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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Sep 12. 2022

인천 송도를 떠났습니다.

:  어디를 가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 것 같습니다.

 광주광역시 서구 농성동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입학 전 대전에서 3년 살던 것을 제외하고는 대학 시절까지 쭉 광주에 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서는 아주 잠깐(세 번의 계절이 지나는 동안) 서울 구경을 하다가, 이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서귀포, 군산, 정읍, 광주, 목포, 고창, 진천에서 한 두 해를 살거나 혹은 며칠 간격으로 광주에서 출퇴근했다. 정년까지 직장을 계속 다녔더라면 방방곡곡 더 많은 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결혼 후에는 서울에서 2년, 인천에서 3년 8개월을 살았다. 정확하게 인천 구월동에서 1년, 송도에서 2년 8개월 7일을 살았다. 그리고 얼마 전 인천 송도를 떠났다.


 어쩌다 보니 여러 지역에서 살아볼 기회가 있었다. 다양한 곳을 돌아다니며 산다는 건, 좋은 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점도 있다. 다만, 사는 곳을 옮겨야 할 때마다 내겐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 가야 해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 마음을 비우고 받아들이는 것이 여러모로 이로울 것 같았다. 하여, 언제부턴가 이왕이면 좋은 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10개의 시를 돌아다녀보니 어느 지역이나 어김없이 장단점이 있다. 대부분은 그곳에서 직접 살아봐야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다. 반짝이는 보물도 있고,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그중 내가 발견한 보물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거주지'의 잣대로 한 지역을 바라볼 때 '장점'이라 함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나는 주로 애정하는 장소를 찾는다. 위로를 받거나 쉼을 얻는 장소가 있는가? 그렇다면 망설임 없이 그곳에 마음을 빼앗긴다.


 제주도 올레길 7번 코스, 외돌개에서 돔베낭골로 향하는 길은 첫 발령지였던 서귀포에서 543일을 사는 동안 찾은 길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길. 제주에 있는 모든 것이 낯설거나, 제주에 없는 모든 것이 그리울 때 찾아갔던 곳. 그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감탄하고 위안받던 기억이 있다.(지난여름, 정말 오랜만에 그 길을 찾아갔지만 한창 개발 중인 공사현장에 가로막혀 있었다.)

 군산시 성산면에 위치한 오성산에서 내려다보는 노을 진 하늘은 경이롭다. 해가 지는 저녁 금강하구둑의 실루엣 뒤로 노을이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아름다움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지금껏 살면서 본 노을 중, 아름답기로 세 손가락 안에 꼽는다. 군산의 보물을 또 하나 꼽자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이마트'를 얘기하고 싶다. 20대 후반의 헛헛한 마음을 이마트 쇼핑을 하며 채우던 시절이 있었다. 빨래건조대, 빨래집게, 쓰레기통, 주전자, 도마, 칼 등을 샀다. 낯선 도시에 자리 잡은 내 작은 공간을 채워줄 생필품들이 희한하게 위안이 되었다.

 목포의 평화광장, 진천 광혜원의 만승 초등학교, 서울에서 내려다본 한밤중의 중랑천... 이 모두가 내가 애정하는 장소들이다. 위로받고, 쉼을 얻었던 곳. 누군가에게도 그런 곳이며, 또 그러할 곳. 

 그리고, 인천 송도에는 미추홀공원이 있다.

 

 '송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센트럴파크를 먼저 떠올리겠지만(필자도 인천에 살기 전에는 송도 센트럴파크에 일부러 놀러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살아본 입장에서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센트럴파크보다 더 한적하고 아늑하고 아름다운 공원이 바로 미추홀 공원이다. 두 블록 옆에 '해돋이 공원'도 참 잘 가꾸어져 있는데, 집에서 더 가깝다는 이유로 미추홀 공원을 단연 1등으로 꼽았다.

미추홀공원 호숫가 벤치

 지난 2년 8개월 동안 기분이 좋거나 나쁘거나, 마음이 설레거나 답답하거나, 날씨가 따뜻하거나 쌀쌀하거나 한결같이 내 온전한 쉼터가 되어준 곳은 미추홀 공원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처음으로 귀를 열었다. 공원 호수에 사는 논병아리와 쇠물닭이 알을 낳고, 품고, 새끼가 자라는 모습을 엿보았다. 여름철새인 '개개비'와 '후투티'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향긋한 자귀나무 꽃을 좋아하게 되었다. 겨울에는 꽁꽁 언 호수 위를 걸어가는 왜가리를 보았다. 봄이면 나무 그늘에 간이 의자를 펴고 앉아 행복을 느꼈다. 저질체력인 나를 종종 달리게 만들었다. 나는 정말이지... 미추홀 공원을 사랑한다. 


 교통체증 구간이 일주문(사찰의 가장 바깥에서 경계를 표시하는 문, 이 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사찰을 드나들 수 없다)처럼 버티고 있는 인천과 경기도를 벗어나 두 시간 반을 달려왔다. 그렇게 도착한 지금 이곳은, 저녁이면 창 밖에서 차 소리 대신 풀벌레 소리들이 들려온다. 아침마다 일정한 패턴으로 대화를 하는 까마귀들이 사는 동네이다. 주차장 천정 한편에 커다란 사마귀가 붙어사는 곳이다. 아직 동네를 다 둘러보진 못했다. 지도를 통해 가보고 싶은 곳들을 찜해두었다.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낯선 동네라는 이유로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은,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보석 같은 장소들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으로 토닥여진다.


이사를 온 첫날 동네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사 오던 길에 올려다본 하늘, 달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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