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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희 Jan 23. 2021

제주에서 차박, 그 낭만에 대하여

차 안에서 힐링하다.

 차박이란 여행할 때 차 안에서 잠을 자고 머무는 것이다.


 차박이라는 말이 국어사전에 있다는 것을 검색해보고 나서 알았다. '차에서 1박' 등 앞 글자만 따와서 줄인 신조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어서 살짝 놀랐다. 최근 들어 주변에서 차박 캠핑하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로 인해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데 집에만 쭉 있기에는 지겹고 밖으로 나가자니 위험해서 사람들이 잘 없는 곳으로 가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해석된다. 물론 코로나가 아니어도 이전부터 캠핑하는 사람들이 느는 추세였다. 내 주위에도 캠핑 용품들을 하나둘씩 사기도 하고 또 놀러 가는 것도 봤다. 그중에서 제일 부러운 건 '불멍'이다. 아직까지 불멍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데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캠핑하러 가서 아무 생각 없이 불꽃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어 보고 싶다. 그러면 잠시나마 걱정 고민이 모두 사라지겠지.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캠핑의 반 이상은 먹는 게 아닐까. 두툼한 삼겹살을 숯불에 굽고 파를 송송 썰어 냄비에 넣어 끓이는 라면. 상상만 해도 정말 감동적이다. 생각만 했을 뿐인데 침 고이는 행복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떠나서 맛있는 음식들을 나눠먹으며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좋은 캠핑 여행은 없다고 본다.


제주도 함덕 해수욕장




 제주도에 사는 친구 집에 머물 당시 하루 날 잡아서 투어 할 때다. 친구와 이곳저곳 열심히 다니다 마지막에 노을 지는 바다를 바라보고 싶다고 주문했다. 친구는 익숙하다는 듯이 함덕 해수욕장으로 이끌었고 오후 다섯 시 조금 넘어서 도착해 주차했다. 11월 중순쯤에는 오후 다섯 시 반 경이 해가 지는 시기여서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일단 차를 세워두고 나와 주변을 걸었다. 일부 텐트를 치고 쉬는 사람들도 보이고 연인끼리 혹은 가족 모두 한껏 캠핑을 즐기는 모습이 부러웠다. 바다를 바라보니 분홍빛이 바다 위를 물들였고 날씨는 시원했지만 조금씩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한 캠핑 분위기가 따뜻해서인가. 실제로 기온도 살짝 올라가서인가. 풍경이 낭만적이었다.



 함덕 해수욕장 부근을 돌아다니다 다시 돌아와 그냥 가기는 아쉬웠는데, 친구가 차에서 캠핑처럼 누울 수 있다며 차박 느낌을 내볼까 했다. SUV 차량을 타는 친구는 뒷자리를 앞으로 눕히고 밑에 매트를 깔았다. 그리고 위에 덮을 수 있는 가볍고 따뜻한 이불까지 구비해 놓고 있었다. 그렇게 뚝딱뚝딱 설치를 하니 누울 수 있고 차에 앉아서, 누워서 노을 진 바다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친구 준비된 남자다.


 계획에 없던 것이었는데 막상 뒷 트렁크 쪽에 앉아서 바다와 하늘을 보니 최근까지 갖고 있었던 고민과 걱정거리들이 녹아버렸다. 그날 점심에 밥 먹고 나오면서 가게 사장님께서 주신 귤을 먹고 음악도 들으며 힐링했다. 바깥은 나름대로 추웠는데 앞이 오픈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 안은 따뜻했다. 이글루 안이 따뜻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한 느낌이다.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과거의 추억들도 얘기하다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차에서 이렇게 낭만을 만끽할 줄 몰라 캠핑 준비를 하지 않았기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완벽한 차박은 아니었지만 이것만으로도 대만족이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둘러볼 때 봤던 한 커플이 잊히지 않는다. 나란히 옆에 앉아 라면을 끓여 먹는 모습이었다. 작은 탁상을 바닥에 펴놓고 조그마한 의자에 나란히 앉아 호호 불어서 라면을 먹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고 부러웠다. 이러한 광경이야말로 진정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인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값비싼 음식을 먹는 것보다 훨씬 따뜻한 낭만이었다. 노을 진 제주도 바다를 바라보는 것 자체가 그보다 더한 값어치겠지만.


 다음에 다시 제주도에 여행 가면 차박 캠핑을 해서 라면을 끓여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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