞에서 아이디어를 쥐어짜고 글을 써 내려가고 있을 거라는 걸. 누군가는 스트레스성 위염에 시달릴지도 모르며, 남들 눈에는 쉬워 보였던 데뷔도 사실은 수천 번 수만 번의 보이지 않는 도전을 딛고 이룬 쾌거였을지도 모른다는 걸.
그런데 나조차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건 몰랐다. 얼마 전 나를 인터뷰한 동생은 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00는 책값 비싼 뉴욕에서 엄청나게 책을 많이 읽는 사람, 짧은 인스타그램 피드에도 한치의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듯한 똑 떨어지는 문장을 쓰는 사람, 적당한 감성과 미세한 날카로움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나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 곧 편견이었음을, "인스타그램도 글도 그저 개인의 작은 일부를 보여주는 수단일 뿐 무슨 짓을 해도 나의 전부를, 내가 가진 여러 개의 얼굴을 보여주지 못한다"라고 썼다.
인스타그램 속 나의 모습만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속에는 아이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 번역문 속 문장이 당최 뭔 소린지 몰라서 머리를 쥐어뜯는 나의 모습은 없었다. 나 역시 적당히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모습만 편집해 보여주고 있었을 테니. 범인인 나조차 그런데 소위 인기를 관리해야 하는 셀러브리티들은 더 이상 말해 뭐하랴.
그래서 이제는 그들을 좀 덜 미워하기로 했다. 그들도 늘 축제만 벌이는 건 아닐 테니.
<바베트의 만찬>에서 내가 좋아하는 장면은 만찬을 마친 사람들이 별이 총총밖힌 그림 같은 배경으로 걸어 나와 어둠 속에 손을 부여잡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다. 마치 진짜 축제는 지금부터라는 듯이.
만찬이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 내 눈에 늘 만찬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도 화려한 무대에서 내려온 뒤에는 화장을 지우고 조용한 삶을, 인스타그램에 등장하지 않는 삶을 이어갈 것이다. 그 모습을 상상하면 그들이 조금은 덜 부러워진다. 그들의 진짜 삶은 그런 게 아닐 거라고 안도하게 된다.
나의 진짜 삶 역시 인스타에도 브런치에도 내 역서에도 없다. 나의 진짜 삶은 지리멸렬한 하루에, 식어빠진 믹스커피 속에, 아이들의 소음 속에 있다. 하지만 진짜 내 삶을 잘 살아내야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반짝이는 삶도 피어나는 법이다. 그러니 우선은 내 옆에 딱 붙어 있는 진짜 삶을 잘 살아보겠다.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나 돌아갈 수 없는 과거 따위는 가끔만 생각하는 걸로.
사실 인스타에 늘 화려한 모습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나처럼 아이를 키우며 자신을 가꿔나가는 수많은 워킹맘의 꾸미지 않은 모습을 볼 때도 많다.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고, 우리의 삶에서 햇살이 내내 비추는 날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고, 비가 오고 우중충한 날에도 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게 우리의 삶이라고,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생각한다.
한 달 전쯤 고수리 작가님의 인스타 라이브에 들어간 적이 있다. 아이들 때문에 한없이 쳐지는 날이었다. 그런 곳에 들어가려면 뭔가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그러니까 각 딱 잡고 책상 앞에 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곳은 나와는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쌍둥이 아들 둘을 어린이집에 보낼 때 자신에게 주어지는 시간의 소중함을 말하는 그녀의 눈빛은 어딘가 친숙했다. 그건 나의 눈빛이었고 주위 모든 아이 엄마들의 눈빛이었다. 그녀와의 거리가 훅 하고 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녀가 아직 말을 마치지 못했는데 아이가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었다(그녀는 아침이었지만 나에게는 밤인 시간이었다). 그냥 나올까 하다가 어차피 목소리만 들으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어폰을 낀 채로 아이와 누웠다. 하루쯤은 아이 목소리가 위에 다른 목소리를 겹쳐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나는 누운 채로 그녀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눈을 감았고 한국에서 14시간이나 가야 도착하는 이곳에서 그녀와 끝까지 연결될 수 있었다. 그녀의 마음과.
지금 나의 삶은 아이를 낳은 과거 여성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분명 나는 그들보다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고 있다. 나에게는 나의 삶을 기록할 시간이 "충분하지만은 않지만, 있으며" 함께 걷는 수많은 동지가 있다. 그들의 마음을, 이야기를 그 날의 내 기분대로 읽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그 안에서 내 마음을 몇 가닥 건져내는 사치를 누리기도 하지만 내 글로 또 누군가에게 치유의 손길을 건네기도 한다. 그건 엄마가 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질투 어린 시선을 던질지언정 인스타를 기웃거리는 일을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들을 미워하지는 않겠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누군가 나를 미워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