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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이 Feb 15. 2023

정기 기부 vs. 비정기 기부

기부 방식도 변하는 프리랜서

직장인이었던 나는 매달 정기적으로 한 단체에 기부를 했다. 그곳은 나를 시에라리온에 사는 한 아이와 연결시켜 주었다. 바쁜 회사 생활에 틈틈이 전해오는 그 아이의 성장과정을 지켜볼 뿐 살가운 편지 한 통도 쓰지 못했고 깜짝 방문을 하는 그런 이벤트는 꿈도 꾸지 못했다. 다만, 아들과 한 살 차이가 나는 그 아이를 성년까지는 책임을 지고 싶어 언 10년을 하게 됐다. 다행인지 다행이라 할 수도 없을지 모르지만 나의 퇴사 시기 무렵에 아이가 성년이 되고 후원은 끝이 났다. 


그 이후 내 삶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내가 자처한 변화임에도 그 변화에 안착하기 위해 바빠 후원이든 기부든 금액을 떠나 그럴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내가 믿지 않는 말들 중 '돈이 없어서 남을 돕지 못했다'는 말이 있다. 시간이 없어서 뭘 못했다는 말처럼 허무맹랑하게 들린다. 누군가를 돕는 건 굳이 돈이 없어도 가능하고, 또한 돈이 적더라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위에서 돈이 없어 저보다 못한 사람들을 돕지 못한다는 사람을 볼 때, 실상 그들의 형편이 나아져도 단 한 번도 돕는 걸 보지 못했다. 돈이 없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본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은, 강제는 아니지만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연예인은 그렇게 엄청난 돈을 벌고도 기부 한번 한 적이 없는 걸 보고 내가 좋지 않게 얘기했더니, 아들 녀석은 기부는 본인의 선택인데 그렇게 비난조로 얘기해선 안된다고 했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나는 흑백논리를 지양하기에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기부하는 사람들이 안 하는 사람들보단 더 맘이 간다.


이번 튀르키예 지진 사태는 '참사'라는 단어로는 너무나도 부족한 대참사였다. 하루하루 시간이 갈수록 엄청나게 늘어만 가는 사망자 수와 피해자 수에 맘이 편치 않았다. 작은 돈이지만 어떤 단체보다는 좀 더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튀르키예 대사관 계좌번호를 알아냈다. 어느 단체를 거치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에 아들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고등학생인 아들 녀석은 또 뭔가 나에게 맞대꾸를 할 줄 알았는데 흔쾌히 좋다고 했다. 아무래도 같이 TV를 보면서 느낀 바가 있었나 보다며, 속으로는 뿌듯해했다. 그렇게 아들이 내놓은 돈과 나의 돈을 합쳐 약소하지만 입금을 시켰다. 입금자는 아들 이름으로.


이제 프리랜서 생활이 반년을 조금 넘겼지만 난 그럭저럭 잘 버티고 있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어떻게 남을 도울지 연말에 잠시 생각을 했었다. 연말에 뭔가 의미 있는 기부를 하고 싶었지만 12월은 정말 넘쳐나는 번역과 연말 행사들, 워크숍 등 미친 스케줄을 소화하고 돌아보니 새해가 밝아 있었다. 그리고, 1월 초 바로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다. 지금이라도 이번 기부를 시작으로 비정기적 기부든 후원이든 뭐든 해 봐야겠다. 돈벌이에만 치중에 그동안 미뤄뒀던 번역 봉사도 다시금 시작하고!


프리랜서라고 정기적으로 기부를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월급처럼 꼬박꼬박 일정하게 들어오는 돈이 아니기에 어떤 달은 용돈 수준이고, 어떤 달은 풍족하다. 그리고, 뭔가 매이는 게 싫다(그래서 퇴사를 했나?). 기부도 그때그때에 따라서, 하지만 절대 잊어버리지 말고 꾸준히 해 나갈 것이다.


기부도 내가 결정한 것이지만 회사원일 때의 정기 기부와 프리랜서로서의 비정기 기부로 바뀐 일상이 조금은 새롭게 느껴진다. 하나의 큰 변화가 대소사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구나. 그나마 이렇게 비정기적이지만 기부할 수 있는 돈의 여유와 마음의 여유가 생겨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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