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때 모 여행사 공모전에 썼던 글이다.
웃기게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가벼운 글.
그들이 뭉쳤다.
7월의 대학원생에게 허락된 방학은 없다. 연구과제에, 학위과정에, 잡다한 연구실 업무에, 지쳐 쓰러지지 않는 것이 신기한 그들에게, 삼복더위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낯익은 그 도시, 시외버스 터미널에 나타난 그 실루엣은 흡사 2000년 하고도 17년 전, 중동의 세 동방박사가 바라본 샛별과 같았고 그가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비린내가 진동하던 그 땅은 구약성서의 베들레헴이 되었다. 아지랑이는 모세의 기적처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P대학까지 갈라졌으며 3인의 대학원생은 그렇게 젊은 예수의 강림을 목격하였다. 다만 그의 손에는 십자가가 아닌 기타와 똘똘이 앰프가 들려있었다.
대학원생 1 (29세, 실험실의 몽키스패너, 보컬)
아홉 수의 그는 3년간의 연구과제를 최근 마무리 짓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연구실에서의 서열은 중상위. 적당히 선배들의 눈만 피하면 여유로울 법도 하였으나, 교수님은 논문을 쓰라고 닦달을 하였다. 학교에서 받는 쥐꼬리만큼의 생활비를 생각하며 마지못해 실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언제 이 고난이 끝날까 한탄하던 그때, 너트를 조이기 위해 몽키를 쥐고 있던 손이 갑자기 부들부들 떨려왔다. 작년 9월 진도 4.5 지진에도 당황하지 않았던 그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온 우주가 진동하고 있음을 느꼈다. 환한 빛과 함께 연구실 문이 활짝 열리고, 그가, 그의 기타가, 그의 똘똘이 앰프가 들어왔다. 대학원생 1은 털썩 주저앉아 무릎을 꿇었으며, 눈물을 흘리는 그에게 그분은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머리에 씌워주셨다.
대학원생 2 (28세, 대기업산학장학생, 기타리스트)
잔잔하게 일렁이는 파도 위에 누운 그에게 뜨거운 7월의 햇살이 쏟아졌다. 인생은 참 살만한 것이 아니던가. 대기업의 자본과 그의 진로는 등가교환 되었으며, 그로 인한 물질적 풍요는 그에게 원룸과, 자가용과 서핑장비를 선사하였다. 몇 년 전까지 밴드 동아리에서 한 몸 불태우던 록 스피릿은 화폐의 달콤함에 희석되었으며 그나마 가지고 있던 낡은 기타는 헐값에 팔아버렸다. 대학원 생활은 잔잔한 바다의 수면과 같았고, 그는 서핑보드 위에 누워 찬란한 햇살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다. 해가 구름에 가렸나? 의심하기도 전에, 기다란 곱슬머리 한 올이 그의 미간에 떨어졌다. 바다에는 서핑보드 위에 누운 대학원생 2와 맨발로 수면 위를 걸어온 그 분과, 그분의 기타와, 그분의 똘똘이 앰프만이 있었다.
대학원생 3 (25세, 지도교수 없음, 개미 투자자)
단타 전문가인 그는 엊그제 40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 휘파람 소리가 자신이 생각해도 듣기 좋게 났다. 학위과정에 대한 고민은 이 순간만큼은 잊을 수 있었으며, 지난달 잃었던 30만 원도 깔끔하게 회복되었다. 여행이나 갈까, 그는 생각했다. 영화대사 하나가 떠올랐다. 니가 가라, 하와이. 장동건의 카리스마를 떠올리며, 한동안 그 대사를 자신에게 속삭였다. 그 영화는 그의 인생영화였고, 하와이는 꼭 가야 할 인생의 장소였다. 하와이를 가려면 자신이 가진 돈으로 단타를 얼마나 쳐야 하는지 머릿속을 굴리고 있을 그때, 연구실의 전등이 깜빡거리고, 창 밖엔 돌개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주가가 전에 본 적 없는 새빨간 색으로 미칠 듯한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먼 곳에서 들려온 천상의 기타 소리는 주식의 부질없음을 깨닫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몽유병 환자 마냥 그 소리를 따라나섰다.
그분 (23세, 기계공학과, 군필, 전지전능)
*요한복음 14:1 근심하지 말고 나를 믿으라*
그는 고요히 외쳤다.
-그대들은 나를 믿는가.
대학원생 무리들은 입을 모아 믿음을 맹세했다.
-그렇다면 내 기타 연주에 맞춰 노래를 하고, 기타 솔로를 하고, 코러스를 넣도록 하여라.
하니, 1.5와트짜리 똘똘이 앰프에서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과연, 그의 손놀림은 신기에 가까웠다. 잭와일드도 울고 갈 두터운 피크, 베이스를 연상시키는 무시무시한 스트링 게이지의 기타를 연주하는 그의 표정은 놀랍게도 한없이 평온하였다. 지미 헨드릭스의 재림. 그것이 무리들의 생각이었다.
-저희는 감히 연주에 끼어들 수가 없습니다.
-어찌 그러느냐
-노래하기엔 성량이 한없이 미미하고, 연주할 기타도, 기타 피크는 더더욱 없으며, 이런 웅장한 음악에는 적어도 수십 명의 하모니가 필요할 듯하오니, 어찌 함께 연주할 수 있겠나이까.
과연 그러하다, 하며 그가 그의 기타를 한번 탁 치니 둘로 나뉘었고, 기타 피크를 공중으로 던지니 수많은 피크가 종류 별로, 사이즈 별로 후두둑 떨어졌다.
-너희들의 목을 어루만지겠노라
하여 쓰다듬으시니 한 명의 목에선 대포소리가 나고, 다른 한 명의 목에선 동시에 다섯 음의 화음이 성가대처럼 울려 퍼졌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현실에서 본 대학원생들은 머릿속이 새하얘지며, 여태까지 쌓아온 그들의 모든 과학적 지식들이 부정되는 것을 느꼈다.
-이만하면 되겠느냐
하니, 무리들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조아렸다.
...
한바탕 연주가 끝나고 나서 무아지경에 빠져있는 무리에게 그분께서는 말씀하셨다.
-이제 좀 더 넓은 세상으로 여행을 떠날 때가 된 것 같구나.
-저희들도 당신과 뜻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대들은 가고 싶은 곳이 있는가
왜 그때 대학원생3이 그 말을 외쳤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아마 신의 뜻이리라 짐작을 할 뿐.
-하.. 하와이..!
뜬금없는 그 말에, 대학원생1은 그의 모자란 생활비를 떠올렸다. 몽키로 향하는 그의 손을 저지하며 그분은 말씀하셨다.
-하와이는 미국땅이 아니더냐. 우리는 동양인일진대 가까운 데서부터 뜻을 전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때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대학원생2가 홀연히 일어나 저 멀리 전봇대에 매달려 펄럭거리는 플래카드를 가리켰고, 모두의 눈은 동시에 빛났다.
“동양의 하와이, 싼야로 오세요!”
그렇게, 그들은 뭉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