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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bird Jan 19. 2023

봉변

(부암동 이주기)

할 줄 아는 거 없는 내가 주택에 살기 시작하면 여러 고비를 맞을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사 일주일만에 겪은 일은 거의 시트콤 수준이었다.


이 정도 설치는 내가 해야지, 할 수 있겠지 하고 주문한 비데를 며칠 묵혀놨다가 밤에 설치를 시도했다. 거실 화장실은 30분 걸려 성공. 이제 안방 화장실은 10분이면 하겠거니 자신감이 붙었는데 급수 밸브가 좀 다르게 생겼다. 이리저리 뜯어보다 수도관 하나를 빼고 비데 부속품으로 온 t자형 밸브로 바꿔 끼면 되겠어서 기존 급수호스를 빼기로. 그런데 너무 단단하게 조여있어 꿈쩍도 안 한다. 변기와 욕조 사이 비좁은 공간이라 손에 힘도 들어가지 않아 몽키스패너까지 찾아와 조금씩 아주 조금씩 겨우겨우 푸는데... 갑자기 호스가 빠지면서 물줄기가 그야말로 소방수처럼 쏟아져나왔다.(쏟아져나왔다로는 부족하다..활화산처럼 솟구쳤다가 적확하겠다) 수압이 얼마나 센지, 밸브에 다시 끼우려고 발버둥을 쳐도 얼굴과 온몸으로 물세례만 튈 뿐 어림도 없다.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르면 물이 화장실을 넘어 온 집안이 물바다가 될 판. 다급히 아내를 소리쳐 불렀다. 이 순간 떠오르는 얼굴은 단 하나, 인테리어 사장님. "빨리 전화해줘!"


​아내의 전화를 받은 사장님은 상황을 듣더니 일단 집으로 들어오는 물 전체를 잠가야 한단다. 대문밖에 있는 수도계량기로 가서 밸브를 잠그라고. 자기가 곧 가겠다고.. 그런데 쏜살같이 나가 대문으로 달려갔던 아내가 다시 쏜살같이 돌아왔다. "수도계량기가 대문 밖에 있는데 대문이 얼어서 안 열려! 내가 여길 어떻게든 막고 있을테니 자기가 차를 타고 바깥쪽으로 돌아가야겠어."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우리 집엔 대문이 두 개 있다. 공식적으로 A대문이 하나 있고 정원을 가로질러 정반대쪽에 B대문이 있는데 주차는 B대문 밖에 한다. 그런데 A대문과 B대문이 정반대 방향으로 나 있고 연결되는 길이 달라 A대문에서 B대문까지 집안에서야 금방이지만 밖으로 돌아가면 걸어서는 10분이 넘게 걸린다. 그런데 수도계량기는 A대문 밖에 있고, 그 문이 지금 안 열리니 빨리 B대문으로 나가 차를 타고 빙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된 거다.


며칠 전 혹한 때 양쪽 대문이 다 얼어버렸다. B대문은 매일 차를 타야 하니 자물통에 뜨거운 물을 부어 금방 해결했는데 A대문은 문 전체가 문틀에 딱 얼어붙어버려 그냥 날씨 풀릴때까지 기다려보자고 했다가 이런 봉변을 당한 것.. 옷 갈아입을 새도 없이 흠뻑 젖은채로 차를 몰았고, 그동안 아내는 쓰레받기로 바닥의 물을 욕조 안에 필사적으로 퍼담았다.


​수도계량기 밸브를 찾아 잠근 뒤 아내에게 전화했더니 물이 멈췄다며 안도한다.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갔더니 인테리어 사장님이 도착해 비데와 변기 수도관을 다시 연결하고 있었다. 아내가 다시 한 번 놀란다. 헉, 벌써 왔냐 그냥 오면 어떡하냐, 이거 연결하고 나서 밸브를 다시 열어야 집에 물이 나올 거 아니냐는 것. 머리는 안 돌아가고 성미만 급한 나 자신에 다시 한 번 절망하며 또다시 차를 몰았다.. 안에서 연결이 끝났다는 전화를 받고 수도밸브를 다시 열고, 정상 작동하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한 시간여의 소동이 끝났다. 자정이 가까와지고 있었다.


​만일 아내 없이 나 혼자 있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졌으면 정말 큰일이 났겠구나.. 상상만 해도 식은땀이 흐른다. 무엇보다 인테리어 사장님한테 너무나 고마우면서도 미안하고, 민망했다. 이런 거 하나 몰라서 한밤중에 전화를 했으니. 내가 연결해놓은 거실 화장실도 다시 한 번 확인해준다며 들어가서 뚝딱뚝딱 일을 해내는 사장님의 뒷모습이 얼마나 멋있던지... 이래서 사람이 기술이 있어야 한다. 앞으론 어떤 일이 또 벌어질지.. 집 관리 요령과 각종 기술을 토탈케어로 가르쳐주는 학원이라도 있으면 좋겠구만.




#만만찮은주택살이 #대문이얼다니 #비데설치 #수도관계량기 #물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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