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까지 가기 전 만나게 된 인연
2016년 여름방학 때 영국 여행을 할 때였다. 나에게는 두 번째 긴 여행이었는데,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영국에만 있기에는 아쉬울 것이란 생각에 주변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고자 했다. 길면 3박 4일 정도였고 짧으면 1박 2일로 유럽의 주변 나라들을 다녀왔다.
네덜란드 여행을 계획했던 것은 빈센트 반 고흐 때문이 아니라 취업하고 싶었던 반도체 장비 회사의 본사가 있기 때문이었다.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이었으니 끝나면 수많은 자기소개서 작성과, 인적성 공부, 면접 준비까지 있을 텐데 가고 싶은 회사의 본사를 가볼 기회가 이번이 아니면 없다고 느꼈다. 게다가 한국도 아니고 외국이니. 그곳은 박지성 선수가 한때 축구로 몸 담았던 팀이 있는 네덜란드의 에인트 호번(Eidhoven)이다.
그렇게 1박 2일로 네덜란드 여행을 계획했다. 아침 일찍 영국 집에서 나와 비행기를 타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간 뒤, 반 고흐 뮤지엄과 시내 구경을 하고 숙소에서 하루 묵는 일정.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에인트 호번에 가서 회사 구경을 하고 공항으로 돌아와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가기 전 다시 한번 노트에 일정을 꾹꾹 눌러 담았다.
첫출발부터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오전 7시 50분에 영국의 게트윅(Gatwick) 공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나 기차를 타고 Clampham Junction역에 5시 25분경에 도착했다. 구글맵에서는 5시 38분에 게트윅 공항행 기차가 있다고 했지만, 실제 역내에 전광판에 있는 첫차 시간은 6시 12분이었다. 더욱이 다른 방향인 Brighton 행 기차여서 타도 무의미했다.
이렇게 1박 2일 네덜란드 여행은 끝날 수 있겠구나 하는 찰나에, 여행 온 듯한 한국인 여성 두 분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분들도 나랑 비슷한 시간대에 비행기가 있어서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불안해했다. 불안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구글맵과 실제 기차역에서 알려주는 기차 편과 시간이 달라 당황했지만, 현장을 제일 잘 아는 역무원에게 묻기로 하고 찾아다녔다. 마침 지나가는 분이 계셔서 찾아가서 하소연을 시작했다. "게트윅 공항으로 가는 기차가 5시 38분에 있는 것으로 봤는데 여기 첫차는 6시 12분이다. 게다가 다른 곳으로 가는 기차다. 다른 방법이 없는가" 쯤으로 얘기했었던 것 같다. 물론 예의 있는 말투와 함께 영어로 얘기했다. 유창하진 않았으나 어떻게든 문맥에 맞게 적절하게 단어와 시간을 또박또박 말했다. 내용 전달이 그래도 잘 되었는지 답변이 아주 간결하고 명쾌했다.
" 오전 6시 12분 첫 기차를 타고 East Croydon역에서 갈아타면 제시간에 도착할 거야"
그 말을 들은 나는 안심했고 곧바로 두 분에게 전달했다. Express로 가는 법까지 알아봤었다고 하는데 그 방법을 택했다면 약 36000원이나 들었을 것이라며 감사하다고 얘기해줬다. 돈도 돈이지만 공항에 빨리 도착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것 조차 두렵다. 또 안 가거나 취소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에.
다행히 역무원 아저씨께서 알려준 방법으로 기차를 타고 게트윅 공항을 향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어떻게 드로잉 얘기까지 나왔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해서도 얘기하게 되었는데 더 나아가 책을 내는 것도 좋을 것이라 해주었다. 지인이 독립 출판으로 책을 낸 적이 있다고 얘기해주며 나의 드로잉을 응원해줬다.
그분들은 영국을 아예 떠나는 것이었고 공항에 다 도착할 때쯤 답례로 쿠키와 오이스터 카드를 건네주었다. 예상치 못한 날, 그 시간에 만나게 되어 새로운 여행 추억을 만들게 되었고 간직하게 되었다. 그분들의 연락처까지 교환하지 않았기에 연락할 방도는 없으나 잘 지내시리라 생각한다.
어쩌다 보니 서론이 길어져 정작 네덜란드에서의 이야기를 다루지 못하게 되었다. 다음 2편에서 마저 이어 나가야겠다. 아쉬운 만큼 내가 찍은 사진으로 우선 대체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