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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이 Aug 14. 2023

세 번의 기회 VS. 터닝포이트

살다 보면 세 번의 기회가 온다는데 과연 나는 지금껏 세 번의 기회가 있었던가? 그 기회란 것이 와도 모르고 지나가기도 하고 알면서도 놓치기도 한다. 그러면서 흔히 그 기회를 잡을 준비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나누며 자기 계발과 노력을 강조한다.


굳이 기회까지는 아닐지라도 삶에서 자주 마주치는 터닝포인트가 있다. 인생을 바꿀 만큼 화려한 기회는 아닐지라도 소소하게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일들이 일어난다. 다만, 문제는 기회든 터닝포인트든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는 것이다. 마지막 순간이 결정 나기 전까지 놓지 않는 끈기와 굳은 마음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자신에 대한 믿음. 말은 쉽지만 사실 너무도 어렵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어떡하면 성공하는지와 행복할 수 있는지를 알면서도 선택하지 않고 실행하지 않을 뿐이다.

프리랜서 번역가를 고집하면서 어느덧 1년을 보냈다. 프리랜서 번역가로 등록된 에이젼시는 적지 않은 것 같은데 수입의 80%를 차지하던 해외번역업체와 헤어지면서 굉장한 타격을 받았다. 그러면서 나는 영한번역에 그치지 않고 한영번역을 겸했다. 양 방향을 다하다 보니 조금은 나아졌지만 우리나라 번역 에이젼시의 3배가 넘는 요율을 제공하던 해외업체와의 수입 파이프라인에는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즉, 같은 일을 하고도 보수가 3분의 1을 받거나, 같은 요율로 벌려면 3배의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번역으로 뛰어들면서 세운 원칙이 있다. 그중 하나가 마지노선 요율. 번역 의뢰가 없는 시기에 공부한다고 생각하면서 저 요율의 번역 의뢰를 할 것이냐를 두고 고민을 했다. 결과는 '아니'였다. 보수 없는 공부를 하되 저 요율의 번역은 하지 않는 것으로. 누군가는 공부한다고 생각하고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했지만, 나는 나의 뇌를 속일 수 없다. 공부는 무보수여도 공부일 뿐, 내 노동을 투여한 작업은 당연 그 대가가 따라야 한다. 그런 작업을 계속하다 보면 아마 나는 번역을 싫어하고 오래 유지할 수 없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직장인은 자신의 몸값을 회사가 결정하지만 프리랜서는 자신의 몸값을 자신이 결정한다. 유일한 주도권이 아닐까 싶다..ㅜㅜ






프리랜서 번역가로서 1년이 지났고, 한 차례 내 노동이 물거품이 되었고, 9개월간의 장기간 아카데미 과정이 끝났고, 그리고 약간 번아웃(?)이 왔다. 육체적이 아닌 오로지 정신적인 번아웃? 아니, 정확히 말하면 번아웃은 아니다. 뭔가를 아주 열심히 하고 난 후의 허탈함이나 정신적 피로감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고민거리가 머릿속에 가득했다. 번역을 계속해 나갈 것인가? 나의 번역실력은 어떤가? 번역도 전문분야가 있는데 누군가 나에게 대표적 전문분야를 묻는다면 확실히 답할 수 있는가? 이 마지막 질문은 사실 샘플테스트가 주어지거나 혹은 프리랜서 번역을 지원할 때 언제나 나오는 질문이다. 난 여기서 당차게 내 전문분야를 내세울 수 없고 반대로 하지 않는 번역을 말한다. 그 외는 가능하다는 식으로. 내가 도전하지 않는 분야는 게임과 의료이다. 게임을 해 본 적도 좋아하지도 않다 보니 지원 자체를 할 용기가 없고 가끔 일반적인 게임을 간단히 번역할 경우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린다. 게이머들이 쓰는 용어를 찾고 관련 사이트를 찾아 읽고 비슷한 용례를 찾는 등. 의료 관련 번역은 모 회사의 필러 부작용을 의뢰받고선 난 당연히 의료는 자신이 없어 의료 관련 번역을 한 적이 없다고 고사했더니 필러 부작용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이라 가능하다고 하여 해 본 경험이 전부다. 


1년.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나는 내 번역 이력서를 근 2~3개월 단위로 업데이트한다. 마지막으로 업에이트한 7월의 이력서는 시간 순이다. 월별로 가장 최근의 번역물을 적고 옆에 한영인지, 영한인지만 표기를 해 뒀다. 자잘한 번역을 제외하고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 나의 번역 이력서. 가만히 쳐다보니 과연 아니 역시 나의 전문분야 번역은 눈에 띄지 않았다. 꼭 전문분야가 필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의뢰가 오는 번역을 하는 비주도적인 번역 생활이 문제로 느껴졌다. 전문분야가 있다고 주도적인 건 아니지만(어차피 에이전시든 업체에서 의뢰가 와야 하니) 남들과의 차별성도 없다. 가끔 저 요율의 번역을 거절하면 아쉬운 소리 하나 없이 에이젼시는 상냥하게 알겠다고 한다. 왜냐면, 그 요율로도 번역을 하는 번역가들은 많으니깐. 세상 일에는 파이가 있다. 내가 그 파이를 조금 더 늘리려면 대책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1년 동안 번역한 내용을 보면 재미를 가지고 할 수 있는 분야가 있었다. 잘하고 못하고는 둘째 문제이고 재미가 있다면 도전해 볼 만하다. 그리고, 해보고 아니면 돌아서면 된다. 그 정도의 용기는 아직 가지고 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6~7년 만에 코세라(Coursera)를 찾았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다. 전혀 모르는 분야의 번역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고, 그럼 공부할 재료가 필요했다. 먼저 관련 책을 샀고, 영한이 모두 있는 사이트를 찾았고, 마지막이 코세라였다. 코세라는 처음 접하는 곳이 아니다. 6~7년 전 회사에서 Region Hipo로 뽑혀 2년 동안 8개의 과정을 수료했다. 당시에는 모두 영어로 사이트가 되었었는데 이제 들어오니 한글로도 사이트가 운영된다. 이전에는 회사에서 정한 강의를, 회사에서 지불했지만 이제는 내가 공부할 강의를 찾아 내 카드로 결제했다. 


인생에서 기회든 터닝포인트든 그것 또한 내가 만드는 것이다. 기회도 내가 만들고 터닝포인트도 내가 만들고. 실패해도 괜찮고,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건 명백하다. 프리랜서 번역가로서의 1년을 터닝포인트 삼아 새로운 도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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