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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bo Jun 30. 2020

나는 살아있다

아워바디 (2018)

인간은 뭘까? 어때야 인간일까.

모든 영화는 결국 세상과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그리고 어쩌면 내가 찾고 있었을 답에 대해 이야기한다.


01 내가 원하던 영화

이 영화 속 인물들은 움직이거나, 또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은 진짜 신체의 움직임을 뜻하기도 하고, 생각의 변화를 뜻할 수도 있다. 다만, 대부분의 책과 영화는 움직이는 인물로 하여금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사건에 집중한다면 이 영화는 정말로 한 인물,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의 움직임 그 자체에 집중하는 아주 신선한 시선의 영화였다.

"아워 바디"의 주인공 자영은 8년 차 고시생, 서른 한 살이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던 사람이었다. 영화 초반에 그녀를 담는 공간은 오로지 좁은 자취방 뿐이다. 마치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는 책과 메모지처럼, 자영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누군가 댓글에 썼듯 영화 시작 5분만에 하이퍼리얼리즘 성관계 장면이 나오는데, 이 조차도 뭔가 생동감이 들지 않고 불쾌하다. 또 다시 이동하는 공간도 실내, 자영의 본가다. 그곳에선 더 숨막히는 엄마와 딸의 긴장이 공간을 채운다.


이내 8년을 매달렸던 고시 공부에 대한 마음을 조금 접으면서, 자영의 눈엔 새로운 것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달리는 여자. 달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왜 달리는지, 어디까지 달리는지 알 수 없지만 어느 날부터 자영도 달리기 시작한다. 폐가 터질 것처럼 달려 쫓아간 여자, 현주는 자영을 그녀가 속해있는 런닝 모임에 초대하고, 자영은 그들과 함께 달리기 시작한다.

영화 속 달리기 장면을 보면 속이 시원해진다. 영화 막바지의 엄마와 딸의, "엄마는 숨가쁘게 뛰어봤어?" "너는 어디까지 뛰어봤는데?"하는 대화는 굉장히 의미심장해서 달리기가 어떤 것의 상징으로서 표현되었다고도 누구나 생각하겠지만, 영화를 보며 시종일관 생각한 것은 이 영화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영화구나, 하는 것이었다. 왜, 사람도 만나고 나면 기가 빨리는 사람이 있고 기가 채워지는 사람이 있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이런 영화가 내가 원하던 영화구나, 하는 만족감이 들었다.


02 정신과 육신, 그 기울어진 운동장

인간을 다른 동물 존재들과 구분짓는 것은 이성, 즉 사고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끊임없이 정신을 깨우고 머리를 굴리며 사람으로서의 구실을 하길 원했던 것 같다. 그 일례가 언젠가부터 자주 눈이 띄는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표현이다. 이제 도처에 지식이 널려있기도 하고, 사람들의 사회-정치면에의 관심이 높아진 세상이다. 그러다보니 논쟁도 많고, 생각도 많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불편하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그런 의견들을 모두 들어보면 틀린 말이야 없지만, 가끔은 수많은 생각에 노출되고, 그 흐름을 따라가기 피로할 때가 있다. 공부를 하다가 뇌에 번아웃이 오는 것처럼. 한 마디로, 가끔 몸의 움직임 의미하는 '운동'과 생각을 표현하는 '운동'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영어로도 같다..!)


"아워 바디"를 보면서 인간을 이루는 건 신체와 정신, 둘 모두라는 사실을 스스로 각인시켰다. 물론 뇌가 명령하면 신체가 움직이는 건 맞지만, 그런 기계적인 체제 말고. '정신 집중'은 강조해도 '신체 집중'은 아무도 일러주지 않는 사회에서, 사람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의미가 부여되고 나를 둘러싸는 수많은 가치 논쟁과 평가에서 해방되어 오롯이 나의 신체에만 집중하는 상태에 대한 요구가 커졌을 때 쯤 이 영화를 만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요즘 사람들이 운동을 많이 하는 이유도, 코로나로 갇혀버린 실내에서 탈출하고자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나처럼, '생각한다'는 행위를 강요받는 와중에 모든 잡념을 벗어던지고 오직 몸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느끼려는 마음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사실 얼마 전에, 나도 달렸다. 맑은 공기와 함께이진 않았고 러닝머신 위였지만 눈에 보이는 한계를 시험하는 건 얼마나 희망찼던지. 심지어 "여기까지만 하고 쉬어야지"하고 쉴 때도, 쫓기고 있다거나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음날엔 근육통을 앓긴 했지만,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무작정 달리기만 하니 얼마나 상쾌했는지 모른다. 취미로 하고 있는 요가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내 몸의 반응에 귀를 기울이고, 너무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더더욱 많이 느낀다. 결국 나를 살아 움직이는 형체로 만들어주는 것은 육체인데, 그것에 대해 너무 소홀했다는 것을.


03 '아워바디'는 페미니즘 영화인가?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로 보는 시선도 많다. 하지만, 그 틀 안에 갇히고 보면 영화의 내용에서 조목조목 정당하지 않은 부분들을 보게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감독도 영화제에서 정말 많은 시선과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여성을 중심으로 한 서사를 그리며 여성의 몸과 건강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지막엔 자영이 자신의 섹스 판타지를, 사회적으로 여성에게는 금기시되어 온 자위로서 이루는 걸 보면 이 영화는 여성이 그녀의 행동 반경을 넓혀가는 페미니즘 영화로 볼 수도 있겠다. 물론 그 생각도 존중하지만, 내 생각엔 이 영화는 페미니즘을 넘어선 어떤 다른 장르의 영화다. 아래는 자영을 연기한 최희서 배우와의 인터뷰에서 발췌한 내용인데, 정확히 내 생각과 일치한다.

최희서는 이 영화가 여성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도 밝혔다. 그는 "저는 이 영화가 영화라 생각지 않는다. 물론 여성이 주축이 됐지만 제목이 '아워바디'인데 사람이라면 몸을 쓰기 시작했을 때, 좌절한 상황에서 몸을 쓰고 운동을 하면서 근육 생기고 그런 자신을 바라볼 때 감정 등에 대해 남성 분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극 중 자영은 운동으로 변화되지만, 그럼에도 갑자기 성공하는 인생을 살게 된 것도 아니다. 여성이 주축이 된 건 기뻤지만 성별에 국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영화를 보고 했던 태초의 생각으로 돌아가본다. 결국엔 페미니즘이든, 어떤 이념이든 인간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다. 수많은 생각들을 끼워맞추면 그것이 인간 존재가 된다. 차이는 어떤 요소에 더 무게를 두는가, 그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가 담은 생각이 페미니즘으로 한정되질 않길 원한다. 우리는 늘 현대인이 우울하고, 무언가에 한없이 쫓기고 있다고 말을 하며 현대인과 현대사회를 분석하지만, 정작 그에 대한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한다. '아워바디' 영화는 그 대답을 명료하게 내놓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있다"는 감각이라는 것을. 등한시되어온 육체의 감각을 새롭게 일깨울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렇게 또 운동을 다짐한다. 내가 정신 노동과 정신 함양을 더 중요시하느라, 나의 몸뚱아리의 문제를 등한시하지 않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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