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용희 Jan 09. 2021

제주 카페 활용법

제주도에서 영국 찾기

 여행하면서 카페에 가는 목적은 다양하다.


  목이 말라서 커피나 다른 음료를 마시기 위해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 여행 가서 카페에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떠한 목적'이 있음을 내포한다. 여행지에서만 맛볼 수 있고 맛있어서 유명한 곳이거나 카페 내부 외부 모두 한 폭의 그림처럼 잘 꾸며져 있어서 가보고 싶다거나 카페에 파는 디저트가 맛있는 경우 등 다양한 사유로 여행 일정에 추가된다. 그리고 많이 걸어서 쉬어야 할 경우도 빼놓을 수 없는 단편적인 이유다.


 처음 제주 여행을 계획하면서 예쁘게 꾸며진 카페들을 그려가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엄밀히 얘기하자면 카페에서 나의 모습을 담기보다는 여행지에 있는 멋진 카페를 그려서 실제 모습과 나의 그림을 함께 사진으로 담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그림을 그리고 여행을 추억하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정된 시간만이 나에게 허락되었다는 현실과 제주도의 아름다운 다른 풍경도 담고 싶은 나의 욕심 때문에 카페만 다니며 그릴 순 없었다. 결국 여행의 주가 카페 모습을 그리는 것은 아니었기에 몇 곳만 가서 펜으로 담아보기로 했다. 


 제주도로 여행 가기 전에 제주도의 맛집이나 카페 등 유명하고 인기 있는 곳을 많이 아는 친구를 만났다. 지도를 펴서 카페뿐만 아니라 맛집, 전시회, 분위기 좋은 숙소 등 소위 말하는 핫플레이스를 전수해줬다. 보통 여행 가기 전에 외국의 경우는 여행 가이드북을 사는데 이번에 국내지만 제주도 여행 가이드북도 샀었다. 어떻게든 여행다운 느낌을 내고 싶었나 보다. 더욱이 친구가 알려준 알짜배기 정보들 덕분에 든든했다.


카카오 맵

 

 제주도에서 다양한 카페를 방문했지만 영국풍의 카페만 그렸다.


 성산일출봉, 협재 해수욕장, 함덕 해수욕장, 비자림, 여러 오름들 등 제주도에 여행 가면 많이 방문하는 명소들이 있고 나 또한 그곳들을 찾아가서 한껏 느끼고 왔다. 그러나 카페에서 만큼은 제주도 느낌보다 이국적인 풍경을 느끼고 싶었다. 해외여행을 못 가는 상황이니 카페에서 만큼은 한국이 아닌 외국에 있고 싶었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영국'을 느낄 수 있는 카페를 방문하여 잠시나마 해외여행을 못 가는 마음을 달랬다.




 하루는 제주도에 사는 친구가 제주 시내에 영국에서 커피를 배워오신 분이 운영한다는 카페를 알려줬다. 커피가 맛있다는 말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여행 초기 친구 집에서 자고 난 다음날이었다. 친구는 오전에 다른 일정 때문에 함께할 수 없었고 혼자 가면 카페 그리는 것도 좋을 것이라 했다. 친구는 자주 먹는지 커피 쿠폰을 찍는 카드를 갖고 있었고 다른 일반적인 커피 쿠폰 표시와는 다르게 '장우산 형태'의 스탬프였다. '와 영국스럽구나.' 커피 쿠폰 스탬프에서부터 카페 사장님의 섬세한 센스가 돋보였다. 게다가 여섯 잔을 마시면 한잔을 준다. 열 잔에 한잔도 아니고!


 카페의 외관 모습은 흡사 영국 런던의 몬모스 커피와 같은 느낌이었고 색깔은 스타벅스 특유의 초록빛에서 조금 더 짙은 느낌이었다. 카페 바깥에서 카페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뒤 들어갔다. 오전 이른 시간이 었기에 사람도 별로 없었고 한적하니 좋았다. 카페 내부도 영국과 같은 느낌이 물씬 났다. 처음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카페를 그려나갔다. 커피가 정말 맛있었는데 표현하기가 정말 어렵다. 맛있다는 말 밖에.


