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의 동네책방을 소개합니다
동네책방에서 100달러를 쓰면 68달러가 지역사회에 돌아가지만 동일한 돈을 체인 서점에 쓰면 지역사회에는 43달러 밖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린라이트 북스토어에 관한 기사를 찾아보다가 알게 된 사실이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책을 좋아한다면서, 책방을 좋아한다면서 종종 저렴하다는 이유로 아마존에서 쉽게 책을 구매했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동네서점들을 깊이 알아가는 동안 이 서점들에 애착이 생겨버렸으니 이제 나는 하나 사면 하나 반값이라는 아마존의 상술에도 솔깃하지 않다. 내가 아끼는 책방들이 아마존에 대항하기 위해 펼친 box out 캠페인을 알기에, 작은 서점이 우리 지역 사회에 어떠한 존재인지 알기에, 그 서점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가 의미하는 바를 알기에 책을 사고 싶을 때면 아마존이 아니라 동네 책방으로 향한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나에게 찾아온 작지만 단단한 변화다.
지금까지 살펴본 열 개의 책방 말고도 브루클린에는 수많은 서점이 있다. 일부는 코로나 때문에 임시로 문을 닫은 상태이지만 곧 다시 문을 열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직까지 브루클린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넘쳐난다고 믿고 싶다.
그렇다면 한국의 사정은 어떠할까. 한국의 개성 만점인 서점들이 연속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바라보며 처음에는 경탄을 마지않았다. 나도 그런 서점을 방문해 보았으면 소원이 없겠지 싶었다. 하지만 단단하게 운영되고 있는 서점들도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서점들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것을 보며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점은 그 어떠한 업종보다도 고객을 끌어모으기 쉽지 않은 사업 분야다. 기다리는 게 일인 서점. 밖에 나가 호객행위를 하기에도 좀 그렇고 식당처럼 차려놓으면 누구나 쉽게 방문하는 것도 아니다. 문턱이 꽤나 높기에 개인의 작은 꿈으로 대책 없이 문을 열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그건 책이 지닌 속성에 기인할 거다. 책이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다르게 매겨지는 꽤 복잡한 물건이다. 맛있는 음식처럼 즉각적인 즐거움을 줄 수도 있고 두고두고 즐기는 물건처럼 지속적인 만족감을 안겨줄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김밥 한 줄보다 낮은 가치를 지닐 수 있다(김밥이 가치없다는 뜻은 아니다). 친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접근 자체가 어렵게만 느껴지고.
3년이라면 짧고도 긴 시간 동안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브루클린 사람들은 이 복잡함을 단순하게 바꾸는 법을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책이라는 물건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거리 곳곳, 집 앞 계단마다 free라고 써 놓은 책들이 널려 있고 우체통 모양의 무료 라이브러리를 열어보면 먹을거리와 함께 책들이 들어 있다. 그렇게 책의 무게를 덜어내다 보니 책이 일상의 사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 게 아닐까 싶다. 이 동네 사람들에게 책과 음식은 크게 다른 존재가 아닌 듯하다.
고백하건대 나 역시 처음부터 동네책방에서 거침없이 책을 사는 사람은 아니었다. 뭐든 저렴한 쪽으로, 편리한 쪽으로 생활하는 것이 익숙한 전형적인 한국인이었던 내가 동네책방에 적응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대낮에도 북적거리는 동네서점, 한 번에 두 세 권씩 책을 사는 사람들, 주인장에게 이런저런 책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코로나 위기 속에 동네책방이 살아남도록 지지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의 대열에 나는 선뜻 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 글을 마칠 무렵 나는 생일을 맞이한 아이를 위해 동네책방에서 <Now We Are Six>를 주문하는 동네 주민이 되어 있었다. 그건 동네 책방에 가야 하는 이유를 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아마존에서 클릭 한 번으로 주문한 책은 언제, 어디서 샀는지 기억조차 가물해지지만 동네책방에 들어가 책을 고를 때면, 그날 쇼윈도에 진열되어 있던 책, 입구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던 강아지, 그 강아지를 둘러싸고 아이와 나눈 대화, 주인장이 던진 농담까지 고스란히 기억에 남게 된다.
정혜윤 작가는 <슬픈 세상의 기쁜 말>에서 "우리 존재는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만큼이나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들었고 무엇을 상상하느냐에도 달려 있다"라고 했다. 서점만큼 이야기로 가득한 공간이 어디 있을까. 한 권 한 권이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만 말하는 건 아니다. 그 공간을 찾아감으로써 일어나는 이야기,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펼쳐지지 못했을 이야기도 있다. 조금 더 쉽게 말해보면 우리는 사람을 만나러 서점에 가는 것이다.
얼마 전 <유브 갓 메일>을 다시 봤다.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맥 라이언은 근처에 대형서점이 들어서는 것을 보지만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저 서점에는 무지한 판매원들만 있을 뿐이라고." 다른 직원이 그래도 저곳에서는 할인을 해준다고 반박하자 또다시 이렇게 말한다.
"They don't provide any service. We do."
같은 이야기다. 우리가 어떠한 형태로든 누리게 되는 서비스는,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온기는 때로는 누군가의 하루를 살릴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해내기도 한다. 동네 서점을 이용하는 이는 자신이 누리는 이 같은 혜택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이들이다. 슬프게도 영화에서 맥 라이언이 운영하는 책방은 결국 문을 닫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결말을 그리고 싶다. 그렇게까지 오랫동안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은 서점이라면 그렇게 쉽게 문을 닫아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
서점 역시 하나의 사업이므로 특별한 비법 따위는 없을지도 모른다. 서점에서 온갖 행사를 주최하고 지역민들을 위한 활동을 펼치는 것 역시 결국 매출을 올리기 위한 활동 아니겠는가. 결국 책이 많이 팔려야 서점은 살아남는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도록 만드는 것만이 정답일 터. 앞으로의 책방은 안 읽는 사람을 읽는 사람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거다. "우리는 서점이니까 우아하게 있을 거야." "어차피 내 꿈이었을 뿐 매출은 신경 안 써." 같은 태도는 코로나 시대의 서점을 살릴 수 없을 것이다.
동네책방들을 소개하는 글을 쓰면서 좋아하는 무언가를 잘 표현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알게 되었다. 100퍼센트 만족할 만한 글은 아니지만 3년 전쯤 비슷한 글을 쓰려고 했다가 포기했던 것을 생각하면 비교적 쉽게 내 안에 고여있던 것들이 나왔다.
이 글을 읽은 모두가 내 주위의 책방을 둘러보고 내가 그곳을 찾는 이유를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하루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소란스러운 공감이 아니라 잔잔한 위로라는 걸 책방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말해주고 있으니, 동네책방이 다 사라지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달아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브루클린의 동네책방은 오늘도 무사하다.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책방은 어떠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