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7일 토요일, 나는 완전한 독립을 했다. 주위에선 '자유 부인'이라고 부러워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독립을 나는 울며불며했다. 이렇게 쓰자니 누군가는 뒤에 나올 글을 읽고, '헐', '뭐야'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있겠지만 난 정말 대성통곡하며 아들을 보냈다. 대학 기숙사로.
이해심이 넓은 누군가는 그럴 수 있다, 아이가 하나이다 보니 처음은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아들의 기숙사 입소는 2월 17일부터 20일까지였다. 우리는 평일 출근하는 남편을 배려해 토요일 출발했다. 일요일 출발하자니 하루 당일치기로 8시간을 운전해야 하는 남편의 월요일 출근이 힘들 거 같았기 때문이다. 며칠에 걸쳐 짐을 다 싸고 우린 토요일 아침 10시가 조금 넘어 출발을 했다. 가서 사도 될 것을 기어이 내가 사서 넣어 짐을 꾸렸더니 짐이 장난이 아니다. 남편은 1톤 트럭을 불러야 할 짐이라며 나를 쏘아보곤 금요일 퇴근 후 트렁크를 싹 정리하고 토요일 아침엔 트렁크에 싣고도 모자라 뒷좌석 한편을 이중으로 채웠다. 난 아들을 배려해 조수석에 앉히고(편안히 누울 수 있도록 좌석을 있는 대로 제치라며...) 나는 뒷좌석에 앉았다. 그렇게 우린 출발해 도중에 휴게소를 한 군데 들리는 걸 제외하고 대전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넘었다. 딱 4시간이 걸렸다.
부모님은 건물을 들어갈 수 없어 아들 혼자 짐을 3층으로 옮기기만 하고 우린 아들과 함께 학교를 나와 근처 구경할 곳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1993년에 열린 대전 엑스포 전시회도 가보고 학교 근처 곳곳을 구경했다. 노잼(?) 도시답게 갈 곳이 별로 없었지만 어딜 가나 연구소가 있었다. 우리나라 연구소는 왠지 모두 모아놓은 도시처럼.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저녁을 먹고 6시 넘어서 기숙사 건물에 내려 아들과 이별을 했다. 며칠 전부터 생각만 해도 코끝이 찡해졌는데 아들을 보내고 뒤돌아 계단을 내려오는데 정말 몇 십 년 못 볼 사람을 보내는 마냥 꺼이꺼이 울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다시 부산으로 내려왔고 집에 도착하니 어느덧 밤 11시였다.
내려오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남편은 운전 도중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고 하고, 나는 말 한마디 없이 차 안에서 오로지 잡다한 생각을 했다. 눈물 콧물을 짜면서. 아이를 처음 떨어진 게 처음은 아닌데 그래도 고등학교 기숙사는 매주 금요일 집에 와서 금, 토, 일 3일을 집에서 자고 월요일 아침 다시 학교를 등교를 했다. 주위 엄마들 말로는 대학에 가면 2~3개월 만에 얼굴을 본다고 했다. 중간고사를 치고 5월에 한번 오고 여름 방학 때 오고 2학기도 마찬가지로 중간고사를 치고 오고 그다음은 겨울방학. 그리고, 대학에 간 첫 달은 걱정도 되고 보고 싶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적응이 된다고.. 나도 그렇겠지?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훌쩍이다 문득 든 생각은, '아, 이제 끝났구나. 이제 정말 내 인생을 살아야 하는구나.'였다. 아들은 이제 새로운 대학생활에 적응하며 잘 살 것이다. 이제 나는 오로지 내 인생을 살아야 한다. 고3 엄마의 몫도 끝이 났고 중간중간 아들을 이끌며 내 일을 하던 이전의 삶과는 또 다르다. 남편도 어제 '우리 이렇게 둘이서 사는구나'라며 조금은 서운한 듯했다. 남편은, 겉으로는 속이 시원하다고 하면서 조금은 서운한 듯 보였다.
어제 하루는 남편과 둘이서 시간을 보내며 사우나도 다녀오고 영도에 가서 여기저기 구경하며 밥을 먹고 집으로 왔다. 난 어제 하루는 손가락 하나 꼼짝하기 싫어 끼니를 외식으로 때우고 아들의 짐을 싼 흔적을 고스란히 그대로 두어 집안은 엉망이었다. 정말 엉망진창인 집을 그대로 두고 누워 뒤척거리다가 밤 12시를 넘기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은 남편 출근 시간에 일어나 주스를 만들고 보통 때 같으면 일어나 이런저런 일을 했겠지만 텀블러 하나를 남편에게 건네고 다시 잠자리에 들어 눈이 떠질 때까지 자리라 마음먹고 다시 자고 일어나니 10시 반. 커피를 내리고 노트북을 켜고 못했던 이메일 답장과 카톡 답장을 하고 다이어리를 펼쳐 앞으로 할 일들을 좀 메모하고 번역일에 대해 고민을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만약 내가 직장인이었다면 덜 힘들었을까? 남편도 어제는 일이 없냐며 일을 해라고 했다. 3월까지였던 일이 매우 앞당겨져 지난 주중에 끝이 나서 난 현재는 일이 없다. 그래서 더 이러나 싶기도 하고. 무튼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아들은 이제 아들의 인생을 살 것이고, 나 또한 이제 오롯이 나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동안 접어두었던 고민거리를 이제 하나씩 꺼내어 행동방향을 정하고 실천해야 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성장한 하루를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아들만큼 엄마도 잘 지내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야지.
그래, 독립은 설레면서도 걱정도 한 보따리다. 그건 당연하다.
대성통곡하며 한 독립, 이제는 박장대소하며 내 인생을 살자!
(많은 글을 블로그에서 가져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