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ttleJune Feb 02. 2021

아침 점심 저녁은 반드시 다른 메뉴로

아침엔 클래식, 점심은 알엔비, 저녁은 재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음악이야기를 자제하는 편입니다.


‘난 음악 하는 사람입니다’라는 것을 알리는 순간 답하기 어려운 질문공세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호기심의 눈빛을 보내는 사람이나 긍정의 하이톤을 발산해 내는 사람들에게서 오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면 음으로 들려?”

“방금 울린 클락션 소리는 무슨 음이야?”

“음악 하는 친구들 만나면 음악으로 놀아?”

“음악 하는 사람들은 그냥 듣기만 해도 코드 진행을 알 수 있는 거야? “ 


매번 당황스럽지만 그다지 부담스러운 질문은 아닙니다. 농담을 주고받을만한 사이일 때는 종종 장난을 치기도 합니다.


“방금 네가 한 질문의 음을 모으면 all of me라는 음악하고 같아!”

“저 자동차의 클락션 소리는 D였는데 440 헤르츠 기준은 아니고 430 헤르츠 정도 되겠다.”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은 탄성을 자아내며 핸드폰을 들고 곡 제목을 검색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순도 100%의 장난입니다. “장난이야. 밖에 클락션 소리는 듣지도 못했어~”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지나가는 자동차의 클락션이 선명하게 들립니다. 무슨 음 일까 잠시 생각해봅니다. 찰나에 지나가는 자동차의 클락션 소리가 E에서 D로 급격하게 떨어지며 멀어집니다. 늦은 시간 집에 도착하자마자 티비를 켭니다.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 잠시 나오는 광고음악이 알고 있는 음악과 오버랩되며 귀를 자극합니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 웬만한 소리는 집중해서 듣는다면 근사치에 도달하는 건 어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무기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절대음감도 아니고 상대음감임에도 시간이 지나니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대학에서 만나 현재까지 만남을 이어오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면 연주하거나 장난스레 음악을 만들며 시간을 보냅니다. 서로 만든 음악을 표절이라며 기존에 발매되어있는 음악의 멜로디를 겹쳐 부르기도 하고 즉흥 잼 세션, 코믹한 아카펠라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것들을 합니다.


좋아서 음악을 시작한 만큼 이 순간들이 즐겁지만 때로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작곡을 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는데 유독 집중이 되지 않는 날이었습니다. 바람도 쐴 겸 근처 카페에 들러 커피 한잔을 주문했습니다. 적당히 잔잔한 노래, 햇빛 가득한 창밖의 나무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다 만들고 있던 노래에 꼭 맞는 멜로디가 떠올랐습니다. 황급히 커피를 받아 들고 작업실로 돌아갔습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곡의 스케치가 끝납니다. 뿌듯해하며 남은 커피를 들이켜고 만든 노래를 들어보며 식사를 준비합니다. 열심히 만들어놓은 음악에서 묘한 이질감이 느껴집니다. ’아, 망했다’ 잠시 카페에 나갔다 온 것이 문제였습니다. 카페에서 들려오던 딘의 인스타그램과 닮아있습니다. 아니, 이 정도면 표절입니다. 늦은 식사를 뒤로한 채 노래의 멜로디 부분을 모두 삭제합니다.

이외에도 잠시 쉬기 위해 틀어놓은 노래의 코드 진행과 편곡 기법들이 귀에 그대로 전해지며 휴식을 방해하거나 연주자의 아이디어나 기량에 감탄해 잠을 쫓아버리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운전 중에는 강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연주곡은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연주와 함께 감정이 고조되어 흥분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몇 번이나 경험한 터라 플레이리스트 이름을 ‘매운맛’으로 저장해 두었습니다.


원하지 않는 순간의 소리는 소음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느낀 후 나 자신과 약속했습니다.

‘음악도 3 끼니로 챙겨 먹을 것’, ‘아침 점심 저녁은 반드시 다른 메뉴로!’

시간대에 맞추어 수많은 음악을 들어보고 나서야 루틴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아침엔 클래식, 점심은 알엔비, 저녁은 재즈’

아침엔 반쯤 뜬 눈으로 드뷔시의 clair de lune을 재생합니다. 이왕 일어난 김에 거실로 나가 커피머신에 캡슐 하나를 넣고 기다립니다. 몇 발자국 떼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덧 잔잔함과는 거리가 멀어져 고음에서 현란한 연주를 펼치고 있습니다. 따뜻한 커피를 들고 소파에 앉으니 어느새 연주는 단조로 바뀌어 있습니다. 창밖의 맑은 하늘을 보니 도로가 막힐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점심 약속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길에 톰 미쉬의 south of the river를 재생합니다. 얼마 전 구매한 콩나물을 닮은 이어폰이 꽤나 쓸만합니다. 차에 도착해 가방을 넣어놓고 몸을 기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검음과 드럼의 비트를 맞춰봅니다. 하프타임으로 걷는 사람들, 더블타임으로 걷는 사람들 나와 같은 음악을 듣고 있나 싶을 정도로 음악과 맞아떨어지는 속도로 걷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니 더 늦기 전에 움직여야겠습니다.


조금이라도 편안한 몸상태로 잠에 들고 싶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왔습니다. 바로 침대에 누우려니 젖은 머리가 신경 쓰입니다. 드라이기를 떠올려봅니다. 구석진 곳에 둔 것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런 소음을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지 않습니다. 


마른 수건 한 장을 새로 꺼내와 음악을 들으며 머리를 말리기로 합니다. 커트 로젠윙클의 'homage a'mitch'를 재생합니다. 늦은 밤에 어울리는 가벼운 긴장감입니다. 리듬이 이완과 수축을 반복하며 하루의 마무리를 유연하게 합니다. 묵직한 저음으로 베이스가 솔로를 시작합니다. 


아침에 도로에서 본 콘트라베이스 연주자가 떠오릅니다. 커다란 콘트라베이스를 소중한 듯 두 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을 보니 대학생활이 떠오릅니다.

뒤이어 피아노 솔로가 나옵니다. 카페에 들어서던 순간 높은 힐은 신은 여성이 급하게 나와 계단을 내려가던 힐 소리와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슨 일이었는지는 몰라도 일이 잘 풀렸기를 바라봅니다. 

메인 테마가 나오는 것을 보니 음악이 곧 끝날 모양입니다. 머리도 어느새 다 말랐습니다. 

3 끼니의 음악을 잘 챙겨 들었습니다.

몸이 원하는 무드를 유지할 수 있었고 원하지 않던 소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루를 되돌아볼 시간도 생겼습니다. 


오늘은 푹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Claude Debussy - Claire De Lune / https://youtu.be/O2deXwf4drE

- Tom Misch - South of the River / https://youtu.be/GTrMLwMLzH0

- Kurt Rosenwinkel - Homage a'mitch / https://youtu.be/TT9GIpn_uUE

작가의 이전글 '약은 약사에게, 음악은 음악가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