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깍, 잠근 방문이 열리고 내가 밖으로 나가면 두 아이가 동시에 눈을 반짝이며 달려든다. 걸그룹의 인기가 부럽지 않은 순간. 두 아이는 서로 질세라 나에게 달라붙고 나는 잠시나마 두 아이의 부담스러울 정도로 넘치는 애정을 독차지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이들은 금세 사나운 짐승으로 돌변하고 나는 적군처럼 뛰어드는 둘째를 들어다가 거실에 내동댕이치다시피 던져 놓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와 재빨리 방문을 잠근다.
오늘도 잘 버텨냈다. 하루가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이 시간쯤 되면 나도 모르게 자그마한 한숨이 나온다. 오늘도 무탈하게 보냈구나. 이렇게 하루를 또 건넜구나. 하지만 내일이 되면 공 든 탑은 무너지고 나는 다시 처음부터 정확히 똑같은 일상을 반복해야 한다. 문은 열려 있을 때도 있고 닫혀 있을 때도 있지만 나의 하루는 거의 똑같이 흘러간다.
“집 안에 북적이는 손님들을 보며 코넬리아는 어이없어 하지만, 그제야 나는 알 것 같았다. 아이 없는 사람이 외로울 때가 있듯, 사람은 아이가 있어서 외로울 때도 있다는 것을."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에서 이 문장을 읽은 뒤 몇 년 전 둘째 아이를 가지기 전에 썼던 일기장을 들춰보았다. 그 안에는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내가 있었다. 아이가 있어서 외로울 때도 있는 지금과는 달리 그때의 나는 찾아오지 않는 아이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다고 착각했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도 숙고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내 아이를 간절히 원했다는 것, 아이가 없는 삶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 그게 진실이었다.
지금은 희미한 주사자국 정도로만 기억속에 남아 있는 그 일기를 썼던 그 날 이후 또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고백하건대 첫째 아이를 낳은 이후 3년, 그로부터 또 3년이란 시간을 나는 계속해서 참는 사람으로 살았다. 참는 게 특기인 사람으로. 이를 키우는 일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변수들의 향연이었다. 나의 욕심이었겠지만 나는 그 변수들의 허들을 잘 뛰어넘고 싶었다. 내 앞에 버티고 선 하루를 잘 살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작아져야 했다. 언제나 내가 큰 사람일 필요는 없었다. 가끔,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남아야 했다. 며칠 전, 일기장을 다시 펼쳐 이렇게 적었다. "함부로 외롭지 않을 것" 누군가의 글을 보고 한 다짐이었다.
아이들이 있는 지금의 삶에 내가 만족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아이들이 있는 풍경 한 가운데 있는 나를 전지적 시점에서 관찰하면 분명 나는 그 전보다 대체로 나은 사람이 되어 있다. 물론 그 풍경이 내가 그린 4인 가족의 이미지대로 흘러가지만은 않고 나의 일상은 가시밭에서 춤추는 삶에 가깝지만 이제 나는 보지 못했던 세상 너머의 누군가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 사람을 낳았을 한 사람을 생각하며 온통 나로 가득했던 세상에 다른 세상을 들일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나고 있다.
그러니, 엄마가 된 건 잘한 일이다. 나밖에 모르던 내가 다른 존재를 낳고 그 존재가 지닌 크기를 다 알지도 못한 채 책임을 지려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이미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었을 거다. 나란 사람의 본질이 아예 바뀌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건 바뀌는 게 아니더라. 엄마로서의 모드와 나라는 사람으로서의 모드를 수시로 넘나들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다른 세계로 입장할 수 있는 평생 회원권을 얻었다 셈 치자.
삶이란 다양한 형태로 꽃필 수 있다. 하나의 행복한 결말을 향해 가는 이야기는 없다. 한 여자의 인생은 여러 갈래로 나뉠 수 있다. 이번 생에서 나는 아이를 낳았지만 다음 생은 모른다. 내가 읽는 책 속의 화자들은 아이가 없는 경우가 더 많다. 나는 다양한 삶이 번식하는 세상을 바란다. 나의 아이를 위해서도 그게 좋을 거다. 단 하나의 옵션을 강요하는 세상은 재미없다.
아이를 낳든, 낳지 않든, 더 많은 결말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도 책으로 들어간다. 그 안에서 내가 한 때 꿈꿨던 누군가를 잠깐 만나고 다시 나의 세상으로 돌아온다. 그거면 된 거 아닌가. 책 위에 손을 올리며 생각한다. 그렇게 내가 건너갈 수 있는 삶, 가보지 못한 마음을 남겨두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고. 그곳에는 아이들이 따라올 수 없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