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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끼 Jul 02. 2020

곰장어는 처음이라서

나는 늦깎이 신입사원이었다. 이런저런 공부를 하다가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취업을 하게 되었으니, 나이는 먹었으되 사회생활 경험이 없어 어리바리했다.


업무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던 6개월 차에 부장님과 차장님, 같은 사무실에 있던 동기와 함께 부산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공사 현장 방문 때문이었는데 난생처음 가는 장거리 출장에 신입사원의 기합이 바짝 들었던 때라 잔뜩 긴장을 하고 기차에 올랐다.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이런저런 일정을 조율한 뒤 숙소로 이동하기 전, 부장님은 부산에 잘 아는 집이 있다며 저녁 식사를 거기서 하자고 했다. 1박 2일 출장이라 저녁 회식은 예견된 일이었는데 나름 부산이라, 메뉴가 무얼까 기대가 됐다.


한참 택시를 타고 달려간 곳은 곰장어집이었다. 그때 나는 곰장어와 민물장어, 바닷장어도 구별하지 못했다. 장어는 민물장어 정도를 가족들과 먹어본 정도의, 사회 초년생 입맛이었다. (지금은 단연코 아재 입맛이지만, 그때만 해도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 많았다.) 여담이지만 풍천장어류의 민물에 사는 장어는 뱀장어이고 회로 먹는 바다에 사는 장어는 붕장어(아나고), 갯장어(하모)가 있다.  찾아보니 곰장어도 정식 명칭은 먹장어였다. 



먹장어는 부산에서는 꼼지락거리는 움직임으로 인해 '꼼장어'라고도 부르지만 표준어 표기는 '곰장어'이며 학술적으로 통용되는 정식 명칭은 '먹장어'이다. 먹장어라는 명칭은 바다 밑에 살다 보니 눈이 멀었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지역에 따라 '묵장어', '꾀장어'라고 불리기도 한다.
먹장어의 제철은 여름이나, 보통 계절을 가리지 않고 즐겨 먹는다. 단백질과 지방, 비타민 A가 특히 풍부하여 영양가가 높은 식품으로 인기가 많다. 양념을 하거나, 양념없이 그냥 구워먹기도 하며 볶아서 먹을 수도 있다. 외국에서는 기력이 부족한 환자들이 먹을 수 있도록 통조림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 두산백과


이런 장어는 먹어봤어도 곰장어는 처음이라

곰장어는 한 번도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었다. 해산물을 별로 안 좋아하는 아버지 덕에 장어도 별로 먹어본 일이 없었는데 초심자에게는 요리 비주얼부터 험난했다. 고추장에 버무려진 희여 멀건 살과 거무스름한 껍질이 영 내키지가 않았다. 식당에서는 오래된 가게에서 풍기는 냄새인지 곰장어 냄새인지 쿰쿰한 냄새로 가득했다. 쉽지 않은 회식이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피곤한 데다 부장님과 함께 하는 출장이 처음이라 잔뜩 긴장한 터었다. 술은 계속 마시는데 곰장어가 입에 맞지 않아 많이 먹지를 못했다. 빈 속에 술기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는 몸을 가누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가 휘청하면서 주저앉을 뻔했다. 아직 출장이 끝난 것이 아닌데, 머릿속에 빨간불이 켜졌다. 


그때는 술을 먹을 때도 조절해서 먹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무작정 잘 마시는 게 좋은 게 아니라 자기의 주량을 생각하면서 회식 분위기를 맞추며 적당히 먹어야 하는 것인데 소심한 신입사원은 주량도 모르고 주는 대로 꼴깍꼴깍 마셔버린 것이었다. (술은 마시되 취하지 말고, 분위기는 띄우되 오버하지 말아야 한다. 회식 가는 것만도 힘든데 너무 어려운 것 아닌가!)

     

일행들과 택시를 나눠 타고 숙소로 향하던 길, 울렁거림이 점점 더 심해졌다. 아, 이대로 가다가는 못 볼꼴을 보겠다 싶어 졌을 때 세워주세요! 하고 외쳤다. 


차장님도, 동기도 그런 나를 보고 놀란 눈치였지만 내 꼴을 보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다행히 택시를 세운 곳은 지하철역 근처였다. 구르듯 지하철 역 계단을 내려가 화장실을 찾았다. 부산의 어느 역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구원받은 듯한 기분이었던 것은 생생하다. 아아, 그렇게 무얼 먹고 마셨는지 확인을 하고 나를 기다리던 택시로 돌아갔다. 한결 편안해진 속으로 숙소에 도착해서 바로 잠들었던가, 어쨌던가. 


그렇게 그 밤을 보내고 출장을 잘 마치고 돌아왔다. 당시에는 왜 그랬냐며 밤마다 이불 킥을 해댔지만 술을 잘 못 마시는 이미지는 추후 회사 생활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회식자리에서 술 마시지 말라는 핀잔을 듣기도 하고(?) 스스로도 술을 잘못 마신다며 사양하기도 했다. 사실 술을 먹어도 얼굴빛이 잘 변하지 않는 타입이라 술을 잘 못한다고 하면 얼굴색도 하나도 안 변하는데, 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다. 그러면 억울하기도 했는데 그날 밤의 나를 본 동기가 증인이 되어 주었다. 


신입사원으로서 술자리가 힘들다면 술을 먹고 한번 실수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전략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치명적이지 않은 실수라는 전제하에 하는 이야기다. 술을 먹고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는다거나, 화장실에서 토하는 정도라면 회사 생활에 치명적이지는 않고 주변에서 '아, 저 친구가 술을 못하는구나.' 할 것이다.  


아, 그 후로 곰장어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한번 먹고 탈이 났던 음식은 영영 블랙리스트에 올라버리고 만다. 나의 날카로운 곰장어의 추억, 그때 그 사람들(이젠 전 직장 동료들이 되어버렸지만)은 부디 잊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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