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울불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찬닢channip Jul 16. 2020

대학 졸업을 앞두고-1

대학 사회의 구조를 생각하며

 때는 2019년 봄이었나. 책을 빌리려 중앙 도서관을 향하며 걷고 있었을 때, 다섯 명 남짓의 사람이 한 대자보 앞에 서있었다. 그렇게 하나, 둘, 여럿이 모였고 사람들은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로 쓰인 대자보를 차근차근 읽었다. 사실이라면 너무나 끔찍할 기억들은 흰 바탕의 전지 크기의 종이에 적힌 그 글자들을 보는 기분이 참혹해질 지경이었다. 사람들은 말이 없이 글을 읽기만 했다. 다 읽고 나서는 또 다른 학우에게 자리를 비켜주고 그렇게 모두가 글을 읽었다. 다시 도서관 내부로 걸어가는 내내 도대체 어떤 교수 일지 생각했다. 나는 스페인어와 문화와 관련한 수업을 들은 적이 없어서 그 교수가 누구인지 모를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그러나 이내 너무나 궁금해져서 서어서문학을 전공하는 후배에게 그 교수가 누구인지 물어보았다. 이름을 들었을 때, 아, 딱 한 명 아는 사람이었다. 내게는 조금 충격이었다. 

 2018년 내가 학교 프로그램을 통해서 런던으로 잠시 떠나기 전에, 학교에서 사전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유럽의 문화와 역사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다. 그때 마드리드로 떠나는 학생들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런던으로 떠남에도 그 교수의 특강에 참여하여 스페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여행자로서 교수가 겪었던 에피소드들도 공감하면서 언어를 잘해도 사기와 소매치기당하는 것은 비슷하구나 느꼈었다. 그날 이후로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하루 동안 이루어진 사람 간의 교류는 그가 범죄시 되는 행동들을 하고 그것이 확인이 되었을 때 배신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사람 좋은 낯을 하고, 그런 행위들을 쉽게 할 수 있나? 본인도 성추행이라는 행위를 알고 있을 텐데도, 스스로의 머릿속에서 인지하는 괴리감을 극복하고 그런 가해 행위를 할 수 있을까?

 그런 후에 학교에서 결정된 사안은 겨우 정직 3개월에 불과할 뻔했다. 그 이전 학내를 뜨겁게 달구었던 사회대 H교수는 교수 징계 최고치인 정직 3개월을 받았고, 당시 학생들에게는 시흥캠퍼스 문제로 불통의 아이콘으로 통하고 있던 총장마저 이러한 결정에 의문을 표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피해자의 말대로 그냥 말이 좋아서 정직이지 교수에게 안식 학기를 주는 것에 불과한 처벌은 있으나 마나였다. 학생들은 규탄 집회를 열어 투표를 했고, 또 어떤 이들은 내가 개인적으로 그리 찬성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교수 연구실을 점거하고, 시위를 했다. 나는 8월에 교환학생을 가서 결과를 이제야 찾아보았는데, 그는 교수직에서 해임되고 법정인 소송 중에 있다고 한다. 

교내 학생 총회 당시 모습. 사진: 대학신문 황보진경

 이러한 것은 교수들의 개인적인 도덕성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나는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내가 그러한 위험에 처했을 때 과연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이것을 앞서 일어난 사건들과 요즈음에도 또 다른 성추행 이슈가 부상할 때면, 학생 사회가 분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이 이슈화가 되지 않을 때 흐지부지 되기 십상이다. 나와 가까운 한 학생의 일도 있었는데, 후배는 학교에서 주관해서 학생들과 학교 직원들이 참여하는 글로벌 해외 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그때 그가 현지인에게 성적 추행과 다소 위협이 될만한 행위를 당하였음에도, 도와달라고 말했음에도 '네가 참아, 봉사하러 온 거잖아'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트라우마에 가까운 기억을 남기고, 가해자는 둘째치고 그러한 미숙한 운영으로 문제를 대처할 수 없다는 학교 행정의 무력감은 이야기를 듣고만 있는 사람에게도 당혹스럽고 화가 나게 했다. 아마 그러한 피해에 대해서 지금까지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게 된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대학이라는 공간이 학생의 의견과 권리를 쉽게 무시한다는 것을 매우 슬프게 생각한다. 물론 학생들이 학점과 같은 부분에서는 다소 이익집단화되는 면모를 어느 정도 보인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성인으로서 1년에 500만 원이 넘는 교육과 서비스 비용을 지불하는 학생 입장에서, 오히려 그에 마땅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학교 행정은 고압적이기까지 하다. 교수님께 말씀을 드려도, 교수 집단과 학교 행정은 또 다른 사회이기에 간섭하는 것도 이상한 모양인 듯싶다. 요새는 새로이 온라인 건의함이 생겼지만, 그래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학생은 교직원도 아닌데, 일관되지 않은 공지사항들을 보고서 직장인처럼 일을 알아서 잘하든지 아니면 불이익을 받는다고 반 협박조의 통보를 받으며 도움을 얻지 못할 때면 무엇을 위해 그들이 존재하는지 의문이 든다. 물론 학교에서 이것은 좀 처리가 이상한 것 같다고 연락을 하면 공감하고 도와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몇 년째 답장을 기다리는 메일도 있다. 그동안 겪어온 학교의 대소사를 생각해보면, 학생 사회가 정말 80년대에 있을 법한 구시대적 방법을 쓰는 것을 보고도 '정말, 그것밖에 답이 없는 것 같기도...'라고 인정하며 모두 발전 없이 갈등만 키우며 세월을 보내는 듯싶다. 

 19년에 A교수를 규탄하며 그 교수의 방에서 점거 농성을 벌였던 인문대 학생회장이 연초에 징계를 받았다. 학생들은 애초에 교수의 허락을 받은 것이라고 하는 반면, 교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으며 불법적인 점거였다고 한다. 둘 중 하나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추론은 너무 창피한 그림이니, 학생과 교수 간의 대화를 할 때에 명확히 말했다기보다 서로 해석한 뉘앙스 차이로 인해서 다른 주장을 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내가 정말 불만인 것은, 본인들이 미숙한데도 대학의 내규와 조항에 기대어 제대로 된 책임하나 지지 않고 심판자의 위치에 서서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들이다. 그러게, 진작에 말로 할 때 좀 잘하든가, 소리를 질러야 듣는 시늉이라도 하면서 뭐가 그리 잘났다고 서로 피곤하게 하는지!

교내 오리. 한 마리는 죽고, 다른 한 마리는 다쳤는데, 치료도 못 받고 '교체'될 뻔했다. 학교 '소유'라는 이유로 다친 오리가 그대로 방치되었지만, 다행히 해결될 모양이다.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33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