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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막내작가 Jan 31. 2024

수요일엔 수영!

: 그때 그러길 참 잘했다.

 2008년 여름, 수영을 처음 배웠다.

 그러니까 16년 전, 군산에 위치한 레이더센터에서 3교대 현업근무를 하던 시절이었다. 근무를 마치고 다음 근무를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넉넉지 않았다. 차로 왕복 3시간을 달려 집에 다녀오기엔 몸이 힘들어서 대부분의 경우 관사에 있었다. 관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 그냥 있었다. 근무 대기조 같은 느낌으로. 그 무료한 시간이 싫어 생각한 끝에 군산시 대야면에 위치한 '군산국민체육센터' 수영강습을 신청했다. 겸사겸사 다이어트도 된다면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초급반 중에서도 '왕' 초급반에 열 명이 넘는 강습생이 모였다. 물속에서 호흡하는 법을 시작으로, 물에 뜨는 법, 물속에서 몸을 바로 세우는 법 등 생존에 필요한 몇 가지 기술을 배운 뒤, 본격적인 발차기(kick, 킥) 연습에 들어갔다. 킥판을 붙잡고 킥! 킥! 25미터 수영장 레일을 왔다 갔다 반복하며 킥! 킥! 열심을 냈다. 강사가 쉴 틈을 주지 않았으므로 강습생들은 쉴 수가 없었고, 뒤따라 오는 강습생에게 쫓겨 그야말로 쉴 새 없이 킥! 킥!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발차기와 함께 왼팔과 오른팔을 순서대로 돌리는 법을 배우고, 팔을 돌리면서 호흡하는 법도 연습했다. 그리고 드디어 킥판을 떼고 자유형을 했다. 맨 몸으로 물 위에 던져진 이후에는 수시로 수영장 물을 마셨다. 입으로도 마시고 코로도 마셨다. 물을 마시는 횟수가 조금씩 줄어들 즈음에 배영을 배웠다. 다음으로 평영에 입문하려는 사이 여름이 다 끝났다. 여름과 작별하며 수영강습도 때려치웠다. 평영자세(일명 개구리 자세)가 우스꽝스러운 탓도 있었고, 수영을 계속하더라도 다이어트에는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수영강사를 보면서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당시 수영강사는 30대 초반의 남자분이었는데, 물개처럼 수영을 잘했다. 몸매 역시 물개와 똑 닮아서 허리가 보이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얼떨결에 2008년 여름을 온전히 수영장에서 보냈다.

 

 2023년 여름, 오랜만에 수영을 다시 시작했다.

 20대에도 그리 좋지 않았던 체력은 나이와 함께 무섭게 무너졌다. 무더위로 저질 체력이 바닥을 드러낸 어느 날, 이런 몸을 데리고 평생 살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지! 수영, 수영을 다시 시작하자!

 곧장 강습을 신청하진 못했다. 과거 킥판을 붙잡고 수영장 레일을 뺑뺑이 돌던 시절이 생각나 두려웠다. 자유수영으로 체력을 천천히 올려보자! 다행히 몸은 영법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평소 운동을 하지 않던 탓에 첫날에는 25m 레일을 한 번에 완주하지 못하고 중간에 멈춰 섰다. 에-라이.

 하지만 몸처럼 정직한 게 또 어디 있을까. 체력은 금세 늘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수영장을 드나드는 사이, 25m 레일 완주는 이제 껌 씹기! 자유형과 배영을 오가며 150m, 200m, 250m 점점 거리가 늘어났다. 킥! 킥! 한 발, 한 발, 한 팔, 한 팔 돌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재미에 빠졌다.

 그러는 사이 여름이 지나갔다. 여름이 끝남과 동시에 또 수영을 때려치웠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이유에서였다. 날씨가 서늘해지면서 차가운 수영장 물에 들어가기가 괴로웠기 때문이다. 


 2024년을 앞두고, 수영을 꾸준히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각오를 다지기 위해 '수요일엔 수영!'이란 슬로건도 만들었다. 왜 수요일이냐 하면, 마침 집 근처 수영장이 매주 수요일마다 하루종일 자유수영이 가능하다. 수요일의 '수'와 수영의 '수'의 라임도 딱 맞는 것이, 절대 까먹을 수 없겠다. 어쩐지 잘 실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부터 욕심내지 말고 일주일에 딱 한 번, 겨울이나 여름이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수요일엔 수영을 하기로 작심했다.