 

 한 시간 정도 윤곽을 잡아나가고 거의 다 그려갈 때쯤이 되니 커피는 이미 동이 났다. 살짝 허기진 탓에 달달한 커피를 마시고 싶었고 대표 메뉴인 플랫 화이트를 한잔 더 시켰다. 카페에 오래 있게 되면 두 잔은 꼭 먹어야 한다는 철칙이 있다. 따뜻한 걸 시켰다면 하트가 그려진 것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얼죽아'인 나에게는 무조건 아이스였다. 그래도 꼬숩고 은은하게 부드러운 느낌이 좋았다. 그렇게 커피맛을 느끼며 그림을 모두 완성했다.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의 첫 그림이었다.


제주도 '플랏포 커피'




 여행이 끝나가기 전에 애월 쪽에서 숙소를 구해서 머물 때였다. 제주도 핫플레이스를 전수해준 친구가 추천해주었던 '영국 찻집'에 가보기로 했다. 내가 영국 좋아하는 것을 기억해서 알려준 것에 감사했다. 여행 막바지라 크게 많이 다니지 않았고 '제주도 여행'을 브런치 매거진으로 시작하는 글을 마무리하기 위해 노트북과 그림도구들을 챙겨서 찾아갔다.


 카페 바로 앞에 주차할 곳은 없었고 근처 마을의 한편에 차를 대고 조금 걸어가야 했다. 주변에는 영락없는 제주도 시골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그 안에 영국 느낌의 건물이 있다는 게 살짝 의심스러웠다. 그렇게 걷다 보니 동화책 속의 한편이 그대로 있는 듯한 깔끔하고 나름 웅장한 건물이 보였다. 갑작스러워 생뚱맞기도 했지만 영국 느낌이 맞다. 파스텔 톤의 분홍빛 문과, 주위에 하얀색, 약한 회색의 벽 그리고 런던을 거닐다 보면 한 번쯤은 볼 수 있는 특유의 창문까지. 게다가 위 지붕은 짙은 청록색과 남색 그 사이의 어느 색으로 무게감을 더했다. 


 많은 여행객들이 여기를 방문해서 인증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곤 하는데 나는 혼자 갔기 때문에 늘 그랬듯, 그림으로 남겨야지 했다. 음료에 커피는 없었고 밀크티나 홍차 등의 차 종류만 있었다. 자리 한쪽에 자리 잡아 아이스 티와 밀크티를 차례로 두 잔 마시고 노트북을 켜고 글을 마무리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글을 올리다 보니 그날 글 발행을 서둘러하고 이어서 그림 그릴 종이를 꺼냈다.



 카페 내부는 원목 느낌의 인테리어로 아늑함과 세련됨을 더했다. 게다가 불필요한 꾸밈없이 아주 명료했다. 자리도 많지 않고 많이 띄워져 있어서 더 좋았다. 창가가 보이는 자리가 있어서 거기에 자리를 잡고 따스한 햇살을 느끼면서 글을 써나갔다. 안쪽에는 바람이 불지 않아서 햇살을 느끼다 더워져 땀이 났고 곧바로 코트를 벗었다. 창문도 살짝 열어놓고.



 카페에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차도 맛보고 아무 고민 없이 즐길 수 없어서 좋았다. 더욱이 회사에서 연락이 아예 오지 않는다는 것은 덤이다. 정말 좋다. 그 순간만큼은 잠시 한국이 아닌, 제주도가 아닌 영국의 어느 런던 카페에서 머물렀던 것 같다. 아직도 행복한 기억이 선명한 순간이다.


제주도 '영국 찻집'



 

 카페에 가는 목적은 다양하다. 


 카페에 가는 어떠한 이유라도 본인이 행복할 수 있다면 즐길 수 있다면 그로써 그만이다. 단,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 것.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지금, 잠시나마 카페를 통해서 해외여행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제주도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