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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희 Jan 16. 2021

제주에서 반 고흐를 만나다.

빛의 벙커에서 만난 고흐 작품

 제주도 여행을 계획할 때 하루쯤은 전시회나 박물관에 가고 싶었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뭐랄까 빵집에 가면 괜히 소보루빵을 사는 것처럼, 중화요리를 시킬 때 탕수육도 가급적 시키는 것처럼, 밥을 먹고 나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과 같이 여행을 떠나면 전시를 찾아가는 것은 나의 흔한 코스다. 친한 형이 작년부터 제주도에 있는 '빛의 벙커'를 꼭 가보라고 하였는데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빛의 벙커에서 어떠한 것을 볼 수 있는지 몰랐다. "아무 사전 정보 없이 가봐"라고 무심히 말만 해줬을 뿐. 미디어 아트인 것도 제주도 가서 알게 되었다. 여행의 모든 일정과 세부 사항까지 파악하거나 정해놓고 움직이는 것보다  틀만 정해놓고 즉흥적인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어쩔 수 없다.



 제주도 동쪽에 있는 성산일출봉 근처 숙소에 머물 때 성산읍에 위치한 '빛의 벙커'로 향했다. '빛의 벙커 반 고흐 전'에서는 고흐와 고갱의 작품이 영상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해리포터 영화에서 사진이 가만히 있다가 안의 사람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는 것과 비슷한 효과로, 그림이지만 실제로 움직이는 풍경을 실감할 수 있다. 게다가 음악도 웅장하고 작품과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그리고 귀에 익숙한 음악이 나오면 오랜만에 친구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표를 사서 벙커 안으로 들어가니 시원하면서 차가워 좋았다. 주위는 어두웠는데 프로젝터에서 벽으로 반 고흐의 작품들이 움직이는 영상을 비추면서 시작했다. 사방이 반 고흐의 작품으로 가득 채워져 어디를 봐야 할지 한동안 고민했다. 주변에 자리 좋은 곳에 앉아 보는 사람들이 많았고 나도 자리하나 차지하여 앉아 봤다. 바닥도 차가워 엉덩이가 아주 시원했다.





 고흐의 꽃과 나무가 그려진 작품들이 연달아 영상으로 재해석될 때 나왔던 음악은 체코 작곡가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중 몰다우'이다. 체코 프라하로 여행 갔을 때 그 나라의 음악을 찾아서 들어보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 음악만으로도 여행 추억이 떠오를 것이라 생각해서 프라하 거리를 걸으며 많이 들었다.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은 1989년 체코에서 비폭력 혁명으로 공산당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이뤄낸 일을 기념하여 그다음 해 5월에 체코에서 널리 울려 퍼진 음악이다. 음악에 일가견은 없지만 귀로 들었을 때 가슴 깊숙한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 나오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벅찬 느낌과 새로운 시작의 느낌이 강하게 든다.


 고흐의 작품에 있는 꽃과 나무가 피는 영상과 함께 '나의 조국'이라는 음악으로 새로운 시작과 출발의 감동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음악들과 반 고흐의 작품이 어우러져  눈과 귀가 행복해졌다.





 

 반 고흐의 작품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를 별이 빛나는 밤'이 미디어 아트로 구현되었을 때 느낌은 사뭇 달랐다. 불빛이 강에 비칠 때 그 찰랑거리는 물결을 표현한 것에 가장 큰 감동을 받았는데 그림 자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잔잔하게 움직이는 듯하다. 이미 충분히 표현된 작품이지만 영상으로 강이 흐르는 모습이 보일 때 감동이 크게 더해졌다.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보는 내내 '와아'하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박이다.

 

 세계의 걸작을 움직이는 영상으로 보는 것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한 번쯤은 미디어 아트로 표현된 전시를 방문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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