 새해 첫날부터 날씨가 추웠다. 급기야 눈이 내렸고, 작심을 한 지 삼일 째 되던 날이 하필 수요일이었다. 가기 싫다는 몸을 어르고 달래 끌고 나와 수영장에 집어넣었다. 막상 수영장에 들어가고 나니, 킥! 킥! 한 발, 한 발, 한 팔, 한 팔, 앞으로 나아가는 재미에 나름 괜찮았다. 첫 수요일을 성공했다. 뒤이어 수요일, 또 수요일, 어느새 다섯 번의 수요일을 무사히 보냈다.


 그러는 동안 몇 가지 '일'이 있긴 했다.

 우선, 자유형 자세가 이상하다. 으잉? 원래 자세가 이모양이었던가? 호흡과 함께 오른팔이 물 밖을 돌아오는 동안, 왼팔은 얌전히 앞으로 뻗어 있어야 하는데, 어째서인지 자꾸 아래로 내려간다. 오른팔 휘젓기가 다 끝나기도 전에 왼팔이 물잡기를 시작해 버리는 통에,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꼴이다. 일명 '풍차 돌리기'다.

연속동작으로 보는 '팔 젓기'의 바른 자세(위), 잘못된 현실(아래)


 자세교정이 쉽지 않다. 어째서인지 잘못된 자세가 더 편하고, 앞으로 빨리 나가는 기분이다. 방법이 없을까 인터넷을 뒤지다가 유튜브에서 괜찮은 해결책을 찾았다. '사이드 킥'이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수면과 직각을 이루며 옆으로 누운 채 킥을 차는 방법이란다. 왼팔을 앞으로 쭉 뻗은 채 사이드 킥 연습을 하면 자세 교정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한 번 시도해 볼 참이다.


 지난주에 불의의 사고를 당한 일도 있었다. 물안경이 눈을 타격했다. 상상해 본 적 없던 일이라 신선했다고 해야 하나, 이것 참. 안경 안에 물이 들어가, 다시 쓰려고 물안경을 앞으로 쭉 늘리는 순간! 젖은 손이 미끄러워 물안경을 놓쳤다. 늘려진 고무줄 탄성만큼 힘차게 물안경이 눈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필 눈을 멀뚱히 뜨고 있었다. 순식간에 날아온 물안경이 그대로 눈동자를 때렸다. 탁! 아뿔싸! 심상치 않게 맞았다. 결국 안과까지 다녀와야 했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더라.


 다친 눈 때문에 며칠 고생하긴 했지만 다가오는 수요일에 나는 또 수영을 갈 테다.

 새해 다짐 때문만은 아니다. 물에 몸을 띄우고 있으면 다른 생각들은 사라지고, 단 한 가지 생각만 한다.

 킥! 킥! 한 발, 한 발, 한 팔, 한 팔. 오롯이 내 힘으로 나아가기. 그것에 온전히 집중하는 동안 설명하기 힘든 뿌듯함을 느낀다. 내 두 다리와 두 팔이 대견스러워진다. 결코 가볍지 않은 내 몸뚱이가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떠서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기특하기도 하다.

 

 수영을 다시 시작하고서, 나는 요즘 2008년 여름을 자주 돌아본다.

 '그때 수영 배워놓길 참 잘했다.' 생각한다.


 1년 뒤 오늘을 상상한다. 내 체력은 지금보다 훨씬 좋아져 있을 테고, 나는 이렇게 생각할 거다.

 '수요일마다 꾸준히 수영하길 참 잘했다.'

 (이왕이면 살도 빠져 있다면 좋겠다. 제----발.)


 킥! 킥! 한 발, 한 발 내딛는 나의 오늘도, 한 팔, 한 팔 휘젓는 당신의 매일도, 우리의 모든 순간들이 차곡차곡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들이기를 바란다. 조급해하지 말고, 킥! 킥! 앞으로,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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