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작은 제도(islands)
Åland라는 글자는 한국 사람들에게 나름 친숙하다. 유명한 편집샵인 에이랜드가 서울 도처에 퍼져있기 때문에, 우리는 주저 없이 Åland를 '에이랜드'라고 읽는다. 조금 찾아보니 생긴 지는 15년 가까이 된 오래된 브랜드이고, 요즘에는 해외에도 진출한 듯하다. 그러나 핀란드에도 에이랜드, 아니 올란드가 있다. 나는 핀란드 국내 여행을 알아보면서 구글맵을 보다가 올란드의 존재를 처음 발견했다. 한국을 방문했던 핀란드 친구에게 말했더니 자신도 이 편집샵을 처음 보았을 때 조금 놀랐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회사 홈페이지를 보면 딱히 에이랜드 명칭의 기원을 설명해놓지는 않아서 일단 '표기하는 방법은 같다' 정도로만 보면 될 것 같다.
올란드는 핀란드에서도 조금 독특하다. 우선, 자치주이다. 핀란드 의회와 정부의 역할이 제한되고 올란드 내부에서 대부분의 행정, 입법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올란드 의회에서 올린 입법안이 핀란드의 내외적인 국익을 훼손할 때에만 대통령이 이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핀란드어가 아니라 스웨덴어를 사용하고 있으며(핀란드 공식 언어는 핀란드어와 스웨덴어 두 가지이다), 스웨덴과 핀란드 사이에 있는 이 섬들에는 대략 3만 명의 사람이 현재 살고 있다고 한다. 또한 자치주라서, 병역의 의무가 올란드 사람들에게는 없다! 군대를 안 가도 된다는 것이 큰 장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올란드가 자치주가 된 이유를 보기 위해서는 대략 100년 전의 역사로 되돌아가야 한다. 올란드는 스웨덴어를 쓰고 문화적으로 스웨덴에 가까웠지만 핀란드와 함께 러시아 식민지였는데,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이루어지면서 핀란드의 독립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지난 독립기념일 관련한 글을 쓰면서 핀란드 내전을 살짝 이야기하며 보수적인 백군과 공산주의 사상의 적군이 부딪히게 되었다고 했는데, 이러한 핀란드 정세는 올란드에도 영향을 미쳤다. 백군을 지지하던 독일 군단이 올란드에 개입하여 중재하였고 안정을 되찾은 올란드 사람들은 1918년 비공식 의회를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3년 간 올란드 사람들은 그들의 자결권을 행사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하였다.
올란드 인들의 90% 다수는 스웨덴에 편입되기를 원했다. 러시아가 핀란드를 점령하기 전에 올란드와 핀란드 모두 스웨덴의 식민지였고, 핀란드보다 스웨덴 문화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스웨덴 역시 20세기에 발흥하던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올란드를 스웨덴의 일부로 편입하기를 원하였다. 문제는 핀란드였는데, 핀란드는 올란드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여러 차례의 공방 끝에 핀란드는 '올란드 자치주'라는 필살 카드를 가지고 국제 연맹에 중재를 요청하였다. 결과는 올란드를 핀란드의 자치주로서 편입시키는 것이었다. 여러 유럽 국가는 핀란드가 올란드의 언어와 문화를 존중해주고 침해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이러한 조약에 승인하였다.
올란드와 스웨덴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올란드 사람들은 국제 연맹의 중재 과정에서 스웨덴이 본인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허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웨덴에 올란드를 편입하는 자는 민족주의는 말뿐이었고, 스웨덴의 미적지근한 태도에 실망한 사람들은 차라리 자치권을 누리면서 핀란드에 속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이러한 태도는 2차 세계대전을 지나고 핀란드와 같은 운명공동체라는 소속감이 강화되면서 스웨덴으로 올란드가 편입하는 논쟁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핀란드에서 독립하자는 의견은 있어도, 자치주의 지위를 버리고 스웨덴으로 가자는 주장은 거의 없다고 한다.
핀란드에서 오래 머물면 올란드의 국기를 볼 일들이 생각보다 많다. 캄피 광장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이나 노상 마켓에 가보면 올란드에서 왔다는 가게들이 하나 둘은 꼭 있는데, 그런 곳들은 꼭 올란드 국기를 달고 장사를 한다. 그 사람들은 보통 잼이나 기타 양모 제품 등을 팔았던 듯싶다. 내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은 크게 없어서 자세히 소개해주기는 어렵지만, 위의 국기를 보면 '아, 저 사람 올란드 물건을 파나보다' 정도는 아는 척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가보지 않았지만 실제로 방문하면 아름답다고도 하니, 시간이 허락한다면 배를 타고 가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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