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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Aug 30. 2022

종백이를 아십니까

: 종백이 같다, 종백이스럽다는 의미

 글을 시작하기 전, 먼저 세상의 모든 종백이에게 사죄를 드립니다. 이 글에서 본의 아니게 종백이의 이름을 모욕(?)하는 점, 글쓴이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꾸벅.



 "너, 꼭 종백이 같다!"

 혹은

 "나, 종백이 같지?"

 요즘 남편과 이야기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


 종백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옆집에 살던, 나보다 몇 살 아래의 남자아이였다. 종백이네는 우리 집과 마찬가지로 식구가 네 명이었는데, 엄마와 아빠 그리고 여동생이 한 명 있었다. 또래 아이들을 키우던 종백이 엄마와 나의 엄마는 서로 친해졌고, 종종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어쩌다 보니 우리 집에 모여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종백이 엄마와 종백이, 종백이의 여동생, 그리고 엄마와 나, 이렇게 다섯 명이 텔레비전 앞에 둘러앉았다. 드라마가 시작되었고, 막장 드라마의 줄거리는 절정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TV 속으로 곧 빨려 들어갈 기세였다. 주인공이 20년 동안 찾아 헤매던 딸과 곧 마주치려는 순간이다. 주인공이 카페 문을 나서는 순간, 딸이 들어간다! 어.. 어.. 어! 그런데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스쳐 지나간다! 아... 어떡해.... 안타까워하는 순간!! 종백이의 목소리가 드라마 속으로 불쑥 끼어든다.

 "나 같으면 바로 알아본다!"

 응, 종백아, 알았으니까 그냥 입 다물고 드라마 봐.

 "하하하하! 어떻게 저걸 못 알아봐! 나 같으면 바로 알아볼 수 있는데!"

 응, 종백아~~ 조용히 하고 드라마 보자!

 "예전에 TV 나온 사람은 자기 딸을 바로 알아보던데!"

 종백아!!!!!!

 종백이에게 직접 이야기하진 못했다. 종백이를 향한 내 마음속 외침이었다.


 종백이는 어른들이 대화하는 도중에 자주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놓았고, 어른들이 대꾸해주지 않아도 계속해서 어른들 대화 속에 제 말을 끼워 넣었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던 내 눈에 종백이는 참 눈치가 없어 보였다. 조금 얄미운 구석이 있었다.


 30여 년 후, 나는 집에서 남편과 페이크 다큐 영화(연출된 상황극을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촬영하여 마치 실제 상황처럼 보이도록 제작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와~~ 저게 말이 돼? 저 상황에서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한다고?"

 "아니, 갑자기 왜 좀비 영화가 되는데?"

 "에이, 너무 갔네! 이야기가 산으로 갔어!"

 영화를 보는 내내 떠들어대는 내 목소리다.

 영화에 집중하느라, 혹은 나를 종백이 같다 생각해서, 남편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나는 혼자 멋쩍어서 이렇게 말한다.

 "나, 종백이 같지?"

 가끔은 남편이 눈치 없이 굴거나 얄미울 때 '너, 꼭 종백이 같다!' 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이미 종백이 이야기를 들은 바 있는 남편은 '종백이 같다'는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종백이 같다'는 말을 한 번, 두 번 사용할 때마다 그 시절의 종백이가 떠올랐다. 문득, 종백이는 왜 그랬을까 궁금해졌다. 종백이의 마음을 추측하는 일은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종백이 같은 짓을 할 때의 내 마음을 떠올려보면 될 일이었다. 어처구니없이 30여 년 전의 종백이 마음과 지금의 내 마음이 똑같을지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쩌면 종백이는... 아니, 이제 더 이상 주어는 '종백이'가 아니다. 그래, '우리'는 그저 관심이 조금 더 필요했을지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은 어린 종백이나 마흔이 넘은 나나 똑같은 모양이다. 아무도 종백이에게 대꾸를 해주지 않던 30여 년 전, 종백이는 외로웠을 것이다. 종백이는 눈치가 없는 것도, 얄미운 녀석도 아니었다. 다만, 끊임없이 누군가의 관심을 갈구했을 뿐이다. 이제야 종백이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얄미웠던 어린 종백이가 짠하게 느껴졌다.

 

 글을 시작하면서 '종백'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죄를 했다.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은, 그 시절의 종백이에게 미안하다 얘기하고 싶다. 이 글이 '어린 종백이'에게 읽힐 확률은 매우 낮겠지만..... 종백아, 얄미워했던 거 미안해. 누나도 어려서 네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했나 봐.


 종백이는 어엿한 어른으로 자라서, 잘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종백이 같다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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